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표면 50% 이상을 뒤덮고 있던 숲이 지금은 31%까지 줄어들었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된 2020년에도 전 세계 열대우림 훼손은 전년보다 12% 증가했다.
단연 벌채가 문제다. 콩고 등 서아프리카에선 초콜릿, 인도네시아에선 팜유 때문에 원시림이 파괴된다. 동남아시아에선 새우 양식장 때문에 100년 안에 맹그로브 숲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또 아마존은 지난 50년 동안 17%나 줄었다. 소고기와 콩 때문에 터키 면적의 숲이 불태워졌다.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INPE)의 보고로는 심지어 올해 상반기 5개월 동안에만 뉴욕시의 3배 면적이 사라졌다. 전년보다 25% 더 증가한 수치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개발과 벌채를 독려하는 탓이다.
최근에는 바이오매스 때문에 대규모 벌채가 이뤄지고 있다. 유럽 재생에너지 중 산림바이오매스 비중이 50% 남짓. 이 중에 우드 펠릿(나무 연료)이 압도적이다. 유럽 수출을 위해 미국 남부의 숲이 아마존보다 4배 더 빠르게 쓰러지고 있다. 한때 흑인 노예들이 목화를 땄던 바로 그곳에서, 지금은 그 후예들이 펠릿 공장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또 캐나다 원주민 지역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벌채목 17%도 펠릿으로 가공돼 유럽으로 실려 간다. 이 지역 원시림은 이제 3%도 남지 않았다. 펠릿이 화석연료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방출한다는 과학자들과 환경단체들의 하소연에도 세계의 숲은 계속 잘려 나가고 있다.
현재 지구상의 원시림 벌채는 놀랍게도, 대부분 식민지 시대의 착취 경로와 정확히 겹쳐진다.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미국 남부 등 자원 약탈과 노예무역의 식민 지배가 이뤄졌던 경로를 따라 숲이 벌채되고 있다. 일본 종합지구환경학연구소(RIHN) 연구에 따르면 G7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1인당 원시림 4그루를 벌채한다. 한국도 1인당 4그루를 베어낸다. 목재, 종이, 소고기, 대두, 초콜릿, 팜유 등 북반구 자본주의의 소비와 탐욕을 위해 원시림의 상당수가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 수탈의 재현이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런 산림 벌채와 훼손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량이 전체의 17.4%를 차지한다. 20% 이상이라는 연구도 적지 않다. 인위적 벌채가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게다가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서 폭염과 산불로 숲은 더욱 훼손되고 있다. 작년 호주 산불로 서울의 100배 크기가 잿더미로 변했고, 캘리포니아 산불로는 남한의 16% 면적의 숲이 사라졌다. 올해는 북미의 산불 시즌이 훨씬 앞당겨져,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서울시 3배가 넘는 면적이 불타는 중이다. 한편 시베리아에선 '좀비 산불'이 땅속의 이탄을 태우며 맹렬히 숲을 태우고 있다.
이렇게 겹겹의 위기 속에서도 여봐란듯이 벌채와 방화가 자행되고 있다. '어린 나무가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한다'는 주장이 과학의 외피를 쓴 채 숲의 훼손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우드 펠릿을 위해 숲을 베어내도 어린 나무를 심으면 그만이다. 인도네시아 원시림을 불태워도 어린 나무를 심으면 괜찮다며 버젓이 탄소배출권이 거래된다. 또는 한국 산림청처럼, 어린 나무로 탄소중립을 하자며 싹쓸이 벌목을 합리화한다.
거짓말이다. 오래된 원시림이 인공림보다 탄소를 수십 배 더 격리한다는 연구도 허다하다. 벌채와 방화는 오히려 숲속에 잠든 탄소를 깨워 바깥으로 박쥐처럼 날려 보내는 일과 같다. 탄소 격리 시스템에 '멈춤' 버튼을 누를 뿐 아니라 숲의 토양이 오염돼 탄소가 방출되고, 벌목된 목재들에서도 그 활용에 따라 시간 차를 두고 끊임없이 탄소가 배출된다.
대규모 벌채로 오염된 숲은 천연림의 에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데 수십 년 이상이 걸린다. 단일 수종의 인공림은 병충해에 취약하고, 생물다양성이 형편없으며, 탄소 격리 능력도 뒤떨어진다. 그리고 점점 기후위기 스트레스가 가중되면서 인공 재배된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있다. 어린 나무의 탄소 흡수율만 산정한 채 오랜 세월 토양과 나무와 환경조건 사이에서 형성된 에코 시스템을 배제하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 이데올로기다. 교토 의정서, 탄소 상쇄 같은 그럴싸한 개념들로 숲의 파괴를 용인하는 위선적 세계의 말풍선.
이런 와중에 탄소중립을 위해 30억 그루를 벌채하고 어린 나무를 심겠다는 한국 산림청의 계획은 초유의 자기 기만에 가깝다. 나무를 심으면 배당되는 국가보조금 때문에 멀쩡한 나무들을 벌채하는 관료집단의 파괴적 관성. 그저 조림을 위한 벌채라니. 탄소를 대량으로 방출하고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것, 그걸 우리는 '에코사이드'(Ecocide, 생태학살)라고 부른다.
우드 펠릿만 해도 그렇다. 최근 7년 동안 한국의 펠릿 수입량은 100배로 폭증했다. 졸지에 최대 수입국 중 하나가 되자, 정부 관료들은 국내 생산량을 확대하라고 산림청을 닦달했다. 유럽연합을 모방해 바이오매스 비중을 높이려는 것이다. 각종 보조금 잔치와 더불어 석탄화력 혼소발전이 독려됐다. 30억 그루 벌채 계획의 밑그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이제 원시림 나무는 바이오매스 분류 기준에서 빠지게 될 확률이 높다.(☞ 관련 기사 : <Mongabay> 6월 15일 자 'Forest advocates press EU leader to rethink views on biomass and energy') 또 머잖아 우드펠릿도 재생에너지 항목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관료사회의 비전의 부재는 이렇게 시간과 사회적 비용만 낭비하게 한다.
오래된 숲을 파괴하면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은 네슬레 초콜릿처럼 달콤한 거짓이다. 숲과 원주민, 요컨대 자연조건과 인간에 대한 수탈 시스템이 기후위기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산림청은 여전히 숲을 약탈하고 싶어하는 자본주의와 우리의 욕망이 빚어낸 어리석은 광대일지도 모른다.
기후위기 시대의 숲? 가급적 놔두면 된다. 생물다양성을 가득 품고 있는 육지의 집, 아마도 최후의 보루가 될 그 숲을 가만히 존중하면 된다. 보조금을 벌채와 조림이 아니라 숲을 가꾸고 지키는 사람들에게 주면 된다. 우리가 외면해서 그렇지, 정말 무섭도록 간단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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