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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인력 확보' 이주노동자 늘어나지만 노동환경은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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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인력 확보' 이주노동자 늘어나지만 노동환경은 제자리

무허가 비닐하우스 '숙소'라며 돈 뜯어가는 사례 등 발견

2020년 12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비닐하우스가 숙소였다. 농촌의 열악한 이주노동자 노동 현실이 알려졌으나 2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 환경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27일 나왔다. 

비닐하우스,폐가 등 무허가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거나 임금체불 등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대책 마련 없이 '농촌 인력 확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윤미향 의원(무소속)과 이주노동119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년간 농업 부문 이주노동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상담사례를 발표했다. 대면, 전화 등으로 이루어진 상담을 통해 문제가 발견된 것만 50여 건에 이르렀다. 

이주노동119는 금속노조 경남지부의 사회연대사업으로 진행되며 지구인의정류장, 원곡법률사무소 등 관련 단체가 함께 하는 연대체다.

상담 결과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악조건의 주거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담을 진행한 지구인의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노동 시간이 길고 숙소 위생도 좋지 않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질병을 호소하고 있다"라며 "여전히 이주노동자 중 74%는 열악한 시설에서 사는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속헹 씨의 사망 이후 비닐하우스 등 가설 시설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경우 신규 사업장 고용허가를 불허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숙소 개선 준비 기간 부족 등으로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등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속헹 씨의 사망 이후 비닐하우스 등 열악한 시설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경우 신규 사업장 고용허가를 불허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숙소 개선 준비 기간 부족 등으로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등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윤미향 의원실

폐가 등 불법 가건물을 기숙사로 제공하면서 숙식비를 월급에서 공제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현행 고용노동부의 '외국인 근로자 숙소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에 따르면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에게 숙박이나 식사를 제공할 경우 통상임금의 8~20%까지의 비용을 공제할 수 있다. 

문제는 숙소가 불법인지 합법인지는 관계없이 숙식비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실제로 건축 신고조차 되지 않은 폐가 등 가설 건축물을 이주노동자 숙소로 제공하면서도 28~45만 원가량의 비용을 임금에서 삭감하는 사례도 이번 상담 과정에서 발견됐다.

김 대표는 "고용주들은 불법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고 돈도 받아가면서 지침대로 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라며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자는 합법적으로 임금을 착취할 수 있는 특별한 면허가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지난 16일 관련 지침에 따른 숙식비 산정 기준이 합리적으로 설정돼 있지 않고, 실제 수령 임금을 감액하는 기준으로 남용되며 열악한 임시 주거시설을 정당화하고 있다며 지침 폐지를 권고했다.

노동조건 또한 여전히 열악했다. 이주노동자와의 근로계약서에서 명확한 근로 장소를 누락해 "마을 머슴"처럼 여러 경작지에서 일하게 하거나 휴게시간을 모호하게 작성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하루에 깻잎 40소쿠리(4만장, 40㎏)를 수확하지 못하면 임금에서 1소쿠리당 1500원을 공제하겠다"는 조건에 강제로 합의하게 하는 상황도 있었다.

▲ 2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윤미향 의원(무소속)과 이주노동119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지난 1년간 농업 부문 이주노동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상담사례를 발표했다. 대면, 전화 등으로 이루어진 상담을 통해 문제가 발견된 것만 50여 건에 이른다. ⓒ프레시안(이상현)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성폭력, 불법촬영 문제에 이중으로 노출되기도 했다. 전라북도 익산 딸기 농장에서 근무했다는 A씨는 기자회견에 참여해 "고용주가 욕실 벽에 있는 구멍을 통해서 여성 욕실을 훔쳐보았다"라며 "계약서에 적힌 것과 다르게 매일 추가 노동을 했지만 월급에 추가 노동시간은 계산되지 않았다"라며 여성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지적했다.

윤미향 의원은 "농림부는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며 정책 검증과 개선방안 마련 없이 계절근로자제도를 확대"하고 있지만 여러 문제점에 노출되고 있다며 임시 가건물 기숙사 금지, 사업자 이동 자유 보장 등 이주노동자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에 입국하는 농업 분야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E-9)나 계절노동자(E-8)의 수는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2004년 33명에서 2020년에는 2만689명으로 늘었고, 계절근로자는 2015년 19명에서 2022년 7388명(추정)으로 증가했다. 법무부는 또한 농촌 인력 확보를 이유로 계절근로 참여 요건 완화 등의 방침 또한 추진 중이다.

한편 한파 속에서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속헹 씨와 관련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 소송도 진행될 예정이다. 

소송에 참여하는 원곡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열악한 숙소환경을 제공하는 사업장에 속헹 씨가 일하도록 알선한 사람은 대한민국 고용노동부 공무원이고, 고용노동부는 이 사업장의 기숙사가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며 유족의 위임을 받아 국가배상 소장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속헹 씨는 지난 5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았다.

▲ 충청남도에 위치한 여성 이주노동자 숙소 모습. 2명의 이주노동자가 각각 28만원 씩 내는 기숙사는 주택 대장도 없는 공가다. 문풍지에 구멍이 뚤려 화장지로 막아야 할 정도로 추위에 취약해 난방 기름값이 한 달에 57만 원이 나간다. ⓒ윤미향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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