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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백신이 들춰낸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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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백신이 들춰낸 불평등

[창비 주간 논평] 백신이 코로나19 이후의 미래가 되려면…

"콜센터는 지금 초상집인데 '잔칫집 식혜'가 웬 말이냐."

인류학자 김관욱은 지난여름 콜센터 노동자 조직화 워크숍에서 음료로 '잔칫집 식혜'를 받아든 한 상담사의 반응을 이렇게 전한다.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를 겪으면서 가족 간 감염에 따른 사망자까지 나왔지만 시민들의 비대면 생활 지원을 위해 격무와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상황, 무엇보다 집단감염 이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은 노동환경에 대한 무기력함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문상 간 장례식장 테이블에서 캔에 든 식혜를 본 기억이 있으니 초상집에 잔칫집 식혜 그 자체로는 어색한 조합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이 누군가의 초상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때마다 종종 식혜 생각이 난 것은 사실이다.

일단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 염려스러운 장면이 많았다. 'K-방역'의 성과를 국제적으로 홍보하는 영상을 보면서는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저렇게 설레발을 쳐도 될지 싶었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지만 실제로 장관이며 대통령이 "긴 터널의 끝"을 입에 올리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확진자가 증가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돌아가신 사망자들이나 지금도 투병 중인 확진자들, 여전히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부 완치자들이 존재함은 물론이고,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생계가 곤란해진 많은 시민에게 코로나19는 초상집 상황에 가까울 것이다.

새해 들어서도 종교시설과 요양병원, 구치소,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집단감염이 이어졌고 최근에는 서울시 노숙인 응급쉼터 등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한국사회의 민낯'이 쉼 없이 드러나는 중이다. 그런데도 머잖아 코로나19 사태에 큰 전환점이 오리라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해외에서 시작된 백신 접종이 곧 한국에서도 개시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논의의 지형은 혼란 그 자체다. 야당은 자영업자들의 곡소리가 이어지는데 백신 도입이 지연되는 것을 정부 방역의 총체적 실패로 규정하려는 무리수를 두는가 하면, 정부는 백신 도입의 지연이 마치 안전성 문제를 고려한 의도적 판단인 것처럼 대응함으로써 백신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에 일조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시민들의 관심이 주로 백신의 안전성에 쏠리는 것을 탓하기도 어렵다. 백신의 안전성 문제는 물론 신중하게 다뤄야 하지만, 지금의 코로나19 백신은 개발 과정부터 임상시험까지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예외적이고 긴급하게 이루어진 것이라 한두 달 안에 전문가들의 판단이 크게 달라지기는 어렵다. 더욱이 코로나19 백신만이 아니라 그 어떤 의료적 처치도 결국은 기대할 수 있는 이득과 예측되는 위험을 저울질해서 그 판단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안전한 시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방식으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은 독감 및 여타의 백신과 비교해 안전성 면에서 큰 차이가 없으며 부작용도 크지 않을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팬데믹으로 치르고 있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감안할 때,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소극적인 사람이라 해도 그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 안전성 문제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안전하다 하더라도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 위험을 키우지는 않는지, 작은 확률의 위험이 어떻게 실제 사고로 이어지는지 사회적 숙고로 대응해야 할 과제다. 절대적인 안전 보장을 추구하는 막연한 불안의 목소리로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사실 코로나19의 원인이 기후위기나 생태계 파괴라는 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백신 접종은 팬데믹 사태에 대한 임시조치의 일환이며 대응의 한 국면일 뿐 결코 궁극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경제력 있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백신을 독점하는 '백신 민족주의'에서 드러나듯 현재 상황 역시 국가 간의 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하는 정도를 넘어 향후 격차를 더 크게 벌리는 쪽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 나라 안에서도 '백신 인종주의'의 양상이 보이는데, 이미 접종이 시작된 미국 뉴욕시의 경우 전체 거주민의 32퍼센트인 백인이 접종자의 48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거주 비율로는 각각 29퍼센트, 24퍼센트인 라티노와 흑인은 접종자의 15퍼센트와 11퍼센트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러한 격차는 노골적인 차별의 결과라기보다 정보력의 차이나 역사적으로 축적된 국가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것일 텐데, 그 때문에 해결은 더욱 요원하다.

해외 사례를 보건대 한국에서 백신으로 인해 기존의 사회적 격차를 확인하거나 심지어 확대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2월 말부터 요양병원‧노인의료복지시설 입소자, 고위험 의료기관 종사자부터 접종을 시작해 2분기에는 65세 이상 노인과 의료기관‧재가노인복지시설 종사자로 확대하고, 이후 만성 질환자와 일반 성인 순서로 접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보편타당해 보이는 이 계획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할 지점이 많다. 가령 의료기관 종사자라고 할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모두 포함하는지, 아니면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지급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과 같이 비정규직은 배제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숙인 재난지원금 지급 문제에서 불거진 바와 같이 주소지가 확인되지 않는 취약계층은 어떻게 할지도 따져 물어야 한다.

한편 장애인시설 거주자들을 우선 접종한다고 할 때도 감염 확률이 높은 곳에 우선순위가 배정되었다고 쉽게 반길 일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사회복지법인 신아원 내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후 해당 시설이 코호트 격리되었다. 방치에 가까운 코호트 격리 조치로 인해 거주인 114명, 종사자 69명 중 총 76명이 집단감염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장애인 인권운동 진영이 서울시에 긴급 탈시설화와 자립생활 지원을 촉구하자 서울시는 거주인 전원을 분산 조치했으나, 사흘 만에 시설로 재입소시키면서 큰 물의를 빚었다. 이에 비춰볼 때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수용시설을 그대로 두고 관리하기 위해서 백신을 접종하는 것인지, 현재 취약한 환경에 놓인 이들을 배려해 우선 접종하되 그것이 동등한 시민권을 위한 적극적 조치의 발단이 될 것인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린 일이다.

백신이 얼마나 안정성이 있는가,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만드는 데 백신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정해진 답은 없다. 부작용 문제만 해도 백신을 맞고 얼마나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지, 사전에 얼마나 자세하고 사려 깊은 설명을 들을 수 있는지, 현재 어떠한 건강 상태와 주거 환경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서 그 양상은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강제로든 자발적으로든 여러 가지 백신을 맞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초유의 경험이듯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대규모의 접종이 이뤄지는, 그것도 여러 백신을 섞어서 맞게 되는 경험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개인적인 불안에만 잠겨 있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이기도 하며, 그대로 두면 코로나19가 잦아든다고 해도 사회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 모두가 염원하는 대로 코로나19 백신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취약한 사람들이 누구이며 왜 취약한지를 살피고 연대를 실현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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