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대선 패배 수습을 위해 꾸려졌던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6.1 지방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민주당은 두 달 만에 또다시 수습 국면을 맞이했으나, 대선 직후보다 더욱 어지러운 지경에 놓였다. 지선 이후로 미뤄왔던 책임론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데다 지도부 구성 방안에 대해서도 이견이 오가면서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윤호중‧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을 포함한 민주당 지도부는 2일 오전 비공개 회의를 마친 뒤 "비상대책위원 일동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대선 패배 직후 송영길 전 대표 등 당시 지도부의 일괄 사퇴를 계기로 구성돼 오는 8월 전당대회까지 이끌어가기로 돼있었으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80여 일 만에 조기 퇴진하게 됐다.
대선 당시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후 윤 위원장의 임명으로 공동 비대위원장이 된 박 위원장도 숱한 논란 끝에 지도부 명함을 내려놓게 됐다. 이에 따라 박 위원장이 지선 직전 제안한 당 쇄신 작업은 미완의 과제로 남겨졌다.
박 위원장은 사퇴 기자회견 후 따로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저희는 완벽하게 졌다. 대선에 지고도 오만했고,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화를 거부했다"며 "새 지도부가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당의 노선과 인물과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비대위 구성원들은 이날 비공개 회의에서 별다른 이견 없이 총사퇴에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이에 따라 향후 의원총회와 당무위원회를 거쳐 차기 전당대회를 치를 새 비대위를 꾸리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박홍근 원내대표가 당 대표 직무 대행까지 겸임하기로 했다.
두 달 만에 다시 지도부 공백 상태에 놓이자, 당 내에서는 조기 전대를 통해 새 지도부 체제 하에서 수습책을 논의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반면, 전대 일정에 구애받지 말고 쇄신 방안부터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는 의견도 개진됐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의총과 당무위를 거치는 과정에서 전당대회를 빨리하는 게 필요하다면 당겨서 할 수도 있다"면서도 "물리적으로 조기 전당대회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검토해 본 결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실무적 의견은 있었다"고 했다.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그러나 이날 비대위 총사퇴 발표 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가장 시급하게, 대선, 지선 결과 및 지난 5년 민주당의 모습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면서 "지도부에 지체없이 의원총회를 소집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단 첫 의총으로 시동을 걸고,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성찰과 좌표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당 내 요구에 부응, 박홍근 원내대표는 3일 오후 의원총회를 겸한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당무위는 당 지도부와 전국대의원대회·중앙위원회 의장, 시·도당위원장, 당 소속 시·도지사 및 기초단체장협의회 대표 등이 참여하는 당무 집행의 최고의결기관으로,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는 당의 쇄신 방향과 차기 지도부 구성 방안 등 폭 넓은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재명 의원의 연석회의 참석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우후죽순 비판에 궁지 몰린 이재명, 당권 도전할까
이 의원은 연이은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 한 가운데 던져져 있다. 선거가 끝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이 의원에 대한 문책성 발언이 계파를 막론하고 우후죽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에서는 당의 후보로, 지선에서는 총괄선대위원장으로서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함에도 정작 본인은 텃밭에서 당선되며 국회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이 의원과 경쟁했던 이낙연 전 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패배를 인정하는 대신에 '졌지만 잘 싸웠다'고 자찬하며, 패인 평가를 밀쳐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과정을 정략적으로 호도하고 왜곡했다"며 "그런 방식으로 책임자가 책임지지 않고 남을 탓하며, 국민 일반의 상식을 행동으로 거부했다"고 직격했다. 이 의원이 대선 패배 후 곧바로 보궐선거에 출마한 데 대한 지적으로 보인다.
친문 그룹 좌장격인 홍영표‧전해철 의원은 자신의 SNS에 "사욕과 선동으로 당을 사당화한 정치의 참담한 패배", "선거 패배에 책임 있는 분들이 필요에 따라 원칙과 정치적 도의를 허물었다"라고 질타했다.
신동근 의원도 "숱한 우려와 반대에도 '당의 요구'라고 포장해 송영길과 이재명을 '품앗이 공천'했고 지방선거를 '이재명 살리기' 프레임으로 만들었다"며 "이 위원장과 송 후보는 책임져야 한다"고 직격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윤영찬 의원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과 송영길 전 대표는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에서 가장 책임이 큰 분들"이라며 직접적으로 비판 대열에 나섰다.
비문(非文)인 박용진 의원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의원을 향해 "책임론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이 위원장이 혁신 주체인지 아니면 쇄신 대상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과 함께 쇄신파로 분류되는 조응천 의원 또한 이날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 의원의 계양을 출마를 집어 "대참패의 원인이 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 의원이 계양을에) 발목이 잡힌 데다가, 오히려 비대위원 전체가 다 모여서 거기서(계양을에서) 지원유세하는 형국까지 몰렸지 않았느냐"며 "(계양을 승리는 이 위원장의)상처뿐인 영광이다. 굉장한 내상이 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친이재명계 수장으로 꼽히는 정성호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 호된 경고를 받고도 민주당이 기득권 유지에 안주한다면 내일은 없다"며 당내 주류 세력인 친문‧86 그룹을 겨냥했다.
이처럼 당 내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이 의원이 당초 알려진 대로 당권 도전에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이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대해 "알 수 없다"며 "한 번도 본인(이 의원)이 그것과 관련한 말을 한 적 없다. 아마 한동안은 그런 말씀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재명 책임론'이 맞는 얘기냐. 민주당에서 진짜 책임질 사람이 누구냐"면서 "(지방선거 패배는) 대선 패배 연장선인데, 이낙연 당 대표 때부터 정부 부동산 정책을 전혀 컨트롤 못 했다. (친문은) 그 정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아니냐"고 했다. 이재명계도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을 질 사람이 누구냐"며 책임론 공방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류가 감지됐다.
이 의원은 전날에 이날 선거캠프 해단식에서도 당권 도전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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