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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따라 문명이 변한다

[함께 사는 길] 영화 <날씨의 아이>

도쿄 변두리에 사는 15살 소녀 히나는 오랫동안 병실에 누워 있는 엄마를 위해 기도한다. 낡은 건물 옥상에 세워진 신사 앞 도리이(鳥居)를 통과하며 그녀는 비가 그쳐서 엄마와 마지막으로 맑은 날 걷고 싶다는 소원을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부터였다. 히나가 하늘에 기도하면 신기하게도 비가 멈추고 맑은 햇살이 내리쬈다.

인터넷에선 그런 그녀를 두고 '100% 맑음 소녀'라고 했다. 일부 사람들은 용신이 빙의돼 비를 내리게 하는 여인이 있고, 곡식의 신이 빙의돼 맑은 햇살을 내리게 하는 여인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히나와 같은 사람을 '날씨의 무녀'라고 했다. 그러나 히나는 그때까지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했다. "자연을 좌우하는 행위에는 반드시 큰 대가가 따른다"라는 한 점술가의 말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말이다.

2019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는 2016년 <너의 이름은>으로 평단의 호평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성공해 국제적으로 명성을 쌓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다. <너의 이름은>은 우리나라에서 37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판타지 소재의 <날씨의 아이>는 비록 국내 관객 73만 명으로 전작에 비해 크게 흥행하진 못했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감성적인 작풍과 섬세한 언어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날씨의 아이> 애니메이션 내용은 이렇다. 16살 소년 호다카는 갑갑한 섬과 권위적인 부모에게서 가출해 도쿄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려 하지만, 제도화된 거대 도시에서 아는 사람은커녕 신분증조차 없는 소년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없었다. 그런 그에게 처음 따뜻한 손길을 내민 게 날씨의 무녀인 히나였고, 호다카도 술집으로 끌려가기 직전의 히나를 우연히 길거리에서 주운 권총을 써서 구해낸다. 두 사람은 '100% 맑음 소녀' 능력을 이용해 날씨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히나가 만든 맑은 날씨에 사람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한다.

그러나 운명의 화살이 그들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호다카는 능력을 쓰면 쓸수록 히나의 몸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사이 경찰은 가출 소년이 권총을 사용한 문제로 호다카를 찾고 있었고, 히나와 어린 동생은 성인 보호자가 없어서 보육원으로 보내질 상황이다. 일부 사람들은 '날씨의 무녀'가 제물이 돼야 날씨가 정상적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호다카는 히나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려 한다. 폭풍우 치는 날 호다카는 히나와 그녀의 어린 동생과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지만, 수상해 보이는 행색에 경찰의 검문을 받게 된다. 다행히 히나의 능력으로 겨우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다음 날 아침 히나는 호다카가 끼워준 반지만 남겨두고 사라져 버렸다. 호다카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히나가 처음 능력을 얻은 도리이로 가려 하지만, 경찰이 그를 바짝 쫓으며 추격전이 시작된다. 과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호다카는 존재가 사라진 히나를 구해낼 수 있을까?

▲ 영화 <날씨의 아이> 포스터.

남 일 같지 않은 애니메이션 속 극한 날씨

<날씨의 아이>에서 그려진 하늘에선 도쿄 일대에 시간당 150mm의 물 폭탄 수준의 폭우가 쏟아졌다. 두 달 넘도록 계속된 극히 이례적인 사태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다. 8월이지만 온도가 10℃까지 떨어지면서 눈까지 내렸다. 애니메이션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런 날씨라면 미처 준비하지 못한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 계층에선 저체온증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을 거다.

2020년 우리는 지난 6월 24일부터 8월 16일까지 54일 동안 역대 최장기간 장마를 경험했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2020년 6~8월 북반구 온도가 역사상 가장 더웠다고 했지만, 우리나라는 장기간 내린 비 때문에 여름 같지 않은 여름을 지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한 상황에서 이어진 장마로 인명 피해는 물론 1조 원에 이르는 경제적 피해까지 전망됐다. <날씨의 아이>에서 그려진 극한 강우 상황이 그저 허구라고 넘기기엔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런저런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대부분 사람이 하루에 한 번은 날씨에 대해 생각할 테고, 날씨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날씨란 지구 규모의 순환 현상이며, 인간에게 있어서는 정말 개인적인 것"이라며 "그날의 날씨 때문에 기분이나 행동까지 변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영화의 테마로 하면 재밌을 거로 생각했다"라고 작품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사실 날씨는 감독의 말처럼 개인적이면서 그 영향력으로 볼 땐 사회적이다. 기상학자 반기성은 <날씨 토픽>(명진출판사 펴냄)에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온도가 오르면서 희망적, 충동적 감정이 생긴다고 했다. '봄철에 바람난다'라는 말 역시 온도 변화 등에 따른 성호르몬 분비가 촉진된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 날씨에 따라 선거판이 요동을 치는데, 미국의 경우 비가 올 때 투표율은 맑은 날에 비해 15% 떨어진다고 한다. 반대로 가을부터는 인체에 도달하는 빛의 양이 줄어들면서 뇌 화학성분의 균형이 깨져 '계절성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좋지 않은 날씨가 이어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지구 역사로 봤을 때 16~18세기는 소빙하기였다. 독일 역사학자 볼프강 베링어는 <기후의 문화사>(안병옥·이은선 옮김, 공감in 펴냄)에서 '마녀사냥은 소빙하기가 낳은 범죄'라고 적었다. 역사학자 김덕진은 <세상을 바꾼 기후>(다른 펴냄)에서 '마녀사냥으로 17세기까지 대략 20만~50만 명이 희생됐다.'라고 지적했다. 마녀사냥 대상자는 주로 사회적 약자였고 3분의 2가 여성이었다. 또 김덕진은 사회적으로 '민중의 불만을 마녀라는 희생양을 통해 해소하려 했다.'라고 지적했다. 풍랑을 피할 목적으로 남경 상인에게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심청이와 '날씨의 무녀'로서 '제물'이 돼야 했던 히나 역시 여성이며 사회적 약자였다.

베링어는 "우울증은 소빙하기의 대표적 질병이었다"라고도 지적했다. 실제 김덕진의 분석에 따르면, 1558년부터 1603년까지 재위한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시기 우울증이 심각해 '엘리자베스 병'이라 불렸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는 자신이 우울증이 심해 광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날씨의 아이>에서 히나가 "신기해, 날씨 하나에 사람들의 감정이 이렇게나 움직이다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날씨에 영향을 받는 게 사람이다.

▲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1~2℃ 변화에 문명은 흥망성쇠

날씨는 인류가 구성한 사회 제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날씨의 아이>에서 너무나 순수한 히나와 호다카는 '맑음 소녀' 능력을 한 번에 3400엔, 우리 돈 3만4000원에 보여 준다. 이들이 날씨와 관련된 경제적 파급력을 조금만 더 알았다면 의뢰자에 따라서는 끝자리에 '0'이 몇 개는 더 붙었을지도 모른다. 온케이웨더 취재팀이 발간한 <날씨 충격>에 따르면, 세계 경제의 80%는 기상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우리나라 경우 날씨에 민감한 산업 비중이 GDP의 52%라고 한다. 우리나라 업계에선 날씨 정보의 경제적 활용 가치를 연간 3.5~6.5조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상학자 조석준은 <기후변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푸른지구 펴냄)에서 실제 날씨 마케팅 관련 상황을 정리했다. 예를 들어 맑은 날 맥주 소비량 100이라고 하면 흐린 날과 비가 오는 날은 92, 79로 떨어지는데, 맑고 더운 날 기온인 1℃ 올라가면 소비량은 4%씩 증가한다.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이 잘 팔리지만, 30℃가 넘으면 오히려 판매량이 감소한다. 코로나19 이전 주문 도시락은 기온이 16~20℃ 일 때가 가장 잘 팔린다. 날씨에 따라 사람의 소비 심리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날씨는 곡물류와 어획량 등 식량과 원자재 생산에도 영향을 준다. 미국에서 여름 평균기온이 1℃ 올라가면 옥수수 수확량은 11%, 2℃ 올라가면 24.2%가 감소하게 된다고 한다. 1982년 페루 해안지역 해수면 온도가 평균 이상으로 상승하는 엘니뇨 현상이 발생하자 당시 정어리 어획량은 평년 대비 4% 수준인 50만 톤으로 격감했다. 미국에선 페루산 정어리를 비료의 원료로 사용하는데, 원료를 구할 수 없어 콩으로 대체했고, 이 때문에 콩 품귀현상이 일어나면서 세계적인 식량 파동으로 이어졌다.

한랭 건조기후가 지속됐을 때도 식량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되고, 이는 곧 사회적 격동으로 이어진다. 프랑스에선 소빙하기였던 18세기 혹한과 가뭄으로 20년 동안 3번의 식량 위기가 있었다. 1788년에도 번진 가뭄과 흉작으로 빵값이 금값이 됐고 혹한에 연료비마저 폭등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프랑스 혁명을 기후 변화 상황에서 민중의 분노가 쌓였던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1846년 아일랜드 '감자 잎마름병'으로 흉작으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미국으로 대규모로 이주했다. 전문가들은 2011년 중동 지역에서 번진 재스민 혁명도 러시아 가뭄에 따른 밀 생산량 차질에 의한 수출 감소, 즉 식량 부족을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부 기상학자와 역사학자는 날씨가 역사의 판도를 바꿨다고도 말한다. 김덕진은 1812년 나폴레옹의 67만 대군을 패퇴시킨 러시아 혹한을 사례로 언급한다. 10%만 살아 돌아온 전쟁에서 나폴레옹은 "우리를 패배시킨 것은 겨울이다. 우리는 기후의 희생양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 기후를 '나폴레옹 빙기'라고 부른다. 또 이때부터 '동장군'이란 표현이 사용됐다. 1941년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도 최근 200년 중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전문가들은 인류 문명은 온난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1만 년 전 간빙기 이후 지구는 비교적 안정적 기후를 형성했고, 그 기반 위에서 문명을 꽃피웠다. 그 과정에서 날씨는 지역 간 균등하지 않았고, 시기별로 평균기온 1~2℃의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역사상 크고 작은 문명이 흥망성쇠한 이유라고 보고 있다.

▲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날씨의 아이> 애니메이션에선 나오지 않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원작 소설에선 계속되는 강우에 도쿄도 3분의 1이, 원래 해발 0미터 이하였던 동부 저지대가 2년에 걸쳐 바다에 잠기는 것으로 그려진다.

가까운 미래 북극해와 그린란드의 얼음이 녹아버리고 바다가 열팽창으로 부피가 증가하면 해발 0미터 아래 해안지대는 침수될 가능성이 크다. 마크 라이너스의 <6도의 멸종>(이한종 옮김, 세종서적 펴냄)에 따르면, 12만 5천 년 전 간빙기 때 지구 평균기온은 지금보다 1℃ 높았지만, 해수면은 5~6m 높았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인류가 만들어낸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과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어느 지역은 홍수가, 어는 곳은 가뭄이, 때로는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2050 거주불능 지구>(김재경 옮김, 추수밭(청림출판) 펴냄)에서 현재 상태에서 지구 평균기온 4℃ 이상 증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 보고 있다. 그에 따라 거주 불가능한 지구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날씨의 아이> 애니메이션에서 "자연을 좌우하는 행위에는 반드시 큰 대가가 따른다"라는 말은 결국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우리 자신들에게 던진 말이다.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놀리기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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