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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빙자한 산림청 벌목정책으로 나무가 잘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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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탄소중립' 빙자한 산림청 벌목정책으로 나무가 잘려나간다!

[함께 사는 길] 산림청이 지키는 것은 숲인가? 임업인가?

환경운동가로서 가까운 시일 안에 반드시 도래할 기후파국의 시급함을 알리고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후위기는 분명 인재(人災)다. 정도의 차이일 뿐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우리는 그 책임을 인정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주범인 자본과 기득권은 이 기후위기마저 자신들의 이윤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

멋진 사례들은 넘쳐난다. 기업에 환경사회적 책임을 묻는 개념인 ESG는 국내에서 '잘 팔리는' 금융상품이 되었고, 언론은 ESG 클럽이란 것을 만들어 기업으로부터 연회비로 몇천만 원씩 챙긴 뒤 그 돈으로 소위 '콘텐츠'를 만드는 장사를 한다. 횡령죄로 물러났던 총수가 ESG 위원장을 맡으며 복귀하는 코미디도 한국에서는 무척 진지한 현실이다. 백번 양보해 기업이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존재 이유 자체가 특정 집단의 이윤 추구인 이들에게 공공의 이해와 직결된 기후위기 대응에 진정성을 기대하는 것이 순진한 생각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 기관이, 그것도 자연환경을 관장하는 기관이 특정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그린워싱의 선봉에서 기후위기 운운하는 것을 듣는 것은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다. 정부가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끝끝내 고집하고, 오염물질 배출 산업에 규제 완화 및 세제 감면 의지를 보이는 등 기후위기 대응과는 전혀 호응하지 않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개중 단연 경악스러운 정책은 탄소중립이란 외피를 쓴 '30억 그루 나무 심기' 사업이다.

▲ 충북 진천의 벌채 현장. ⓒ환경운동연합

임업진흥원과 산림청의 차이

임업진흥원의 비전은 '임업의 미래를 선도하는 국민과 임업인의 행복파트너'이다. 타당한 얘기다. 애초에 우리나라 임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산림청의 비전이다. '일자리가 나오는 경제산림, 모두가 누리는 복지산림, 사람과 자연의 생태산림'

조직이 달성하고자 하는 지향점인 비전에 가장 먼저 '일자리'와 '경제산림'을 명시한 게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사업 방향인 전략과제를 어떻게 수립했는지 살펴보자. (1)산림자원 및 산지관리체계 고도화 (2)산림산업 육성 및 일자리 창출 (3)임업인 소득안정 및 산촌활성화 (4)일상 속 산림복지체계 정착 (5)산림생태계 보전 강화 (6)산림재해 예방과 대응을 통한 국민안전 실현 (7)국제산림협력 주도 및 한반도 산림녹화 완성

결국 (1)(2)(3)번은 산림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과제이고, (4)번이 온 국민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산림 복지, (5)번에 와서야 산림 생태계 보전을 말한다. 산림청이 바라보는 숲은 산림?임업 분야 종사자들의 소득을 증대하기 위한 수단이자 인간이 관리해야 할 '자원'인 듯하다. 산림생태계 보전은 없으면 허전하니까 억지로 하나 끼워놓은 느낌이랄까.

지루하게 임업진흥원과 산림청의 비전을 비교한 이유는 하나다. 문서상으로도, 실제 행정상으로도 두 기관의 숲을 보는 관점이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이 산림청에 기대하는 역할은 산림생태계 보전일까, 산림자원 활용일까? 산림청이 발 걸치고 있는 현실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 4월 22일 서울 여의도 산림비전센터 앞에서 산림청의 벌목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환경운동연합

나무는 죄가 없다

임업진흥청은 아니, 산림청이 발표한 '30년간 30억 그루 나무 심기' 사업은 '2050 탄소중립 산림부문 추진전략'이란 이름으로 계획되고 있다. 이 사업의 핵심은 30년 이상 된 나무가 탄소흡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베어낸 뒤 그 자리에 어린나무를 심어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산림청 관계자의 주장과 달리 나무의 연령과 탄소흡수 능력에 대해서는 학계의 정설이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오래된 나무일수록 탄소흡수 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인 네이처(Nature)를 포함해 국내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산림청은 식목일을 기점으로 여러 언론사를 통해 이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마치 전 국토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30년 이상 된 숲이 아주 중대한 하자가 있어 기후위기 대응에 발목 잡는 것인 마냥 불안감을 조성하는 여론전을 펼쳤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인간의 탐욕적인 소비 활동이 야기한 기후위기의 책임을 말 못 하는 나무에 떠넘길 생각을 한다니. 그것도 수많은 생명의 삶의 터전이자, 온갖 이로운 생태계서비스를 제공하는 숲을 단지 탄소흡수 기계쯤으로 환원해버리다니!

탄소중립 숫자놀음의 실체

산림청은 자신의 산하기관인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2018년 기준 연간 4560만 톤인 국내 산림 온실가스 흡수량이 2050년에는 산림의 노령화로 인해 1400만 톤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2050년까지 30년간 나무 30억 그루를 심어 3400만 톤의 탄소를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숫자를 뜯어 놓고 보면 순수하게 국내 산림에 나무를 심어서는 2070만 톤 밖에 탄소흡수량을 확보하지 못한다. 나머지 1330만 톤은 해외 조림에서 610만 톤, 목재 이용에 따른 탄소 저장량 200만 톤, 화석에너지를 산림바이오매스로 대체한 데 따른 탄소 배출 감축량 520만 톤으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즉, 산림청이 30년 동안 경기도 면적에 육박하는 산림을 날리고, 조림해봤자 국내 산림에서 확보할 수 있는 탄소흡수량 증가는 670만 톤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이마저도 26억 그루를 심어서 만든 숫자라고 보기 어렵고, 기존에 벌채하지 않은 산림의 탄소흡수량을 합산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산림청이 가장 악질적으로 숫자놀음을 하는 부분은 나무와 표토에 축적되어 있는 탄소량은 아예 계산하지 않았을뿐더러, 임도(목재를 운반하기 위해 설치하는 도로)를 놓고, 나무를 베고, 운송하고, 가공하고, (연료로) 불태울 때 발생할 막대한 탄소 배출량은 어느 곳에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벌채함으로써 사라질 수많은 생물종에 대한 사전 생태조사 계획 및 그 가치에 대한 평가 역시 찾아볼 수 없다.

탄소중립을 위해 탄소흡수원을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기존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훼손된 지역, 유휴지 등을 최대한 발굴해 새로운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탄소배출 책임이 가장 큰 '전력', '산업', '수송' 분야에서 획기적인 감축 계획이 흡수 계획과 함께 연동되어 치열하게 논의되어야 하는데 산림청은 이 중요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늙은 나무 프레임으로 아주 납작하게 뭉개버리고 말았다.

▲ 산림청의 탄소중립 벌목정책으로 잘려나간 나무들. ⓒ환경운동연합

탄소중립 빙자한 벌목 확대 정책

전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자 임업진흥청은 아니, 산림청은 이 사업이 경제림에서 진행될 합법적인 벌채·조림 행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늙어서 쓸모없는 20~30년 된 숲 날려서 어린 나무 심으면 탄소 흡수 잘하고 생물다양성도 증가한다는 주장도 반복했다. 하지만 주 메시지는 경제림, 그중에서도 사유림에서 벌채해 사유재산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목재 자급률이 낮기 때문에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지속가능한 벌채'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 산림 탄소흡수원 확대의 실체는 기존에 하던 벌목 활동의 연장선이자 본격 임업 부흥 프로젝트였다.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첫째, 산림청은 경제림의 40%인 90만ha에서 26억 그루 나무 심기를 계획하고 있다. 전체 산림면적으로 놓고 보면 14% 정도 되는데 이는 경기도 면적과 맞먹는다. 2년마다 서울시 면적만 한 숲이 사라질 것이다. 둘째, 경제림이라고 해서 모두 벌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림에 있는 공익용산지(자연휴양림, 보안림, 백두대간 등)는 마땅히 사업에서 제외되겠지만, 임업용 산지 또한 천연림이 분포하는 지역은 철저한 생태조사를 통해 보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산림청이 촉발한 이 환원적이고 계량적인 탄소 논쟁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자연을, 숲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숲은 인간이 '관리'만 잘하면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대상인가. 국내에서 생산된 목재의 대부분이 펄프, 목제팰릿 등 소형저급재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이런 산업을 진흥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가. 목재를 포함해 다양한 해외 산림자원에 의존(소비)하는 지금의 삶의 방식은 윤리적인가. 물론, 산림청은 우리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테지만, 시험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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