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선후보 경제분야 TV토론에서 윤석열 후보가 "삼성전자도 애플처럼 데이터플랫폼 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안철수 후보는 "빅데이터 기업과 플랫폼 기업은 완전히 다른데 윤 후보가 두 개를 구분을 못 하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사실 삼성전자가 데이터플랫폼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LG전자가 카카오와 같은 사업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든지 또는 SK하이닉스가 네이버 같은 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정 기업의 미래를 간섭하는 듯한 대선 후보의 발언이 뜬금없기도 했지만 빅데이터와 플랫폼의 개념을 제대로 구분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 후보의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또 안 후보의 설명대로 글로벌시장에서 한국경제는 제조업 중심이고, 미래지향적 전환을 위해서는 제조업 기반 위에 빅데이터 기업과 플랫폼 기업의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은 설득력 있다. 경제와 혁신 분야에서 윤 후보의 한계가 엿보였던 아쉬운 장면이었다.
과거 기업은 공장을 확보하고 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시대 플랫폼 기업은 자신의 네트워크에 사용자들을 서로 연결해줌으로써 성장해왔고, 빅데이터 기업은 축적된 데이터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성장한다. 초연결사회에서는 제품 자체의 가치보다 '연결망과 연계됐을 때의 새로운 가치'가 더 중요하다. 연결망에서 분리된 제품은 이미 죽은 제품이다.
2022년 대선은 초연결사회와 혁신에 대한 이해가 높고 미래지향적인 경제관을 가진 후보가 선택 받아야 한다. 특히 작년 한국이 마침내 선진국임을 국제 공인 받고 명실상부한 G10 국가에 진입한 작금의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거시경제 전문가인 김용범 전 기재부 1차관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 정부는 한국의 성장판이 닫히기 전 마지막 5년"이라고 강조하면서 "다음 5년을 잘하면 한국은 G10에서 G7으로 비상하고, 반대로 마지막 황금 시기를 살리지 못하면 일본·유럽처럼 성장이 멈춘 디플레이션 함정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지금 글로벌 선도국가로의 부상을 결정짓는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정치인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법률과 정치는 물론 경제 분야까지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여 데이터 분야의 아마존을 꿈꾸는 미국기업 피스컬노트 팀 황 대표의 말이다.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과 한계를 많이 느꼈다. 정치인이 돼 이를 바꿔보려고 정치학과에 입학했는데, 돌이켜보니 세상을 바꾸는 건 정치가 아니라 기술이었다"
침대에 누워 앱으로 주문하고 잠에 들면 다음날 문앞에 배달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진정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그 변화의 주기도 매우 짧아졌다. 전통시장에서 대형마트로 패권이 넘어갔나 했더니 곧 온라인쇼핑이 등장했고 또 얼마 되지 않아 앱 기반 모바일 커머스 세상이 되었다. 수십 년 은행에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다가 폰뱅킹의 시대가 열려 기술의 발전을 체감하자마자 곧 인터넷뱅킹으로, 또 모바일뱅킹으로 쉴 새 없이 전환됐다. 하나의 트랜드가 고작 5년 남짓이다.
신기술에 적응하자마자 또다시 새로이 적응해야 하는 일상의 반복이 지금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빛의 속도에 버금가는 기술의 발달과 이로 인한 산업의 혁신적 전환은 순간을 놓치면 도태된다는 생존경쟁의 비정함을 지금의 경제생태계에 자리 잡게 했다. 오죽하면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조차 '망할 기업은 빨리 망하게' 해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됐을까.
중요한 것은 정책입안자들 즉 정치인들의 인식 전환이다. 작년 최진석 교수는 '친일잔재의 완전한 청산'을 주장한 정치인을 비판하며 "현실에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보지 않고, 자신이 '믿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만 제기"한다면서 그 이유로 "생각이 멈췄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어 그는 "왜 아직도 친일잔재 청산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반도체 문제는 이슈가 되지 않는가"라며 정치인들을 질타한다.
정치컨설턴드 박성민도 "경험이 아니라 기술이 더 중요해진 시대에 패권이 디지털 네이티브인 2030세대로 넘어갔다"면서 그 이유로 "이들 손에는 '586 세대'의 조직화된 힘보다 훨씬 강력한 혁명의 무기인 스마트폰"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야흐로 디지털 패권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리더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안철수 후보는 국내 디지털 분야에서는 선구적 리더다. 서울대와 카이스트 교수는 물론 기업 경영자로서의 경력은 과학과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만큼은 다른 후보와 확실히 차별화된다. 이재명 후보는 그의 실용주의적 자세와 정책적 민첩함이 이 분야에 일찍 눈을 돌리게 했다. 정부의 적극적 인프라 조성과 민간투자를 통한 디지털 대전환과 신재생 에너지 지원을 그의 공정성장 정책에 담았다.
반면 4차 산업혁명과 혁신경제 분야에서 윤석열 후보의 경우는 아쉬움이 많다. 그의 공약은 '민간중심의 성장'이라는 매우 일반론적 선언 아래 규제혁신과 노동시장개혁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는 이명박 후보 시절의 공약보다도 추상적이고, 그래서 '과거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탈원전 백지화, 신한울원전 3,4호기 건설 재개는 물론 탄소배출량 감축목표 재조정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이탈하는 공약마저 포함되어 있다. 대체에너지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조속히 만회를 위한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할 분야다.
유례 없는 비호감 대선이라 선택이 어렵다고 한다. 그 비호감 후보들도 모두 우리 팔자다. 결국 우리는 그 중에서 가장 나은 후보를 골라야 한다. 선거는 착한 사람 고르는 게 아니다. 우리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끌어 데려다 놓을 사람을 뽑아야 한다. 결국 그 사람의 능력이다. 지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를 침공했다. 많은 이들이 외교적, 지정학적 역학관계에서 전쟁 발발의 원인을 찾으려 하는데 정작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러한 구조적 요인보다는 위정자의 전쟁에 대한 '인식'과 이들의 '오판'에 초점을 두어 전쟁 발발의 원인을 분석한다. 세계 2차대전도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발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듯이.
디지털 혁신시대 지도자의 덕목
지도자는 추종자들에게 비전을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들이 목표를 정확히 인식을 하고 공동체의 방향이 설정된다. 그리고 지도자는 절대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대를 앞서 가야 하는 이유다. 또한 지도자는 특히 경제분야에서는 '선택과 집중'의 지혜와 판단력이 필요하다. 사실은 결단력이다. 기업경영의 경험에서 뼈저리게 터득한 것인데 골고루 지원하면, 골고루 안 된다.
아무리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더라도 리더의 실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추종자들도 각기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조직이 와해되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행정적 역량의 한계에 대한 지적에 '전문가를 쓰면 된다'고 주장하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실력 있는 전문가를 등용하는 식견도 결국 리더의 실력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면 망하는 건 순식간이다.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김인식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진 경기를 감독이 이기게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감독 때문에 다 이긴 경기가 뒤집히는 경우는 숱하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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