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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화장실 말고, 재래식 화장실만 쓰세요'

근로기준법 적용 못 받는 '마루 시공 노동자'들… 주 80시간 근무에 보수는 최저임금

경기도 H아파트에서 마루 시공 일을 하는 여성 송영희 씨는 올해 맞은 폐경에 안도감을 느꼈다. 건강 걱정 보다는 "화장실 이용 횟수가 줄어들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컸다. 그가 일하는 현장에선 두세 개 정도의 재래식 간이 화장실을 300~400명 노동자들이 함께 사용한다.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용변이 넘쳐흐르는 변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일도 많다.

화장실 문제는 현장 작업자들 모두에게 고역이지만, 특히 현장 속 소수인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큰 문제다. 송 씨는 종종 '화장실을 안 가고 버티다가' 방광염이나 변비에 시달리는 동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화장실 부족을 이유로 작업 현장 곳곳에서 용변을 보는 남성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생리가 시작되기라도 하면 월경 처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물론 멀쩡한 화장실도 있다. 송 씨는 "깨끗이 청소돼 있고 시설도 좋은 건설사 직원 전용 화장실"이 현장에 있지만, 현장 노동자들이 해당 화장실을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 잠겨있고, 노동자들의 화장실 사용 요청을 회사가 거부한다. 그 과정에서 "(건설사 직원과) 작업자를 차별하는 발언"도 종종 나온다. 일부 직원만 전용으로 사용하는 '차별 화장실'인 셈이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열린 '마루 시공 노동자 근로자 지위 확인 공동진정 기자회견'. 참여자 송영희 씨가 발언하고 있다. ⓒ권리찾기유니온 제공

재래식 간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마루 시공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직원 전용 화장실을 이용하는 건설사 직원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현재 마루 시공 현장의 대다수 작업자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 혹은 '근로자'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고용 계약 하에 업무를 지시 받고 노무를 제공하는' 노동자이면서도 그 지위를 인정받진 못한다. 마루를 생산·시공하는 기업체 대다수가 마루 시공 노동자들을 근로계약이 아닌 '사업소득자' 형태의 프리랜서 계약을 통해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사업소득자 형태의 계약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사업장의 입장에선 4대보험 가입, 주당 근무시간 제한, 노동환경 및 안전의무, 심지어 최저임금까지, 근로기준법이 명시하는 사업주의 의무에서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자유로워지는 꼴이다.

이렇게 실제와 다른 계약 형식을 통해 '근로기준법 밖의 노동자'들을 양산하는 사업체를 노동계에선 '가짜 3.3' 업체라고 부른다.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내는 노동자들에 대한 원천징수 비율 3.3%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 씨가 "인변과 오물이 난무하는 불쾌한 작업장", "인격모독과 갑질은 물론 화장실 차별의 수모"까지 감당하면서 그러한 차별에 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3일 오전 한국마루노동조합, 권리찾기유니온 등 노동 단체들은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마루 시공 노동자 근로자 지위 확인 공동진정' 기자회견을 열고 마루 시공 노동 현장의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은 마루 시공 업종의 건설사들이 마루 시공 노동자들을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하는 관행을 가리켜 "노무를 제공하는 직원에게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계약의 형식을 프리랜서로 위장하여 노동법과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가짜 3.3' 위장수법"이라며 △취약노동자들의 근로자 지위 인정과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등을 주장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열린 '마루 시공 노동자 근로자 지위 확인 공동진정 기자회견' ⓒ권리찾기유니온 제공

이날 기자회견에선 송 씨가 주장한 '화장실 이용 차별' 문제 외에도 △임금체불 △임금명세서 미교부 △연장근로의 제한 △연차유급휴가 미부여 △퇴직금 미지급 △안전조치 미준수 등이 마루시공 현장의 대표적인 노동문제로 지적됐다. 해당 사례들은 모두 근로기준법, 건설근로자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명시돼 있는 내용들을 위반한 사례다.

특히 근로기준법 부재 하에 나타나는 임금 및 근로시간 문제 등이 '가짜 3.3' 사업장의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최우영 한국마루노동조합 위원장은 "지금 건설회사들은 마루 시공자를 일용근로자로 신고하고 있으며, 원청이 임금을 지급하면 개인사업자인 관리자가 (개인 시공자들을) 프리랜서로 신고하는 말도 안 되는 다단계식 구조 속에 있다"며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주 70~80시간을 최저임금으로 일하고 있고,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최저임금조차 벌 수 없는 상황에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안전보건법 미적용으로 인한 안전의무 미준수 문제도 큰 문제다. 하은성 권리찾기노동법률센터 노무사는 마루 시공 노동자들이 "장시간 고강도 노동으로 인해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으며, 이를 산재 처리 하려 하면 (사측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간다고 협박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산재처리를 하더라도, (마루 시공 노동자들은) 127개 건설노동자 직종에 등록되지 않아 일용직 보통 인부로 분류되어 임금에서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날 기자회견이 마무리된 후, 노동자들은 마루 시공 노동자 근로자 지위 확인 공동진정 진정서를 고용노동부 측에 제출했다.

공동진정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하 노무사는 “마루 시공 관련 총 6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진정서를 접수한다”며 해당 사업장들이 “자신의 사업에 노무를 제공하는 마루시공 노동자의 계약 형식 및 세금의 종류를 사업소득자로 위장하여 근로기준법 및 노동관계법령에 따른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사업주의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진정 취지를 설명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열린 '마루 시공 노동자 근로자 지위 확인 공동진정 기자회견'. 공동진정 진정서를 제출하는 참여자들 ⓒ권리찾기유니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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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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