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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서산개척단 강제노역, 폭행 등 인권침해 확인…국가가 사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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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서산개척단 강제노역, 폭행 등 인권침해 확인…국가가 사과해야"

1960년대 초 1700여 명 강제 동원…피해자 명예 회복 및 개간지 무상분배 조치 마련 권고

과거 정부가 고아,부랑인 등 무의무탁자(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사람) 1700명을 강제로 체포해 충청남도 서산 지역 폐염전 개척에 동원한 '서산개척단' 내 인권침해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개척단 운영에서 국가 공권력의 개입이 있었던 데 관해 국가가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권고도 나왔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10일 제32차 위원회 회의를 열고 서산개척단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했다"라며 이 같이 밝혔다. 집단수용 관련 인권침해 중에선 처음으로 나온 진실규명 결정이다. 

서산개척단은 1960년대 초 박정희 정권 시기 경찰과 군인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시민 1700여 명을 체포해 집단 이송 및 수용하고 강제노동시킨 이들이다. 끌려간 이들은 대부분 고아,부랑인 등 사회 취약계층이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당시 보건사회부는 '부랑인 이주정착 계획'에 의해 개척단 예산 및 물자를 지원했고 정착사업을 관리·감독했다.

강제수용된 이들은 의사와 상관없이 폐염전을 개간하는 등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노역 과정에서 관리인에게 빈번한 폭행을 당했고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2조 제1항의 신체의 자유 및 헌법 제14조에서 규정한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산개척단 일원들은 결혼을 강요받기도 했다. 부녀보호소에 잡혀 온 성매매 여성 등 취약계층을 서산으로 이주시켜 얼굴도 모르는 개척단원과 결혼케 한 것이다. '깡패와 창녀의 새 출발'이라는 이름이다. 강제결혼 과정에서 여성들은 양육과 노역이라는 이중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하기도 한 김상숙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과거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가난한 여성들 끌고 가 강제결혼시켰다"라며 "여성들은 적은 배급식량으로 식사를 준비하면서 남성들과 아이들에게 먼저 주고 남은 걸 먹고, 아이 양육도 책임지고, 간척에도 함께 동원되면서 이중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라고 지적했다.(☞관련 기사 : "'팔자'라고 불리던 그녀들의 사연, 더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의사에 반한 결혼이 강요되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개척단원들이 의사에 반하는 결혼을 강요받은 점은 헌법 제36조 제1항의 혼인의 자유와 혼인에 있어서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산개척단원들이 저수지를 만들기 위해 도비산에서 돌을 나르는 모습 ⓒ진실화해위원회

개척단원들은 개간지 분배 약속을 받았음에도 정부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개척단원들은 1968년 '자활지도사업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된 후 분배위원회를 통해 농지분배증서를 받았다. 그러나 1982년 무상분배를 위한 시행령에 제정되지 않은 채 관련 법이 폐지되면서 실질적인 무상분배가 무산됐다.

위원회는 "정부가 법이 위임한 사항에 대해 시행령을 제정하여 법령에 따라 무상분배 절차를 진행하여야 하는데도 시행령을 제정하지 않았다"라며 "개척단원들과 정착지 주민들에게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서산개척단 인권침해 사건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강제수용 및 강제노역, 폭력 및 사망, 강제결혼 등 중대한 인권을 침해했다"라며 국가가 "개척단원으로서 피해를 본 신청인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이들에 대한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개척단원들이 약속받은 토지 분배에 대해서도 "개척단원들과 정착지 주민들의 지속적인 노동력이 투입된 결과로서 당시의 폐염전이 현재의 경작지로 토지가치가 상승 변경되었다"라며 "'자활지도사업에 관한 임시조치법'의 취지에 따라 보상, 특별법 제정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1963년 개척단 운동장에서 서산개척단원 제1차 125쌍 합동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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