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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원들 덮친 코로나, 투쟁으로 이겨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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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원들 덮친 코로나, 투쟁으로 이겨내다

[한국어 교원 투쟁이야기 ①] 인화(人和)로 만든 무기 계약 (서울대 한국어교원)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번진 2020년 3월 이후, 하늘길이 막히고 거리두기가 강화되었습니다.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육은 위축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교원 조합원들은 계약직 38명 전원을 무기직으로 전환했고(서울대), 학교와 단체협약, 임금협약을 체결했습니다(연세대). 10년도 넘게 묵은 계약서를 새로 썼고(경희대), 부당해고에 맞서 대법원까지 갔다 복직했습니다(강원대). 엔데믹이 가까워진 2022년 10월, 한글날을 맞이하여 팬데믹 기간 한국어교원의 투쟁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2019년 1월 16일,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원들은 피켓을 들어 계약직 시간강사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2020년 3월 20일, 시간강사 38명 모두 기한 없는 근로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동안 교육부총장과 교무처장 면담에 언어교육원 원장과 한국어교육센터 소장과 교섭을 30차례 넘게 했다. 429일 동안 계절이 5번 바뀌었다. 저 행간에 감추어진 그때 우리 이야기다.

시수 제한과 노동조합 가입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오른손 치켜들어 핏줄 돋도록 팔뚝질한다. 왼손에는 마이크를 쥐고 "노동 해방의 그 날까지 힘차게 싸워나가겠습니다. 투쟁!" 전에 이런 거 전혀 몰랐다. 뉴스나 영화에서만 보았다.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말했다가 혹 잘리지는 않을까 무서웠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동조합이라는 보험이 필요했다.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에 조합원 가입 원서를 냈다. 생소한 노동조합보다 초단시간 근로자로 남는 게 더 두렵던 2018년 4월이었다.

시간강사의 강의 시간(시수)을 주당 14시간 이내로 제한한다는 말이 돌았다. 조선대학교 시간강사의 비극적 죽음을 딛고 만들어진 ‘고등교육법 개정안’, 이른바 강사법이 시행되면 고용이 오히려 더 불안해질 거란다. 당시 어학당에는 무기직 전임이 절반, 기간제 시간강사가 절반이었다. 기간제 선생님들의 무기직 전환이 시급했다. 부랴부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찾아 읽고 교육부와 고용노동부에 질의했다. 어학당 한국어교원이 정규직 전환 대상임을 거듭 확인했다.

기자회견부터 139일의 선전전

2019년 1월 16일, 첫 기자회견에서 A 선생님(당시 58세)이 대표로 마이크를 잡았다. 선생님은 30년 가까이 한국어를 가르쳤다. 이제 퇴직이 3년도 채 남지 않은 선생님이 앞에 나섰다. 노조 조끼 걸치고 마이크 들고 기자회견문을 읽었다. 당신이 노조 덕을 볼 일은 없다. 이미 무기직이고 대우교수로 무슨 이득을 보거나 영화를 누릴 일이 아니다. 사진 찍혀 신문에 나가는 일이다. 그런데도 시작은 응당 당신 몫이라며 선뜻 나서주었다. 이후로도 시간마다 노구(?)를 이끌고 함께 피켓을 들었다.

모두 처음이고 모두 함께했다. 피켓 문구를 의논하고 출력하고 코팅하며 일정도 짰다. 휴무일 아침이면 더 일찍 정문으로 향했고 방학에도 피켓을 들러 학교에 나왔다. 주차하고 나면 차에 피켓을 붙였다. 차는 얼룩덜룩해졌지만, 덕분에 수업 중에도 차가 우리 주장을 알렸다. 마이크를 들어 발언하고 행진했다. 기자와 인터뷰하고 사진도 여러 번 찍었다. 카톡방에 사진 올리고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응원했다. 4월 24일 점심 집회까지 99일 동안 55명이 피켓을 들었고, 누적 참여는 501회였다.

선전전에 기념 떡, 기고, 학내 마라톤

4월 25일, 피켓을 든 지 100일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서로 대단하다며 웃었다. 좋은 날 떡을 돌리는 우리 풍습대로 떡을 맞췄다. 원장에게는 예쁜 떡을 따로 준비해 간절한 마음 담은 손 편지와 함께 전했다. 한편 선전전이 110일을 넘기던 5월 8일, 신문에 B 선생님의 글이 실렸다(관련기사 : 한국어 강사도 노동자입니다). 언제나 믿고 의지했던 선배 선생님이다. 시간을 들여 글을 쓰고 문장을 다듬었나 보다. 선전전과 우리 입장을 알리는 글은 선생님의 성품처럼 단정하고 정확했다. 기자의 취재 기사도 힘이 되었지만, 동료 선생님이 실명으로 신문에 낸 글은 더 큰 힘이 되었다.

▲학내 마라톤 대회에서 달린 선생님 ⓒ이창용 제공

선생님들이 또 아이디어를 냈다. 5월 17일 학내 마라톤 대회에서 우리 요구를 등에 달고 뛰잔다. 여러 선생님이 운동화 신고 운동복을 입었다. 우리끼리 웃으며 달렸다. 우리가 계속 요구하고 있음을, 우리 요구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음을 학내에 알렸다. 대회 구간 7km는 완주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런 건 SNS에 올려야 한다. 한 발씩 내밀어 모아 원을 그려 찍고, 완주한 손등을 원형으로 모아 찍어 인스타에 올렸다. 유쾌한 이벤트였다. 마침내 2019년 6월 7일에 고용안정협약을 맺었다. 피켓을 든 지 139일이었다.

ⓒ이창용 제공

수업 나누기 1

2019년 가을학기, 선생님들이 수업을 양보했다. 다들 2년 넘게 어학당에서 일했지만, 무기직 전환 조건 24개월 근무에 아직 함정이 있었다. 채용 시점이 아니라 퇴직금 납입 개월 수를 따져야 했다. 채용 시점이라면 2017년 3월에 채용됐어도 2019년 2월에 24개월이다. 퇴직금 적립 달로 따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퇴직금은 주당 15시간 이상 수업한 달에만 적립된다. 2015년에 채용됐어도 퇴직금 적립은 20개월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학교는 규정에 따라 24개월 이상 퇴직금을 납입해야 무기직 전환이 가능하단다. 아직 기준을 채우지 못한 선생님들이 주당 15시간을 넘겨 수업하도록 무기직 선생님들이 시수를 양보했다.

협의와 합의 사이

건물 밖 선전전은 서막이었고, 고용안정협약은 고용만 잠시 붙들어두었다. 장소를 회의실로 옮겨 '어떤' 무기직인지 근로조건을 두고 다퉜다. 학교는 주 40시간에 9 to 6를 내밀며 자체 직원이 되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기존 근로조건인 주 32시간과 방학을 지키며 교원으로서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우리는 직원이 아니라 한국어교원이다. 강의와 업무 외에 연구와 수업 준비를 위한 시간이 별도로 필요했다. 그러자면 주 32시간을 지켜야 했다.

무기직 계약서, 연봉 계약서, 취업규칙의 자구(字句) 하나하나를 밀고 당겼다. 연간 의무 강의 시수, 주당 근무 시간, 근무 장소, 초과강의료, 유급 휴일, 주휴수당, 연차, 연차 일수, 연차미사용수당, 근로자의날 휴일근무수당, 경조사휴가, 대강료, 병가, 정액급식비, 연봉제, 호봉제, 재택근무, 탄력근무, 유연근무, 방학, 강의 준비 기간, 한국어교원 명시…. 선행논문 없는 연구과제였다.

협의와 합의 사이에 놓인 강은 넓고 깊었다. 가을, 겨울학기 동안 교육부총장을 한 차례 만났고, 원장, 소장과 20차례 교섭했다. 피켓을 들고 선전전 할 때가 차라리 나았다. 우리는 물러설 데가 없는데 학교는 완강했다. "어둠이 짙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어둠이 언제 끝날지,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두렵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겠습니다." 19년 연말에 조합원 선생님들에게 보낸 메일의 끝인사다. 아주 더디지만 조금씩 합의에 다다라 갔다. 그러는 동안 해가 바뀌는데, 무기직 전환은 여전히 아직이었다.

수업 나누기 2

20년 2월에 코로나19가 터졌다. 3월, 어학당은 개강을 연기했다. 학생이 줄었다. 비행기가 다니지 않아 입국하지 못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연히 시수도 줄었다. 무기직 전환 시점이 더 늦추어지고 더 어려워질 것 같았다. 학교는 전환해 주고 싶지만, 학생이 줄어 어렵다는 태도다. 이번에도 선생님들이 나섰다. 무기직 전환에 빨리 서명하라고 여러 선생님이 한 학기, 두 학기 무급 휴직을 신청했다. 선생님들의 자발적 휴직 덕분에 코로나 19에도 남은 선생님들은 주당 20시간씩 수업했다. 학생이 줄어도 우리끼리 시수를 양보하고 조절해 함께 할 수 있다는 힘을, 증거를 보여주었다. 마침내 2020년 3월 말 38명 기간제 전원이 무기직으로 전환됐다.

천시가 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요, 지리가 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라

하늘의 때가 지리적 이로움만 못하고, 지리적 이로움이 사람의 화합만 못 하다. 때가 도왔다. 강사법 개정,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국내 코로나 19가 임박한 때였다. 한국어교원은 대학 시간강사가 아닌 게 분명해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흐름을 타서 코로나 19가 국내에 몰아치기 직전인 2020년 3월에 전환을 마쳤다. 지리적 이로움도 컸다. 서울대 일이라면 아무래도 보도가 된다. 피켓 들고 집회할 때도 주목 더 받고 기사가 더 많이 나갔다. 그렇게 때와 장소도 도왔지만, 옆에 동료가 늘 함께했다. 이미 무기직으로 고용이 안정된 선생님들은 시간강사가 무기직으로 전환되면 자신의 임금이 줄 수도 있는 상황에도 후배들을 위해 나섰다. 천시와 지리도 컸지만 일을 성사시킨 것은 인화(人和)였다.

2021년 7월과 2022년 1월, 서울대 언어교육원은 채용공고를 내 새 선생님을 모셨다. 무기직 한국어교원이다. 기간제 계약과 2년 후 무기직 전환도 아니고, 곧장 무기직이다. 임금과 근로조건 등은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이 채용공고를, 무기계약직 한국어교원 일자리를 우리가 만들었다. 

※ 이 글은 『한국어 수업 이야기』(이창용 저, 프시케의숲, 2021)의 일부를 재구성하고 다듬었음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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