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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사건은 '젠더산업재해'…"여자라서 죽었고, 일터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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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사건은 '젠더산업재해'…"여자라서 죽었고, 일터에서 죽었다"

'산재이면서 산재가 아닌' 일터 내 젠더폭력… "여성위험 예방 위해 산재 기준 필요"

"일터에서 일어나는 젠더폭력을 '산업재해'로 인식하자."

여성 역무원이 순찰 중 스토킹 가해자에게 피살당한 사건인 신당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산업현장에서 겪는 젠더폭력을 산업재해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위원회는 지난 26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업무 환경의 영향 아래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터 내 젠더폭력을 중대한 산업재해로 인식"하고, "젠더폭력의 특성에 따른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젠더폭력을 '개인 간 사건'이 아닌 '산재'의 관점에서 바라볼 경우 사건의 예방 및 피해자 보호·보상 조치 등은 전향적으로 강화될 여지가 있다.

지난 14일 일어난 신당역 살인 사건의 경우 가해자 전주환이 2018년경부터 피해자에 대한 젠더폭력을 이어온 점이 알려지면서 2인1조 수칙이나 성폭력 가해자 분리, 피해자 보호 등 사용자 측이 제공할 수 있는 안전 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날 노동자들은 '제2의 신당역 사건'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선 해당 사건 역시 "일터에서의 젠더폭력에 따른 산업재해"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6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여자라서 죽었다.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겪는 젠더폭력을 직시하고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라' 기자회견 ⓒ프레시안(한예섭)

일터 내 젠더폭력, 산재 '인정'은 가능하지만 산재로 '인식'되진 않는다.

현재 직장 내 성희롱 등 젠더폭력 관련 사건은 개별 사건의 성격에 따라 그 일부가 산재로 인정받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을 업무상 재해의 인정 기준으로 명시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성희롱, 괴롭힘·차별 등을 주요 스트레스 요인으로 포괄해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산재로 심사·승인한다.

다만 젠더폭력은 산재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다. 산재보상보험법을 포함해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법 등 산재 관련 법령에선 '산재로서의 직장 내 성폭력'을 명시하고 있지 않아 젠더폭력을 산재로 인식할 만한 상위법상 기준이 부재한다. 이는 성폭력 등의 산재 '판정'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의 부재와 이어지는 문제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인 인식도 미흡하다. 2019년 근로복지공단이 조배숙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성폭력으로 인한 산재 신청 건수는 2016년 8건, 2017년 11건, 2018년 13건에 불과했다. 승인율(2013~2017년 기준 91.3%, 2016~2018년 기준 100%)은 높았지만 신청 건 자체가 너무 적어 유효한 데이터로 남기 어렵다. 2019년 당시 전체 산재 신청 건수는 14만 7천여 건이었다. 2018년 6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신고된 직장 내 성폭력 건수는 여성가족부 상담센터에 접수된 사례만 해도 1770건(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이르렀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26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현재 산안법 등 산재 관련 법률은 주로 (건설현장 등에서 일어나는) 남성 노동자들이 많이 겪는 재해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며 "젠더폭력을 산재로 인식하자는 말은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 여성 노동자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일터 내 젠더폭력을 중대재해급의 위험으로 판단하고, 국가와 기업이 이 위험에 대한 예방, 보상, 보호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국장은 "법리적인 문제가 얽혀있으니 당장 산안법 등을 고치자는 식의 접근은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건설 현장 산재 같은 경우도 거의 20여 년을 싸우며 (사회적 인식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제도를) 만들어낸 역사가 있다. 젠더폭력에 대해서도 제도적 보완을 포함한 인식 변화를 위해 (여성·노동계가) 문제제기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6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여자라서 죽었다.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겪는 젠더폭력을 직시하고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라' 기자회견 ⓒ프레시안(한예섭)

"예방과 책임 바로 세워야" ... 일터 내 젠더폭력을 '젠더산재'로 봐야 하는 이유

일터에서 일어나는 젠더폭력을 산재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사건의 예방 책임을 바로 세우는 것에 있다.

현행 법 체계에선 양성평등기본법 제31조(성희롱 예방교육 등 방지조치)와 성폭력방지법 제5조의 4에서 직장 내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을 위한 사용자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가해자의 처벌과 관련해선 형법상의 규정에 따르며, 이외 남녀고용평등법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 및 예방'을 명시하고 있다.

26일 민주노총 젠더폭력 대책 마련 기자회견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들은 이러한 현행 법률 체계와 그에 따른 사용자 측의 성폭력 예방 시스템이 "피해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적 괴롭힘은 남녀고용평등법에서 규율하는 '직장 상사와 직장 동료에 의해 발생하는 직장 내 성희롱'이 다가 아니"며 "법률적 용어를 넘어 다양한 유형의 (성적) 가해행위"가 나타는데, 시스템이 이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정방문 노동자, 언론노동자(기자), 민원담당 공무원, 혹은 신당역 사건 피해자와 같은 직종인 역무원의 사례까지 업무 특성 및 환경에 따라 발생하는 일터 내 젠더폭력 양상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성폭력 취약 현장으로 꼽히는 가정방문 노동 현장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실시한 '가구방문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구방문 노동자 796명 중 176명(22.1%)이 성희롱을, 16명(2.0%)이 성폭행을 경험했다. 올해 6월엔 한 40대 남성이 인천 지역 가정방문 가사노동자 23명을 성추행한 일이 드러나 노동계의 규탄이 이어지기도 했다.

김정원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장은 "(성폭력 등을 이유로) 점검 거부 의사를 밝히더라도 100%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일부 소장들은 매니저가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문제 가정에) 계속 방문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가정방문 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사용자 측의 미흡한 인식 문제를 거론했다.

"고객의 사적 공간에 직접 방문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각 노동현장의 업무 특성이 성폭력에 취약한 업무 환경을 만들고 있음에도 사용자 측은 예방과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현숙 공무원 노조 위원장은 "공공기관에선 서비스 업무에 적합하게 여겨지는 여성 공무원이 민원 업무를 주로 담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성희롱, 폭언 등) 악성민원에 대한 예방조치는 미흡한 실정이다"라며 업무상의 성별분리 등 "일자리 배치에서부터의 차별"이 젠더폭력을 유발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희은 민주노총 여성위원장은 정부, 기관, 사용자 측의 젠더폭력 예방을 위해선 신당역 사건 등 직장 내 여성폭력 사건을 '구조적인 젠더폭력이자 산재로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거나 접근"하는 인식이 "여성폭력을 은폐하고 삭제하여 본질적인 대책조차 세울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지난 20일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여성 당직 배치를 줄이겠다"는 등 여성 노동자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방식을 신당역 살인사건의 대책으로 내놓은 일을 가리켜 "사업주와 정부가 만들어 낸 차별적 태도"라 비판하며 신당역 사건을 계기로 서울교통공사와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 등이 "(신당역 사건을) 산재사망으로 인정하고 성폭력이 사회의 안전과 일터의 안전을 해치는 중대재해임을 사회적으로 공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6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여자라서 죽었다.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겪는 젠더폭력을 직시하고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라' 기자회견 ⓒ프레시안(한예섭)

한편 직장 내 성희롱 등 일터에서의 젠더폭력 사건을 산재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계 등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온 의제다. 젠더폭력에 산재 개념이 도입될 경우 사적인 문제로 간주돼온 젠더폭력 문제를 구조적, 공적인 문제로 대두시켜 보다 적극적인 예방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최윤정 전 문화체육관광부 여성정책 전문위원은 2019년 발간한 저서 <산업재해로서의 직장 내 성희롱>에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인식의 변화 △직장 내 성희롱의 예방 강조 효과 △직장 내 성희롱의 사업주 책임 강화 △산재보상 제도를 통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 구제 등을 "직장 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인식·적용했을 때 실질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효과"로 제시한 바 있다.

조배숙 전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 2018년 "직장 내 성폭력과 성희롱 피해를 받은 근로자를 보호하고 (성폭력 피해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며 산재보상법 제37조의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에 직장 내 성폭력 등 젠더폭력 관련 기준을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다만 해당 개정안은 2020년 5월 20대 국회 종료 시 임기만료로 폐기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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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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