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부산에서는 주요한 사안이 있으면 시민 접근성이 좋은 서면 한복판에서 대중집회를 했고 집회 후 행진을 하고 마무리 모임을 하던 곳이 하야리야 미군 부대 주둔지였다. 지금은 주변 부지에는 부산진구청과 대형 마트가 자리하고 있고 미군이 주둔했던 곳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부산시민들의 안식처가 됐다. 그러나 인근의 '아파트 병풍' 논란이 거센 곳이기도 하다. 당시 '평화운동'을 한 시민의 노력으로 미군부대는 철수했고 다행히 그 터가 부산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미군 주둔 부지는 고엽제나 석면, 유류오염 및 기타 발암물질이 검출되면서 주민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전국적으로 문제시되어 왔다. 대구, 군산, 원주, 부천, 화성, 용산 등등 정부가 돌려받을 때 미군기지 정화비용이 3000억 원 이상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고 그 반환부지들 전부를 정밀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야리아 기지 부지를 시민공원으로 개발하던 2013년 당시 심각한 부지 오염실태의 정밀조사를 요구한 부산 시민사회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2021년 당시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오염실태 정밀조사 시민 요구 무시하더니
부산에서도 2007년부터 '부산 시민공원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등 하야리야 기지 터의 공원화를 추진하면서 부산시민들의 환경적으로 안전한 부지 반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는데, 환경기초조사 결과 미군 자체조사보다 훨씬 더 심각한 오염현황이 알려지면서 크게 문제가 되었다. 2004년과 2006년 조사를 바탕으로 2007년 국회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총면적의 30% 이상이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납은 기준치의 13배, 수은은 60배, 아연은 3배의 오염상이 확인됐고 BTEX(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자일렌과 그 화합물)도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석면오염이 발견되는가 하면, 1급 유해물질인 벤조피렌, 납, 비소 등이 검출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시민사회의 환경기초조사 공개요청에 대하여, SOFA 협정을 명분으로 하야리아 부대 터의 오염실태를 공개하지 않았고, 결국 시민사회는 대책본부를 결성하면서 환경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하야리아 부대 기지뿐 아니라 주변 부지의 토양오염 및 지하수 오염을 부산시가 직접 나서서 조사를 벌이도록 촉구하였다. 서면에서의 캠페인과 부지 앞 기자회견 등 시민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야리아 부지의 토양오염은 신속한 '시민공원조성'에 방해가 된다는 시민공원 조성 명분에 묻히고 말았다.
문제가 다시 드러난 것은 2021년 5월, 부산시민공원 내 국제아트센터 공사 중 심각한 수준의 토양오염이 드러나면서부터다. 미군 주둔지라는 특성으로 인해 정밀조사와 책임을 묻는 것이 어려웠던 상황 때문에, 장기간 은폐되어온 오염 실태가 다시 드러난 것이다. 시민공원 전 부지에 대한 전수조사와 정밀조사 그리고 오염정화가 필요한 상황이 다시 제기되었다. 문제 지역의 토양오염 가능성을 거짓 없이 확인하기 위해서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리고 조사 결과에 따라 정화 및 복원활동이 진행돼야 하는데 중앙 부처와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특히 민관합동조사를 통해 정확한 조사 및 진단이 이루어지려면 절차적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역 행정 책임처인 부산시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제는 부산시의 태도다. 10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것 없이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아트센터 부지는 오염되지 않은 지역으로 분류된 곳임에도 잔류 기름 오염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부산시는 대기질 조사, 지하수 오염 및 나무 식생 상태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토양 상태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시민의 상식으로 볼 때, 대기질 및 식생조사에서 오염도가 파악될 정도라면 시민공원에 시민들의 방문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지 않겠는가! 시민공원을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오염현황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되어야 하고 민관협의체를 꾸려서 투명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부산시는 여전히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아트센터처럼 눈으로 확연히 드러난 오염이 발견되면 조사를 하겠다는 소극적인 태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토양오염은 시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특히 수백만의 아이들이 방문하는 공원부지의 토양오염에 대해, 예방 및 해결이 아닌, 발생하면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민관공동 오염실태조사하고 원칙대로 정화하라
국제아트센터 부지의 토양오염으로 인해 부산시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지금 부산시가 펼쳐야 할 행정은 시민공원 부지에 대한 제대로 된 토양오염조사를 실시하여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시민공원을 안식처로서 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산시의 태도는 지난 8월 초 개최된 자문단 회의에서도 재연되었다. 자문단에는 전문가 시의회 환경단체 시민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였지만 회의는 형식적으로 운영되었고 일회적으로 진행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시민공원 토양오염 문제 해결 과정은 시민과 관계기관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부산진구의 DRMO(미군군수물자재활용유통사업소)나 서부산의 에코델타시티 사례와 마찬가지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여 토양오염의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고 오염된 토양을 부지 내에서 제대로 처리하는 과정을 함께 진행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부산시민공원은 부산의 중요한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다. 지난날 미 하야리아 부대 부지를 반환받고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는 데 실질적 역할을 담당한 것은 부산지역의 시민사회와 부산시민들이었고, 시민공원의 주인은 부산시민이기 때문에 부산시민공원이 '시민공원'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부산시민공원에는 연간 5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방문한다. 주로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이 기름에 범벅되어 있다면, 당장 건강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산시는 부산시민공원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살리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토양오염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여야 한다. 앞서 계획한 형식적인 시민공원 토양오염 조사 방법으로 어물쩍 넘기려 해서도 안 된다. 지역주민들과 적극 소통하면서 시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바른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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