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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탈출했습니다' 뉴스에 '덜컹'...그러나 우린 곰의 삶을 생각해 본 적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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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탈출했습니다' 뉴스에 '덜컹'...그러나 우린 곰의 삶을 생각해 본 적 있을까?

[함께 사는 길] '사육곰' 아닌 '곰'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생각할 때

지난 7월 6일 용인의 한 사육곰 농가에서 곰 두 마리가 탈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근의 주민들에게 긴급히 안전문자가 발송되고 포획단이 곰들을 쫓았다. 한 마리는 탈출 당일 사살되었고, 다른 한 마리는 사냥꾼 등 전문가들(지자체 기준)이 몇 주간 추적했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포획단은 잡히지 않은 한 마리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 마리가 탈출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졌지만 농장주는 계속 두 마리가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법 도축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졌다.

배설물 더미 위에서 음식물 쓰레기로 연명 

해당 농가는 2012년에도 사육곰 탈출 사고가 두 번이나 있었다. 2016년에는 동일한 농장주가 운영하는 여주의 다른 농장에서 사육곰이 탈출하기도 했다. 이번 탈출 사고 역시 예견된 사고였다. 그러나 매번 사육곰 탈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탈출한 곰'에 포커스를 두고 신변이 어떠하든 속히 포획되고 처리되어야 하는 존재로 간주한다. 정부는 이 사육곰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 탈출한 것인지 그 참혹한 현실을 알면서도 감옥을 벗어난 생명을 그저 위험한 존재로 낙인을 찍는 것이다.

1980년대 초 농림부는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사육곰 수입을 장려했다. 많은 농가들이 사육곰을 무작위로 들여왔고 좁은 철장 속에 가둬 사육했다. 1993년 정부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국제거래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곰 수입 금지정책을 실시했지만 이미 수입된 곰들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 사육곰이 수입되지 않았지만 기존에 들여온 곰들의 지속적인 번식으로 2000년대 후반까지 약 2000마리로 개체수가 급증했다. 정부는 2005년에서야 야생동식물보호법 시행으로 사육곰 처리 기준을 마련하면서 사육곰 관리를 각 지자체에서 환경청으로 이관했다. 그리고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증식 금지를 위해 중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인공번식을 법적으로 규제했다. 

하지만 일부 농장은 소유한 곰들을 '웅담채취용'에서 '전시관람용'으로 용도전환한 후 불법으로 증식해 왔다. 지난날 환경부는 사육곰의 불법 개체증식을 적발해도 사육곰과 같은 야생동물 수용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농장주에게 곰을 돌려주는 것은 물론 농가의 사육허가도 그대로 유지하고 적발된 개체의 중성화조차 시행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안일한 대처와 방관 그 자체다. 사법부 역시 불법 증식에 대한 환경부의 고발에 솜방망이 처벌을 이어오고 있다. 곰 한 마리에서 나오는 웅담 판매 값은 불법 증식에 대한 벌금을 내고도 남는 수준이니 어느 농장주가 규제를 따르겠는가.

▲ 화천의 한 사육농장에서 구조된 곰은 마땅한 시설이 없어 기존 농장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타이어에 소방호스를 엮어 만든 방석은 발바닥이 약한 곰들의 상태 개선에 도움이 된다. ⓒ동물행동권 카라

사육곰이 처한 환경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다. 시멘트 바닥에서 어떤 행동 풍부화도 먹이 풍부화도 없이 사료만을 급여 받는다. 이조차도 그나마 매우 잘 지내는 수준이다. 대부분의 곰들이 배설물 더미 위 뜬 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급여 받는 처참한 환경에 살고 있다. 좁은 쇠창살로 둘러싸인 녹슨 뜬 장에서 머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정형행동을 보이고 지속되는 스트레스로 옆 칸의 곰을 공격하여 손이나 발이 절단되기도 한다. 지루한 삶 속에서 매일 똑같은 음식물쓰레기로 연명하는 이들의 삶은 죽어서야 끝이 나는 것이 이 사육곰들의 현실이다. 

용인 농장에서 탈출한 곰도 스스로 탈출했다기보다는 녹슬고 녹슨 뜬 장 바닥 일부가 내려 앉아 생긴 구멍으로 뜬 장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육곰 농가들은 열악한 수익구조를 핑계 대며 스스로 시설관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환경부 역시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간 생츄어리 건립 추진

다행스럽게도 환경부와 구례군이 2024년까지 불법증식으로 몰수된 곰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을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불법번식을 적발해도 마땅한 보호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곰을 돌려주던 관행을 없앨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설은 몰수된 곰을 보호하기 위한 한정된 규모의 시설이라 이 시설만으로 사육곰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300마리가 넘는 곰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 받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매해 급격히 그 수가 줄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야생에서 살아야할 이들이 좁고 단조로운 우리에 갇혀있는 것에 대하여 일말의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의 사육곰들이 남은 생이라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사육곰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지는 다양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육곰들은 반달가슴곰으로 멸종위기종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반도의 반달가슴곰과는 다른 아종이며 사육곰 간의 무분별한 번식으로 생태적 보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해결방안은 '생츄어리(sanctuary)'다. 생츄어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구조된 동물을 평생 보호하는 시설을 뜻한다. 생츄어리는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구조된 동물들이 남은 생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본능대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올 여름 '동물권행동 카라'와 '곰보금자리 프로젝트'는 화천에서 사육곰 15마리를 구조하고 이들을 위한 민간 생츄어리를 건립하겠다고 선언했다. 곰을 현재의 농장에서 돌보면서 앞으로 1년 동안 생추어리를 건립해 내년 여름 곰들을 생츄어리로 이동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곰보금자리 프로젝트는 현재 곰들이 지내고 있는 농장의 시설을 개선하는 것을 시작으로 곰들의 건강을 살피고 곰들의 행동 풍부화, 먹이 풍부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세달 만에 곰들의 건강상태나 행동이 확연히 좋아진 것을 관찰할 수 있다. 트레이너인 활동가를 주축으로 병원 이동을 위한 케이지 훈련, 채혈을 위한 무뎌지기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훈련의 결과로 5마리 곰을 마취 없이 채혈하는데 성공했고 점차 다른 곰들의 채혈을 진행할 예정이다. 화천의 곰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사육곰의 현실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더불어 생츄어리 건립을 위한 모금도 진행 중이다.(☞ 바로 가기 : "평생을 철장에 갇힌 곰의 생명을 지켜주세요")  

하지만 모든 것이 장밋빛은 아니다. 화천 곰들을 구조한 지 한 달 만에 두 마리의 곰을 떠나보냈다. 한 마리는 구조 얼마 후 내실에 들어간 후 나오지 않아 확인한 결과 내실 안에서 죽어있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른 한 마리는 디스크 의심으로 병원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디스크에 의한 합병증으로 명을 달리했다.

화천의 곰들은 20살 남짓으로 추정된다. 수명에 가까워지고 있는 곰들은 노화나 각종 질병의 위험이 크다. 화천의 곰들이 다른 농장들의 곰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긴 하겠으나 시설이 더 열악한 다른 농장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추측한다. 곰들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혹자는 사육곰들을 그대로 두면 수명을 다해 죽을 것이고 그러면 사육곰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과오를 마주하고 전향적으로 이를 해결하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경제규모는 곰들에게 생츄어리를 충분히 만들어주고도 남는다.

▲ 화천의 한 사육농가에서 구조된 곰이 활동가들이 설치해준 해먹에서 쉬고 있다. 생츄어리가 완공되면 이 낡은 철창에서 벗어나 더 '곰 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동물행동권 카라

사육 곰을 비롯한 야생동물을 위해

화천의 곰들을 돌보는 동물권행동 카라와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의 활동가들은 마음이 급하다. 아픈 곰은 병원 진료를 받게 하고 싶고, 맛있는 것, 몸에 좋은 것도 많이 먹이고 싶고, 환경 개선도 하고 싶다. 무엇보다 생츄어리에서 곰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 하지만 앞으로 넘어야할 과제들이 산더미이다. 생츄어리 부지를 확보해야 하고, 생츄어리를 디자인하고 세워야한다. 동시에 곰들이 무사히 이동할 수 있도록 돌봄과 건강관리도 꼼꼼히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모금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내년에 만들어질 생츄어리는 화천의 곰 13마리로 시작하지만 점차 규모를 늘려 수년 내에 곰 180마리를 수용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더 멀리는 구조된 다양한 야생동물을 위한 생츄어리로 발전하고자 한다. 앞으로의 1년을 얼마나 열심히 달리는가가 곰들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의 동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활동가들은 잘 알고 있다. 마라톤을 100m 달리기 속도로 달리는 기분이지만 지치지 않고 결승선을 반드시 통과할 것이다. 사육곰이 아닌 곰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그 여정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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