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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함께 사는 길] 기후정의를 요구한다·① COP26 글래스고 기후변화협약 리뷰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가 끝났다. 석탄이 살아남았다. 석유와 가스의 수명도 연장됐다. 그 결과, 2050 이전 탈탄소 체제 이행은 불가능하다는 비극적인 현실 인식이 온 세계에 비등하다. 한국에서는, 이대로는 기후파국이란 공포를 지렛대 삼아 보수정치와 연대한 한국 산업계의 원전 재활론의 비판소리 드높다. 화석연료의 역할 유예를 통해 탈탄소 사회를 향한 진보의 속도를 늦추고 핵을 탈탄소의 수레로 둔갑시키는 모든 시도는 기후변화를 납치하는 짓이다.

2050 탄소중립을 향한 에너지 전환의 길로 달려갈 가장 확실한 전략이자 수단은 사회가 통째로 '정의로운 전환'에 돌입하는 것이다. 탈탄소 에너지 체제를 향한 전환의 길에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불러올 기후행동의 기준율, 그것은 '전환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시민들은 기후정의를 세우기 위한 기후행동의 지구 전선에 서있다. 

기후정치의 느린 발걸음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야심 찬 합의였다.' 

'지구공동체를 실존적 위험에 빠뜨린 기념비적인 실패였다.'

지난 11월 13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막을 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결과를 두고 나온 엇갈린 반응이다. 이처럼 극과 극을 오가는 상반된 평가는 알록 샤르마 총회 의장의 마지막 발언에서 예고되어 있었다. 그는 협상 결과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면서도 합의가 깨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고 말했다.

30년 가까운 기후변화 협상의 역사에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두고 일치된 평가가 나온 당사국총회는 없었다.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던 파리협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역사적 전환점' 또는 '외교사적 승리'라는 찬사 뒤에는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수사에 그쳤다"는 비판이 따라다녔다.

절반의 승리 절반의 실패

'글래스고 기후 조약'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은 협상의 진전 여부에 주목한다. 내년 이집트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국가별 감축목표를 다시 점검하기로 한 점, 보조금 중단 대상으로 석탄과 화석연료가 합의문에 처음으로 포함된 점, 6년간의 치열한 논의 끝에 국제탄소시장에 관한 규칙을 마련한 점 등은 협상의 불씨를 살려낸 중요한 성과라는 것이다. 2030년까지 산림파괴를 끝내고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 배출을 줄이는 데 합의한 것도 역사적 진전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합의 내용이 기후변화 대응의 긴급성에 부합하는지와 과거의 약속이 행동으로 현실화되는지를 중시한다. 석탄 발전의 단계적 '폐지'는 단계적 '축소'로 후퇴했고, 부유한 국가들의 기후기금 조달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손실과 피해' 기금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못한 실망스러운 회의였다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도자들이 기후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보호에 실패하고, 대신 화석연료 기업의 이익에 굴복함으로써 인류 전체를 배신했다'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글래스고 총회의 주요의제 목록에는 석탄, 자동차, 돈, 나무 등이 이름을 올렸다. 단연 맨 윗줄을 차지한 것은 석탄이다. 총회 막바지를 뜨겁게 달궜던 것도 석탄 이용과 화석연료 보조금의 철폐를 가속화한다는 합의문 초안의 채택 여부였다. 석탄 규제가 석유와 가스에 대한 규제의 선례가 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인도, 중국, 남아공 등 거대 신흥경제국들은 '석탄발전 폐지' 문구를 고치기 위해 마지막까지 버텼다. 결과는 이들의 승리였다.

석탄만큼이나 주목을 받았던 것은 자동차였다. 포드, 메르세데스, 볼보 등은 주요 시장에서 늦어도 2035년까지 휘발유 및 경유 차량 판매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영국 정부가 이 합의를 '세계적인 랜드마크 협약'으로 추켜세운 것은 개최 국가의 의례적인 찬사였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자동차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이 내연기관차 시대의 종말을 재촉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충전설비 등 전기차 인프라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은 폭스바겐, 도요타, 현대, BMW 등도 탄소중립 선언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 문제는 기후변화 협상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민감한 쟁점에 속한다. 기후위기를 야기한 역사적 책임과 같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부유한 국가들은 기후변화 피해의 책임과 보상 요구를 일관되게 거부해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개발도상국의 기후행동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부터 매년 1000억 달러를 제공하겠다던 약속은 3년 뒤로 미뤄졌다. '손실과 피해' 기금 문제 또한 내년 협상을 기약해야 한다.

석탄, 자동차, 돈과 함께 '나무'도 일약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산림과 토지이용에 관한 글래스고 지도자 선언'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40여개 국가 정상이 참여했다. 2030년까지 산림 손실과 토지 황폐화를 멈추고 되돌린다는 약속이 지켜진다면 COP26이 거둔 가장 큰 성과로 기록될 것이다. 전문 분석기관인 '기후행동추적'은 이 선언으로 약 11억 톤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 11월 13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 변화 회의(COP26)에서 한 시위자가 현수막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

좌절과 희망으로 갈라진 세계

글래스고 회의는 '가장 백인이 많고 특권적인 총회'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환경, 여성, 인권, 원주민 단체를 대표하는 참가자들이 총회 장소인 청색 구역에서 배제되고 출입증은 매우 제한된 인원에게만 발부됐다. 기술적인 이유로 온라인 참가가 금지되고 멸종반란 소속 시위대들이 체포되면서 글래스고 특별정상회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글래스고는 '더 나은 세계의 모습'을 두고 각축을 벌이는 이데올로기 전장이었다. 전투가 총회장 바깥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덴마크와 코스타리카가 출범을 주도한 '석유와 가스 너머 동맹'은 석유업계 로비스트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무력화시킨 상징적인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프랑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웨덴 등이 참여한 이 동맹의 목표는 석유와 가스 추출 종료 날짜를 정하고 신규 채굴허가를 중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국총회 개최국이자 세계 20위 산유국인 영국과 석유채굴 중단법안을 갖고 있는 스페인은 이 동맹에 합류하지 않았고 거대 산유국인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 또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들 국가는 석유 및 가스시설에서 누출을 방지해 메탄 배출을 줄이겠다는 서약에 참여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호주와 러시아는 서명을 거부했다.

동맹 출범 소식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동안 석유와 가스 산업을 대표하는 500여 명은 사뭇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 전시관에서는 가스에서 수소를 생산하고 탄소포집기술을 적용해 화석연료 산업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열띤 논의가 이루어졌다. 분명한 것은 석유와 가스를 필요로 하는 세상, 이것이 화석연료 산업이 꿈꾸는 세계라는 사실이다.  

탄소중립 개념과 탄소상쇄도 도마에 올랐다. 마크 카니 유엔 기후금융특사가 130조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450여 개 은행과 자산관리자 등의 탄소중립 정책을 발표한 순간, 그린피스와 액션에이드 활동가들은 그린워시를 경고하는 플래카드를 펼쳐들었다. 환경운동가들은 카니 주도로 출범한 '넷 제로를 위한 글래스고 금융동맹'이 탄소상쇄를 통해 탄소 배출의 무료 통행권을 제공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산림 보호나 맹그로브 복원과 같은 '자연 기반 해법'도 갈라진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옹호자들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를 동전의 양면으로 보고 두 의제가 연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비판가들은 자연의 상품화와 거대기업의 탄소배출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을 경계한다. 자연 기반 해법은 종종 탄소상쇄와 동의어로 인식되지만 아직 공식적인 정의와 기준은 없는 상태다.

정치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가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의 창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기온 상승폭을 섭씨 1.5도 이내로 유지하는 것은 협상할 수 없는 기후변화의 물리적 임계값이라고 말한다. 흥정이나 타협이 가능한 일반적인 정치협상의 대상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한 과학과 정치 사이에는 여전히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 2009년 G20 국가들은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2015년 파리협정에 서명한 이후에도 석탄, 석유, 가스 보조금에 3조30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석탄, 석유, 가스는 파리협정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는 금기어다. 기후변화 협상에서 화석연료 생산국들이 에너지원보다 배출량 논의를 선호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이번에 공식대표단에 화석연료 기업의 대표를 포함시킨 당사국은 총 27개국이다. 화석연료 대표자들이 대표단 배지를 달면 주요 협상가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대표단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후행동추적(CAT)'이 36개국의 국가결정기여(NDC)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글래스고에서는 진전이 있었지만 기후위기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수준이다. 주요 배출국들은 2년 전보다 감축목표를 상향했지만,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바이든 행정부가 제시한 미국의 새로운 목표는 실현될 경우 15억025억 톤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가 예상된다. 하지만 1.5℃ 경로에 부합하는 2030년 목표에 비해 5010% 부족하며, 이는 미국의 약속이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2030년 이전에 배출량 정점에 도달하고 2060년까지 탄소중립에 도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2015년에 제출한 목표를 개선한 것이지만 1.5℃ 목표에는 여전히 불충분한 것으로 간주된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55% 감축할 계획인데, 이는 파리협정의 목표 달성에 비추어 '거의 충분한' 수준이다. 하지만 기후재정 공여에 있어서는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도는 글래스고에서 207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30년까지 전력의 절반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상당한 진전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매우 불충분하다'는 평가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비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폐지'가 '축소'로 약화되었다고 해서 화석연료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신호마저 바꿀 수는 없다. 더딘 속도지만 정치는 지구를 구하는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 2009년 코펜하겐 회의가 실패로 끝났을 때 세계는 섭씨 3.5도의 온난화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21년 글래스고에서는 2.4도까지 떨어졌다. 이는 몇 년 전만해도 기대할 수 없었던 진전임이 분명하다. 주요국이 약속을 신속한 행동으로 옮긴다는 전제가 충족된다면.

글래스고 이후 세계는 다극화된 기후레짐이 야기하는 새로운 도전들과 씨름해야할 것이다. 과학과 정치의 괴리는 세계 인구 대다수의 소비가 아니라 부유한 소수의 과도하게 큰 탄소발자국에 기인한다. 구조적으로 내재화한 '탄소 불평등'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인도와 중국 등이 구축한 '석탄 동맹'을 설득해야 한다.

시급한 것은 정치가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의 무게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연평균 4.17%씩 줄여야 하는 우린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오늘 숙제를 미루면 내일 해야 할 숙제가 2배로 늘어나는 것이 이 게임의 규칙이다. 향후 10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 모두의 미래가 결정된다. 편견과 도그마에서 자유로워진 정치만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

* 이 글은 11월 19일 자 <내일신문> 금요진단 'COP26, 더디지만 지구 구하는 쪽으로 한발 옮겼다'를 가필(加筆)한 것입니다. 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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