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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의 유성기업 '어용노조' 판결, 어떻게 가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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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의 유성기업 '어용노조' 판결, 어떻게 가능했나

[인터뷰] 김상은 법률사무소 새날 변호사

유성기업은 2011년 7월 복수노조법 시행 이후 사측이 어용노조를 만들어 노조파괴를 시도한 첫 사업장이었다.

법 시행과 동시에 새 노조인 유성기업노조(유성노조)가 설립됐고, 사측이 직원들에게 유성노조로의 가입을 독려했다. 그 결과 기존 노조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유성지회)는 2012년 소수노조가 됐고 교섭권을 박탈당했다.

2년여 만인 2014년 유성지회는 다시 다수노조가 됐다. 이 때도 사측은 소수노조인 유성노조와 교섭을 계속했다. 현행 복수노조법은 소수노조와 교섭을 할지 말지를 사측이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이용해 사측이 어용노조를 밀어준 셈이었다.

지난달 25일, 이 같은 노조파괴 수법에 제동을 거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측이 주도해 설립한 노조는 노조로서 자주성이나 주체성 같은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설립 자체가 무효'라는 내용이었다.

이제 유성기업은 사측이 주도해 만든 노조는 노조가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확정된 첫 사업장이 됐다.

이번 판결이 이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다. 노동조합법에는 사용자가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2000만 원 이하 벌금, 2년 이하 징역'에 처하게 한 '부당노동행위' 조항이 있다.

하지만 부당노동행위가 실제 사용자의 구속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0.6%에 불과하다. 전체 사건 평균의 절반 정도다. 한국사회에서 사용자의 노조파괴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유성기업에서는 어떻게 어용노조 설립 무효 판결이 가능했을까. 또 이번 판결의 법률적 의미는 무엇일까. 지난 2일 서울 서초 법률사무소 새날 사무실에서 '유성노조 설립 무효 청구 소송'에서 유성지회를 대리한 김상은 변호사를 만났다.

▲ 김상은 변호사 ⓒ김한주

"법리 구성 넘어 노동자들의 싸움과 이로 인한 증거 확보가 있어 가능했던 판결"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재판에서는 입증이 중요한데 노동 사건은 사측이 자료의 대부분을 갖고 있어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며 "유성노조 설립 무효 판결이 가능했던 건 단순히 법리 구성의 문제를 넘어 노동자들의 끈질긴 싸움과 이로 인한 증거 확보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판결과 관련한 최초 증거는 유성지회가 2011년 5월 아산공장 점거파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왔다.

어용노조 설립 직전 유성기업에서는 노사 갈등이 일고 있었다. 2009년 노사가 합의한 '주간 연속 2교대제' 시행이 미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간 연속 2교대제'는 주간조 10시간, 야간조 10시간이던 노동시간을 주간조 8시간, 야간조 8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을 뜻한다.

유성기업 노사는 2011년 1월부터 5월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이에 대한 교섭을 진행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2011년 5월 18일 유성지회는 유성기업 아산공장 점거 파업에 들어갔다. 사측은 직장폐쇄로 맞섰다. 사측이 고용한 용역직원이 행진 중이던 유성지회 조합원들을 차로 들이받아 조합원 한 명이 전치 12주 진단을 받고 총 13명이 다치는 일도 있었다.

그러던 중 공장점거에 놀라 피신한 현대차 임원이 두고 간 물품 사이에서 유성지회 조합원들이 몇 가지 문건을 발견했다. '불법파업 단기대응방안', '업무정상화 방안', '쟁의행위 대응요령' 등 문서와 현대차 직원이 유성기업 임원에게 보낸 이메일이었다.

유성지회 조합원들은 김 변호사에게 문건 분석을 의뢰했다. 김 변호사가 보니, 해당 문건에는 직장폐쇄와 노조탄압 방법은 물론 현대차가 입게 될 피해나 곤란함과 관련한 내용,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이름과 관련한 증거가 있었다.

김 변호사는 "그때 창조컨설팅이라는 이름을 처음 봤고 유성기업에 노무법인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노동자들이 당시에 문서를 입수하지 못했다면, 노조파괴 노무법인의 존재는 한참 뒤에나 알려졌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유성기업지회의 아산공장 점거 파업은 2011년 5월 24일 정부가 경찰을 투입해 농성 중인 노조원을 강제로 해산하며 막을 내렸다. 이후 유성지회는 조직을 유지하며 크고 작은 싸움을 계속했다. 이에 따라 노조파괴 사건의 여진도 유지됐다.

2012년에는 창조컨설팅에서 퇴직한 노무사가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이었던 은수미 성남시장에게 창조컨설팅 내부 문건을 제보한 일도 있었다. 문건에는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은 물론 발레오전장, 영남대의료원 등 14곳에서 노조를 무너뜨리는데 관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모인 증거를 바탕으로 유성지회와 김 변호사는 2013년 '유성노조 설립 무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유성지회의 승소였다.

김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유성 사건은 현장 투쟁과 법률 소송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한 사건"이라며 "저는 현장에서 모인 증거와 실제로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을 법원에 표현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 2011년 5월 25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파업 현장에서 강제로 끌려나오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노조파괴 사건, 민사상으로도 무효 판결 났지만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노조파괴 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규율을 완성하는 의미가 있다고 평하며 이에 대해 "유시영 유성기업 전 대표는 이미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상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징역형을 살았다. 유성노조 설립 무효 판결은 민사적으로도 유 전 대표의 행위가 무효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에 따라 앞으로 사용자들이 사용자 주도로 노조를 설립하는 데는 제약이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이후에도 이와 같은 판결이 잇따를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노조파괴 행위의 증거는 사측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노동자가 이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두 곳 정도가 비슷한 소송을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실제 입증이 쉬울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사측의 노조파괴 행위는 노동자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유성기업 노동자의 26.8%가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2016년 3월 25일에는 유성기업 사측에 의해 징계위원회에 의해 회부된 한광호 열사가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노조파괴가 발생했을 때의 증거 수집을 언제까지고 피해를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김 변호사는 한국사회에서 유성기업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고용노동부, 검찰과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국가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어용노조 설립과 같은 행위를 철저하게 감독하고 압수수색 등 적극적으로 수사해 헌법상에 규정된 노동3권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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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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