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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건, 식당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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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나는 비건, 식당에 간다

[함께 사는 길] 고기를 덜 먹는 삶 ①

현실이 된 기후위기시대에 산다. 기후와 환경에 대한 부채감은 날로 커지지만 기후위기와 환경을 지키는 삶을 살 방법도 알 수 없고 안다 해도 실천하기 힘든 세상이다. 어떻게 살아야 덜 해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생활 속에서 기후를 지키고 지구를 살리는 삶의 실천을 고민하는 이들이 아름다운 궁리와 실천을 행하고 있다. 지구와 인간, 그리고 기후안정을 위해 가장 확실한 대안은 '고리를 덜 먹는 삶'이다. 이런 '고기를 덜 먹는 삶'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서울환경연합이 제비지도(비건식당 네트워크 지도), 제로플라스틱과 채식을 돕는 앱(지구공)을 준비해 캠패인(제비의삶 시즌2)을 진행하고 있다. 고기를 덜 먹는 삶은 이전과 다른 삶이다. 그 다른 삶이 지구와 건강하게 공존하는 길이다. 편집자.

'제비지도'를 만든 까닭

비건은 누구인가? 비건을 말하려면,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간다는 사실부터 말해야 한다. '연결'이란 타자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서로의 존재와 호혜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학습된 차별과 분별을 통해 이 '연결감'은 쉽게 바스러지고, 한번 흩어진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이기는 쉽지 않다. 내재화된 차별과 분별심, 그로 인한 단절이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비건'이 되는 것은 그런 것이다. 힘들더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시 동물, 자연과 같은 타자와 나의 연결감을 회복하려는 것. 그리고 하루 세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매 순간마다 이 세상에 덜 '유해'한 존재가 되기 위해 우리 사회의 굳건한 육식 문화를 거부하고 다시는 '단절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매일의 자기 선언과 행동이다.

ⓒ서울환경연합

밥상 메뉴는 개인 취향일 수 없다

'비건 지향'은 신념이 뚜렷한 환경, 동물, 인권 운동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와 지구 사이의 단절은 기후위기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기후위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2021년 현재 비건 지향 실천은 점차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지구촌의 동물계는 인간이 키우는 가축동물이 67%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간이 30%에 달한다. 인간이 키우지 않는 야생동물은 단 3%밖에 되지 않을 만큼 인간은 '과한 육식'을 하고 있다. 이 과도한 육식을 지탱하기 위해 전 세계 농경지의 80%가 오로지 축산업에 이용되고 있다. 미국이 수확하는 축산업 사용 곡물 총량은 전 세계 기근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다.

이뿐인가? 지구촌의 축산업, 낙농업 그리고 어업이 소비하는 화석연료는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가축 배설물로 인한 메탄가스는 온실기체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보다 56배나 강력하다. 농경지에 뿌리는 비료에서 발생하는 아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보다 무려 298배나 강력한 온실기체이다. 끝이 아니다.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숲에 방화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블랙카본은 기후위기를 부채질하는 온실기체이자 초미세먼지의 주요 원인 물질이기도 하다. 오로지 인간의 식탁에 고기를 올리기 위해 한정적인 농토를 낭비하고도 모자라 숲을 태워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모자란 농토를 벌충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가 그렇게까지 해서 고기를 먹어야 할 이유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동물을 먹기만 하는 게 아니다. 가죽옷을 입기 위해 사냥하고 사육한다. 의료를 비롯한 다양한 목적으로 생체실험을 하고, 눈요깃거리로 삼기 위해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 가두고 혹사시킨다. 동물과 자연에 대해 강제할 수 있는 물리력을 거리낌 없이 행사하면서 그것을 '식사라거나 인간을 위한 동물의 당연한 희생'으로 여기는 사고 자체가 폭력이다. 그런 사고의 궁극에 더 큰 물리력을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에게 행사하는 인간의 폭력 또한 정당화시키는 비극이 존재한다.

비거니즘이 단순히 '채식'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음식과 제품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에서의 윤리성을 따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비거니즘은 환경뿐만 아니라 자본과 계급에 의한 심각한 빈부 격차와 인권, 동물권, 그리고 건강 등의 여러 의제와 결부돼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이 지구상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과한 육식'을 즐기기 위해서는 지구 반대편에서 기근에 시달리는 이들의 식량을 빼앗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동물을 학대하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켜야 한다. 이 모든 사실들이 폭로하는 명백한 진실은 '밥상의 메뉴는 절대적으로 개인의 취향의 문제일 수 없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비건 이해와 인프라

나는 타인에게 내 식습관을 소개할 때 '비건 지향 페스코테리언(육류는 먹지 않고 생선, 동물의 알, 유제품은 먹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외식할 땐 육류를 소비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혼자 밥을 먹거나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들과 식사를 할 땐 되도록 비건에 가까운 식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접근성'과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두 가지의 이유가 존재한다.

내가 비건 지향의 삶을 막 시작했을 때는 비건 식품이나 비건 식당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낮았기 때문에, 비건이 되려면 식사를 대부분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어서 장바구니 안으로 넣었던 마트의 음식은 이젠 좁쌀만큼 작아 잘 읽히지도 않는 성분표기를 자세히 보고 나서야 먹을지 안 먹을지 결정할 수 있고, 심지어 성분표기가 제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아 '먹는다'는 선택지를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잦았다. 비건 식당의 경우, 건강하고 윤리적인 생산 과정을 거친 식재료를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라 아무래도 메뉴의 단가가 비싼 곳이 많았기 때문에 학생이었던 나는 자주 방문하기 부담스러웠다. 애초에 비건 식당이 많지 않은 탓도 있었다. 서울이야 인프라가 잘 구축이 되어있는 곳이니 망원동, 한남동과 같이 트렌드를 잘 따르는 동네에선 몇 군데 찾아볼 수 있지만, 비수도권의 경우 '전멸' 수준이다. 그래도 내가 비건 지향을 시작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특히 근 3년간 채식 인구가 급증하고 채식 시장의 파이가 커지면서 수입되는 비건 식품과 제품의 수가 많이 늘어났다. 비건을 대상으로 한 스타트업도 꽤 생겨나는 추세이고 심지어 기업에서도 환경경사회경(ESG)의 일환으로 비건 식품과 제품의 출시를 늘려가고 있다. 덕분에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비건 식단으로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게 됐다.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주변의 시선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사람을 만나 밥을 먹을 때마다 내 식생활 지향을 일일이 설명한 후 양해를 구해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 비건 지향을 선언한 후로 처음 갖는 친구와의 식사 자리는 대부분 비건과 비거니즘에 대해 그 친구가 별생각 없이 던지는 말들에 식은땀 흘려가며 설명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채식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면전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이들이 많아 '채식을 한다'고 말 꺼내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런저런 이유에서 웬만하면 외식을 피하고 도시락을 챙기거나, 식당에 가서 육류가 포함되지 않은 메뉴를 고르는 식으로 타협을 볼 때가 많다. 그런 식으로, 나는 번거로운 경우가 생기면 내 비건 지향을 설명하지 않기도 한다. 원활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불편한 논쟁을 피하려면 침묵이 상책인 순간도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발언'한다. 애초에 지구와 동물에 대한 관심 때문에 비건 지향이 된 사람이 말해야 할 자리에서 침묵할 순 없는 법이니까.

ⓒ서울환경연합

제비들의 외식 생활 돕는 '제비지도'

'100% 완전 비건'은 있기 힘들다. 우리는 거대한 육식 문명의 자장 속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나 비건에 가까운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는 10명의 비건 지향 인구가 모여 만들어 내는 힘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비건 지향 인구가 늘어날수록 비건 지향의 실천은 더 많은 이들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된다. 외식할 때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건 식당이나 비건 메뉴를 선택할 수 있고 비건에 대한 이해도가 사회 전반에 상향평준화되어 일반 식당에서도 비건 옵션 메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정도의 사회가 된다면, 비건을 지향하는 삶을 사는 건 지금보다 훨씬 덜 부담스러워질 것이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서울환경연합이 준비한 것이 있다.

외식에 어려움을 겪는 비건 지향인, 그리고 비건 식당을 운영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비건 식당과 제로웨이스트 가게 정보'를 담은 '제비지도'이다. 카카오맵에 등록된 이 '제비지도'에서는 전국의 비건 식당과 제로웨이스트 샵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지도에 등록된 가게는 2021년 7월 기준 약 150곳으로, 확실히 서울에 위치한 가게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지도에 더 많은 가게를 등록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건과 제로웨이스트의 삶을 지향하는 인구가 더 많아져 '제비' 가게에 대한 수요 자체가 확대돼야 한다. 환경을 위해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제비지도'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 건강한 가치를 공유하는 구성원의 파이도 함께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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