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 후보들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혁파 공약은 이미 유권자들의 귀에 익숙하다. 이런 공약들은 대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공약들이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한 배경은 무엇인지,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갈지에 대한 꼼꼼한 검토와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자신의 당리당략을 위해 ‘듀베르제 법칙’을 무시하면서까지, 내각제 개헌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분단상황 속에 있는 대통령제 정부형태와 충돌하는 독일식 연동형비례제와 다당체제를 추구하는 정당들의 당론과 후보들의 노선을 보면, 87년 대통령 직선제를 민주화로 쟁취한 시민경험을 무시하는 돈키호테처럼 참 무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제도간의 충돌이 일어날수록 정치학의 기본상식으로 돌아가서 제도설계의 방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핵심적으로 대통령제 정부형태와의 제도적 부합성을 고려하지 않고 외국의 제도를 기계적으로 이식하려는 ‘제도이식론’을 경계하고 회피해야 한다. 분단상황에 처한 우리 실정에는 ‘정치적 다양성’보다 ‘국정안정성’(governability)이 보다 고려 돼야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제도설계가 필요하다. 극단적인 다당체제는 대통령제 정부형태에 부합하지 않아 국정불안정과 정치불안을 초래하면서 국민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
20대 대선이 목전에 다가왔지만 각 당 후보자간 재원 대책없는 포퓰리즘 경쟁과 저주에 가까운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인해 정책경쟁이 실종된 상태에서 그 어느 때보다 유권자의 정치불신이 높다. 이런 상태에서 여론조사 1위와 2위를 달리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정치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매우 약하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정치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그 핵심에는 그들의 후보위치가 당내 경선 전후로 달라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그들은 경선 전에는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비주류 정치인이거나 정당생활을 해보지 않는 정치 초년생으로서 정치권 밖이나 정당 밖 아웃사이더의 위치에서 여의도 정치권 및 당내 기득권을 타파하겠다고 시원하게 비판하면서 정치개혁을 선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내 경선이 끝나고 각 당의 공식적인 대선후보가 된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선거캠프를 운영해야 할 그들은 자신들이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586세력과 TK세력들의 도움과 협조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기에 공천권 제한과 같이 민감한, 기득권을 타격하는 정치개혁 공약들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중앙선관위가 주관하는 방송토론회의 세 번째 주제인 정치영역 토론을 앞두고 각 당 후보들은 공통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극복 등 정치개혁공약들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들은 문제의 원인진단에 대한 충분한 숙의와 국민적 동의 없는 즉자적 수준에서 권력구조 개편이나, 인과론적인 설명 없는 무조건인 개헌만 일방적으로 주창함으로써 국민적 합의형성을 어렵게 하고 역설적으로 정치개혁 추진을 더 어렵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본 글에서는 이런 정치개혁 추진의 역설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개혁의 핵심 쟁점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 그 원인진단과 처방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대안을 공론화하고자 한다. (필자)
제왕적 대통령제 타파 등 정치개혁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들
이번 20대 대선에서 각 정당과 후보들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겠다고 공약하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국무총리에게 헌법상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도입, 총리 각료 추천권 등을 공약했다. 또한 이 후보는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해 지방자치제를 강화하고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하겠다고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여기에 2월 24일 민주당은 안철수·심상정·김동연 대선후보에게 ‘국민 통합 정치개혁안’을 만들고 실천할 것을 제안했다. 대선을 앞두고 군소후보들과 연합을 통해 지지율을 끌어오겠다는 의도가 내포돼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권력구조 개편을 선언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민주당이 제시한 정치개혁안을 살펴보면 크게 △국민통합 정부 실천 △국민통합 국회를 위한 선거제 개혁 △국민통합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민주화 등 3대 개혁 방향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정치개혁안을 발표하면서 "구체적으로 국무총리 국회추천제를 도입하고, 국민내각을 구성하겠다"며 "여야 협의로 국무총리를 추천하고 총리의 인사제청 절차를 법률로 제도화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어서 “진영을 넘어 최선의 인물로 국민내각을 구성하고 청와대 정부에서 국무위원 정부로 개혁하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여야정 정책협력위원회를 구성하고, 초당적 협력을 위해 국가 안보회의에 여야 대표를 참여시키고, 사회적대타협위원회도 구성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역시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겠다고 공약했다. 윤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잔재를 청산하고, 대통령실 개혁을 통한 국정운영 효율성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는 2월 15일 선거운동 출정식에서 “국민위에 군림하는 청와대 시대를 끝내고 국민과 동행하는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진영과 정파를 가리지 않고 실력 있는 전문가를 등용하겠다. 권한은 과감하게 위임하고 결과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 역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고 총리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안 후보는 청와대 조직과 예산을 절반으로 축소하고 대통령 중간 평가를 공약했다. 또한 정부 명칭 역시 ‘안철수 정부’가 아닌 ‘안철수 행정부’로 바꾸겠다고 했다. 심 후보 역시 청와대를 실무형 조직으로 줄이고,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를 내걸었다.
하지만 이와 같이 대선 후보들이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 혁파 공약은 이미 유권자들의 귀에 익숙하다. 이런 공약들은 대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언급한 공약들이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한 배경은 무엇인지,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갈지에 대한 꼼꼼한 검토와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과 정당>의 지적대로, 그동안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진단과 처방으로 제시된 대안들이 대체로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분단상황 속 대통령제 정부형태’라는 변수 그리고 책임정당정부의 작동원리를 가로막는 지구화, 후기산업화, 탈물질주의, 탈냉전화 등과 같은 ‘21세기적 시대상황’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제시된 안들이었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단적인 예가 대선후보들이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결선투표제, 다당체제, 독일식 연동형비례제 등의 방안은 ‘분단상황 속 대통령제 정부형태’라는 변수 및 ‘21세기적 시대상황’이라는 변수가 연동형 비례제와 충돌하여 제도간의 부합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학술적으로 “비례대표제는 내각제 정부형태와 다당제에 친화적이고, 다수대표제는 대통령제 정부형태와 양당제에 친화적이다”라는 ‘뒤베르제의 법칙’을 참조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를 결합하는 것은 실수고 비례대표제에 의해 곤란한 제도가 대통령제 정부형태”라는 정당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조반니 사르토리의 언급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왜 제왕적 대통령제 타파공약은 그동안 실현되지 못했을까?
‘제왕적 대통령제’란 권력분립의 원리가 작동해야 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의회나 다른 기관의 견제가 현저히 약화되고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가지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것은 개헌 논의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비판할 때 반대 진영에서 흔히 쓰는 논리로도 사용된다.
대선이 다가오면 늘 나오는 공약 중 하나가 청와대 비서실 축소였다. ‘민정수석실’의 기능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강력한 제도적 기능으로 작동해 온 만큼, 그 기능을 축소하자는 원성이 많다. 대권 후보들은 앞을 다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언급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 비서실의 기능과 역할을 확 줄이고 장관들에게 실질적인 의사 결정 권한과 인사권을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그때 말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여러 각도로 비판하면서도 그것이 근본적으로 극복되거나 개선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핵심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념을 발생론적인 인과관계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기가 힘들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념을 발생론적인 인과관계로 보지 않을 경우, 곧바로 권력 구조의 개편으로 접근하여 내각제냐, 이원 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냐 하는 식의 개헌 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대통령의 리더십이 ‘제왕적 대통령’으로 작동해 왔다는 것과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제가 ‘제왕적 대통령제’인지는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학자들이 다수의견으로 검토하고 논의한 대로 우리 헌법상 권력구조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간주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 헌법에 보장하고 있는 권력 구조를 ‘제왕적 대통령제’로 가정하여 이를 타파하고자 권력구조의 변경을 이유로 해서 개헌의 명분을 삼는 접근은 단견이고 속단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발생론적 인과관계로 접근할 경우에는, 굳이 어려운 권력구조의 개편이라는 개헌을 동반하지 않고 현재의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틀 안에서 각 권력 기관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분권 및 자치 구조를 만듦으로써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더 적절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위한 권력구조의 개편과 관련하여 하나의 이상론적인 대안을 예시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그 해법의 핵심에는 수평적·수직적 권력의 분산과 자치가 있다. 첫째, ‘수평적’ 권력의 분산과 자치로서, 대통령의 권력을 입법부와 사법부로 분산시키고 자치를 강화시켜야 한다. 특히, 사법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해서 대통령의 행정 권력을 견제하도록 해 ‘법치주의’를 살리는 일이 급선무다. 법의 방패를 강화해서 사람이 아니라 법이 지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둘째, ‘수직적’ 권력 분산과 자치로서, 중앙 정부의 권한을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서 주민 자치와 지방 정부로 분산시켜야 한다. 중앙 정부의 예산권, 인허가권, 경찰 등의 공안 권력을 읍·면·동 주민 자치 정부와 지방 정부로 대폭 이관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을 포함한 민간부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시민 사회 영역의 자율성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이상론적인 예시가 곧바로 현실화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고 개혁은 힘들기 때문에, 현실에서 가능한 부분부터 개혁에 임하는 실용적인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론적인 접근과 별개로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릴 정도로 현행 헌법 체제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해 학계의 의견은 갈린다. 물론 그렇다는 소수의 의견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대통령 개인의 문제나 개인 리더십과 연관된 정치 관행 및 정치 문화의 문제라는 다수의 의견도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념을 발생론적 인과관계로 보면, 대통령제 정부하에서도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이 융합하게 되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등장할 수가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비극은 ‘삼권분립의 민주공화국 대통령제를 내각제처럼 운영하는 모순’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당정 분리, 원내 정당화, 오픈 프라이머리, 대통령제 리더십의 복원 그리고 당·정·청 관계를 청와대 중심이 아니라 당·정·청이 대등하고 균형적으로 협력하는 수평적 당·정·청 모델(거버넌스 모델)의 개발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공화정(republic) 정체의 정신인 권력 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 및 보충성의 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대통령제화된 정당(presidentialized parties) 모델’의 중요성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위해서는 수평적 당·정·청 모델(거버넌스 모델) 개발이 중요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대통령제 정부형태와 친화적인 정당모델을 찾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접근이 대통령제 정부형태와 의원내각제 정부가 다르다는 조건 속에서 구체적인 정당의 형태를 보거나 정당개혁의 방향을 판단하지 않은 측면이 강했다. 이번 기회에 기존의 접근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정당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원인진단과 처방과 관련한 시각 및 바람직한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보통 정당의 최종 목표가 정치권력의 핵심인 정부기구를 획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정당에 대한 이해를 구체적인 정부 형태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대통령제 정부형태와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는 정부를 구성하는 권력의 존재 형식과 운영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권력을 형성하고 운영하는 정당의 조직과 행태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학술적으로 볼 때, ‘제왕적 대통령제’에 기초한 수직적인 당·정·청 관계는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공천권, 국회의원의 장관 임명권, 정부의 배타적인 예산 편성권, 기타 권력 기관 등을 동원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 되는 ‘대통령제화된 정당(presidentialized parties) 모델’에서 탄생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제화된 정당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제화된 정당’(presidentialized parties) 개념은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스와 슈가트에 의해 선구적으로 설명되었다.
새뮤얼스와 슈가트는 <Presidents, Parties, and Prime Ministers: How the Separation of Powers Affects Party Organization and Behavior>(2010년)라는 저서에서 ‘권력의 분립’(separation of powers)과 동시에 ‘목적의 분립’(separation of purposes)을 추구하는 대통령제 정부에 기반한 정당은 ‘정당조직이라는 집단’보다 ‘대통령 개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커서 당 조직의 이념적 정체성과 당 기율이 의원내각제 정부에 기초한 정당조직의 이념적 정체성과 규율에 비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새뮤얼스와 슈가트의 관련 개념은 ‘권력의 분리’와 ‘목적의 분리’라는 긴장관계에 따라 대통령과 집권당 간의 관계는 내생적으로 ‘수직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고, 이에 따른 갈등과 반발이 수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리고 이것에 대한 합리적인 해법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론적 시사점이 많다. 이런 ‘대통령제화된 정당’(presidentialized parties) 개념은 대통령제라는 정부 형태가 정당의 이념적·조직적 정체성 및 당기율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분점 정부와 같은 여소 야대 위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대통령과 집권당의 충돌을 회피하기 위한 합목적적인 규범을 내재화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제 정부형태에 친화적인 정당 모델과 공천 방식 및 선거 제도까지 선택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을 이론적 함의로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제 정부형태에 친화적인 정당체제와 선거제도는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선구적인 연구자는 듀베르제이다. 듀베르제는 대통령제와 친화적인 선거제도와 정당 체제의 효과에 대한 결과를 ‘듀베르제 법칙’(Duverger’s Law)으로 정리하였다. ‘듀베르제의 법칙’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는 양당제를 낳고, 2차 투표가 허용되는 다수제와 비례제는 다당제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명제이다. 이것은 정치학에서 하나의 경향적 법칙으로 자리매김한 대표적인 가설로 평가되고 있다.
이 듀베르제 법칙은, 공화주의적 대통령제 정부는 안정성을 강조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와 집권당과 반대당으로 나뉘는 양당체제가 친화적일 수밖에 없고, 반대로 의원내각제 정부는 다원성을 강조하는 비례대표제와 다당체계가 친화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매우 도식적으로 설명해 주는 데 유효하다.
한국 제왕적 대통령제의 발생 원인과 처방들
그렇다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발생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하라”라고 법조문화되어 있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또한 ‘대통령제 그 자체’ 때문에 발생한 것도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탄생하는 핵심적 원인은, 정당의 보스나 리더들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행정부를 장악한 상태에서 국회의원 공천권과 장관직 등을 무기로 집권당 다수 의원들을 통제하여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이 융합되는 ‘내각제식 국정운영 방식’을 선택하는 것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는 국회의원의 공천권을 장악한 정당의 보스나 리더가 대통령이 되어 삼권 분립의 국정 운영이 아닌 국회 다수당을 매개로 입법부 권력 그리고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공정위 등 행정부 권력, 사법부 권력을 전일적으로 융합하여 총동원할 수 있을 때 탄생한다는 점이다.
미국식 삼권분립의 대통령제 정부에서 의회와 대통령은 서로 독립되어 있어서 견제와 균형의 관계가 자연스럽다. 삼권 분립의 대통령제를 ‘당·정·청 일체의 내각제 방식’으로 운영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삼권 분립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다.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국회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보좌하는 통법부나 청와대 경호실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 주민자치와 지방자치제에 기초한 연립 정부와 삼권분립이 잘 지켜지는 미국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의 여야가 ‘원내정당화에 기초한 협치’를 통해 대통령의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우리는 국회 다수파인 민주당과 대통령과 청와대가 ‘당·정·청 일체의 내각제 원팀’이 되어 제1야당을 견제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다르다. 특히, 삼권분립의 연방 정부인 미국은 지방 정부들이 주민자치와 ‘보충성의 원리’로 연방정부를 견제한다. 이것은 한국의 중앙집권 정부가 지방정부의 주민자치를 보장하지 않고, 각종 보조금과 법으로 통제한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따라서 우리 정치가 그동안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따른 국민 분열로 갔던 배경에는 삼권분립의 헌법정신과 유리된 국정 운영 노선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번 기회에 이것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국민통합과 여야 협치를 구두선으로 언급한다고 하더라도 ‘당·정·청 일체의 내각제적 국정 운영 노선’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는다면 국민 통합과 여야 협치는 실현불가능한 목표로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잠정적 결론으로 ‘당·정·청 일체의 내각제 원팀 방식’의 국정운영 노선에서 벗어나 ‘삼권분립의 대통령제에 부합하는 거버넌스적 방식’으로 국정운영 노선을 전환해야 한다. 즉, ‘대통령제의 내각제적 운영 모순’을 멈추게 하는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 삼권분립과 주민자치의 미비 그리고 내각제적 운영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독립, 주민 자치와 지방 자치의 획기적 강화, 그리고 국회와 국회 의원의 자율성이 획기적으로 제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 융합을 연결시키는 매개 고리인 ‘정당의 하향식 계파 공천방식’부터 개혁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의 장관겸직을 자제하고, 청와대와 행정부 관료 출신을 공천하여 대통령의 경호 부대를 만드는 국회의원 공천 관행을 바꿀 필요가 있다. 대통령에 의한 ‘하향식 계파 공천’이 되지 못하도록 ‘미국식 예비선거제’와 같은 상향식 공천 제도인 ‘국민참여경선제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정치적 다양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설계 방안
‘듀베르제 법칙’을 수용한다면, 우리는 분단상황에 있는 한국의 대통령제 정부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와 양당제와 친화적이고, 내각제 정부는 비례대표제와 다당제와 친화적이라는 정치학의 기본상식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자신의 당리당략을 위해 ‘듀베르제 법칙’을 무시하면서까지, 내각제 개헌의 사전포석으로 분단속 대통령제 정부와 충돌하는 독일식 연동형비례제와 다당제를 추구하는 정당들의 당론과 후보들의 노선은 87년 대통령 직선제를 민주화로 쟁취한 시민경험을 무시하는 무모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제도간의 충돌이 일어날수록 정치학의 기본상식으로 돌아가서 제도설계의 방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제도설계에 실패한다면 지난 21대 총선에서 준연동형비례제의 도입에 따른 위성정당의 등장으로 다당제의 다양성보다는 양당제의 안정성을 선택한 유권자들의 선택에 따라 군소 정당들이 몰락하는 역습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적 상황을 반영하는 제도개혁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과 집권당의 관계는 ‘권력의 분리’와 ‘목적의 분리’에 따라 ‘수직적 관계’에 따른 갈등과 반발이 수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고려하여 제도간의 부합성이 큰 정당모델, 공천방식, 선거제도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첫째, 대통령제 정부형태와의 제도적 부합성을 고려하지 않는 ‘제도이식론’을 경계하고 회피해야 한다. 분단상황에 처한 우리 실정에는 ‘정치적 다양성’보다 ‘국정안정성’(governability)이 보다 고려 돼야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제도설계가 필요하다. 극단적인 다당체제는 대통령제 정부형태에 부합하지 않아 국정불안정과 정치불안을 초래하며 국민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
둘째, 극단적 다당제나 극단적 양당체제 보다 ‘온건한 양당체제’를 유도하는 한국식 병립형 비례대표제 확대(지역구대 비례대표비율 200대 100정도)를 설계해야 한다. 독일식 연동형비례제가 대통령제의 국정불안정성과 관련있는 여소야대의 다당체제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제 정부와 독일식 연동형비례제의 충돌을 피해야 한다.
셋째, 온건한 양당체제 속 정치적 다양성 실현을 위한 대안적인 정당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21대 총선에서 시대전환, 기본소득당 등 소수정당이 ‘더불어시민당’에 들어가서 연합공천을 받은 사례처럼, 정당모델을 ‘빅텐트’와 같은 ‘포괄·네트워크정당모델’(엄브렐러 파티)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즉, 정치적 다양성은 극단적인 다당체제가 아니라 ‘온건한 중도수렴의 양당체제’에서도 정당내 다양한 정파들이 병존하여 포괄적 공론장으로 존립할 수 있는 ‘시민참여형 네트워크정당모델’로도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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