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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보름과 망월(望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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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보름과 망월(望月)

어린 시절에는 보름달이 뜨면 유난히 좋았다. 뭔가 소원을 빌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고, 특히 정월 대보름과 팔월 한가위는 달이 크기로 유명하다. 올해는 유난히 큰 달이 뜰 것이라고 해서 어린아이처럼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정월 대보름이 되면 긴막대기에 짚을 나이 수대로 묶어서 불을 붙여 달을 향해 나이 수만큼 돌렸다. 그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망우리여! 망우리여!”하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망월(望月)이여=보름달이여!”하고 외쳤던 것인데, 우리는 ‘망우리(忘憂里) 공동묘지’가 귀에 익은 터라 ‘망우리’라고 했다. 망월(望月)이 보름달을 뜻함을 안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 소동파의 ‘적벽부’를 배울 때였다. 그 글 중에 “임술년 가을 7월 기망(旣望)에 소동파가 객과 더불어 적벽강에서 노닐 적에 맑은 바람은 고요히 불고 물결은 잔잔하더라.”는 문장이 있다. 여기서 ‘기망(旣望)’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음력으로 16일을 말한다. ‘망(望)’이 15일이기 때문에 기망(이미 보름이 하루 지난 날)은 16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14일은 미망(未望-아직 보름이 되지 않은 날)이다. 이런 의미를 알게 된 순간 가슴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에 외치던 망우리가 ‘망월(望月)’의 잘못된 발음이었으니 참으로 부끄럽기만 했다. 사실 어린이들은 어른이 하는 말을 따라하면서 단어를 익힌다. 그러다 보니 사투리가 계속 전달되고 표준어의 길을 방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고향에서는 옥수수를 ‘옥시기’, 옷을 ‘오티’, 가위를 ‘가새’라고 해 왔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할머니의 그 발음 그대로 우리에게 이어져 왔고, 지금도 심심할 때 식당에 가서 ‘가새 좀 줘요.’ 하고 장난삼아 말하곤 한다. 이제는 망우리와 망월은 구분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망월이 보름달인지 모르는 분이 더 많을 것이다.

보름은 순우리말이지만 그 어원은 만주어에서 왔다. 혹자는 고대 이집트어에서 유래하였다고 하기도 하지만 신뢰하기는 어렵다. 문헌상으로 처음 나타나는 것은 <월인천강지곡31>이다.

칠월(七月)ㅅ 보롬에 천하(天下)애 나리시니

라고 하여 ‘보롬’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 어근은 ‘볻’이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볻>볼>볼옴>보롬>보름’으로 변화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보롬’은 원래 ‘달’이라는 뜻이었는데, ‘달’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세력을 형성하니 밀려나서 ‘만월(滿月=full moon)’만을 뜻하게 되었다. 이런 것을 어의 축소라고 한다. 말의 의미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만주어에서는 달을 ‘pya(뱌)’라고 한다. ‘다달이’는 ‘pyatari’라고 하는데 ‘pya(뱌)’와 ‘tari(다리)’의 합성어다. 즉 ‘뱌’와 ‘다리’ 똑같이 달을 가리키는 말인데 동음이의어를 합성한 것으로 동어반복을 회피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독자 중에 어렵다고 머리를 흔드는 사람도 나타날 것 같다. 우리말도 이음동의어를 쓰는 단어가 많다. 특히 우리말과 한자어를 합쳐서 쓰는 경우도 흔하다. 예를 들면 ‘역전앞’, ‘처갓집’과 같은 단어들은 ‘앞=전(前)’, ‘가(家)=집’임을 안다면 만주어에 이런 현상이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동어반복회피라는 용어는 흔히 쓰는 것으로 시인묵객들만의 전용어는 아니다.

별(星), 볕(陽), 빛(光), 볼(月) 등은 모두 하늘에 있는 것으로 빛을 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보름이라는 말은 ‘볼(볻)’에서 나온 말임을 알 수 있다. 원래는 일반적으로 달(月)을 말하던 것이 ‘달’이라는 새로운 단어의 출현으로 인해 ‘음력 15일에 뜨는 만월(滿月)’만을 지칭하게 된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 날들이 일년 내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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