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세금수업>(사이드웨이 펴냄)을 출간한 장제우 씨는 본인의 저서에서 국민들의 기존 상식을 뒤엎는 충격적인 주장을 한 바 있다. "IMF 경제위기 때문에 무너지는 가정이 많았다는 건 거짓말이다." 다소 도발적인 챕터 제목에 궁금해서 읽어보니, 요지는 이러하다.
경제가 파국을 맞이했을 때의 자살률 변동을 보면, 스웨덴의 경우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90년대에 0.8%의 저성장에 머물렀다. 그렇지만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스웨덴의 자살률은 '18.4 → 16.9 → 17 → 15.4 → 15.6%'로 오히려 감소했다. 경제 사정이 나빠졌을 때, 한국에서는 기록적으로 자살이 증가했지만, 이는 스웨덴에서는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중요한 차이는, 스웨덴은 혹독한 경제위기 때 오히려 공공보육을 강화하고 노인의 삶의 질을 개선했다는 것이다. 적자를 감수한 확장재정과 세금과 복지라는 강력한 제도적 사회연대를 통해, 국민 전반의 삶을 보호하고 재도약의 잠재력을 축적했다. 그 결과, 자살률이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시민들에게 증세를 '넛지'하려면…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특히 새겨야 할 교훈이다. K-방역으로 세계적으로 마이너스성장을 걱정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나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OECD 1위 자살국이라는 오명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고령화 저성장 시대의 파괴적 변화를 흡수할 사회안전망은 K-뉴딜 고려 대상에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하고, 복지비용에 대한 현실적 고민은 반드시 증세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도 스웨덴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의 경제 자문이자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가 쓴 <넛지>(nudge, 팔꿈치로 옆구리를 슬쩍 찌르다. 즉,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라는 책이 있다. 그는 인간을 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경제적 주체로 보는 기존 경제학의 전제에서 벗어나, 사회규범이나 문화적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심리적 측면을 적극 활용하는 접근법을 소개했다. 그런데 그 중 증세와 관련된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답은 놀랍게도 그룹 4에 적용한 방법이다. 절대 다수의 시민들이 이미 세금을 잘 납부하고 있다는 단순한 정보가 아직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던 다른 시민들의 사회적 동조성을 강하게 자극한 것이다. 넛지에서 말하는 사회적 동조성은 결국, 교육을 통해 세금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시민들이 많아지게 함과 동시에, 탈세 없이 제대로 납세되고 있는지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시민들에게 알려야 함을 의미한다.
아쉬움이 남는 주식양도차익과세 '대주주' 논란
또한, OECD도 세금에 대한 이해도(tax literacy)를 높여야 납세순응도를 높일 수 있다며, 정책설계자들이 이를 반영해 조세제도를 만들 것을 강조하고, 납세자에 대한 세금교육을 권고하고 있다. (Building Tax Culture, Compliance and Citizenship 2015, OECD)
그런 점에서, 이미 예정되었던 주식양도차익과세 개정법 중 3억 원이상 양도소득에 대한 과세를 철회한 지난 정부의 결정은 너무도 아쉽다. 물론, 코로나 위기에서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을 대비해야 하는 측면도 일리가 있으나, 홍남기 부총리에 대해 힐난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적대로 '대주주'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심리적 조세 저항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던 기획재정부도 책임이 있다.
안 그래도 증세라는 아젠다는 늘상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인데, 본질을 흐리는 단어논쟁을 어떻게든 피했어야 하며, 2023년 금융투자소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전면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세법 개정안의 로드맵대로 가되 좀 더 점진적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기본 원칙을 강화하기 위한 행보임에도 시민들에게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좀 더 설득력 있게 '넛지'하지 못해 아쉬웠다.
세금시민학교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
얼마 전 끝난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의 '시민세금학교'는 그러한 세금 이해도를 높이는 노력의 일환이다. 세금의 'ㅅ'자도 모르던 나도 두 달에 걸친 강의와 탈루 유형까지 조사발표하는 워크샵을 마치고 나니, 이제는 세금에 대한 기사나 책을 볼 때 관점을 갖게 되었고, 국민이 행복한 복지국가를 위해 증세가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강의를 들으며 가장 놀라웠던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몇 년 전 토론회에서만 해도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소득파악에 대한 회의가 있었는데 이제는 신용카드 사용으로 납세율이 엄청나게 개선되었다.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1년 국세 수입의 순서는 '부가가치세 > 법인세> 소득세' 순이었다. 2015년에는 '소득세 > 부가가치세 > 법인세', 2019년에는 '소득세 > 법인세> 부가가치세' 순이다. 이 지표가 말하는 의미는 개인소득과 법인소득 파악이 투명해졌다는 의미이다. 특히 소득세는, 신용카드 세액공제라는 유인을 통해 대다수의 국민들의 카드사용과 현금영수증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현재는 세원의 거의 대부분이 잡혔다고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자영업자들의 소득 또한, 세금계산서와 신용카드의 매출을 매칭하는 식으로 부가가치세 신고 누락분에 가산세를 매김으로써 과표의 양성화를 이뤄냈다고 한다. 한국은행의 가계영업잉여와 국세청 사업소득 신고금액을 비교해 산출하는 소득파악율 대체지표만 봐도, 2009년 당시 소득파악율은 50% 수준이었으나 2017년 90%를 초과했다.
둘째, 최근 세법개정으로 법인세 과표 최고구간의 실효세율 역전 현상이 사라졌다.
수업을 듣기 전엔, 대기업들이 폭리를 취하는데 비해 세금은 적게 내고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수업을 들으며, 일단 OECD 평균 대비 우리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낮은 편이 아니며, 오히려 증세 여지가 있는 세목은 법인세보다는 소득세와 보유세 쪽임을 새로이 배웠다. 법인세에서 남는 문제는, 실효세율을 낮추는 각종 공제감면 혜택들이 세액이 높아질수록 집중되는 모순 때문에, 마지막 최고세율을 내는 대기업들이 바로 전 세액 구간의 기업들보다 더 실효세율이 낮아진다는 점, 이른바 실효세율 역전 구간이라고 불리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시민세금학교 여름 수업이 끝난 후 가을에 진행된 조별 워크숍 시간에 희소식이 보고되었다. 이번에 조기 공개된 국세통계연보에 법인세 부문에 긍정적인 자료가 올라온 것이다. 법인세의 핵심 문제인 실효세율 역전 현상이 없어졌다(국내 세액 기준으로도). 즉, 과세표준 5000억 원 초과 구간의 실효세율이 1년 사이에 18.5%에서 22.6%로 4.1%p나 오르면서, 역전 현상이 사라진 것이다.
이번에 포함된 실적이 2018년 실적이니까 법인세 최고세율의 3%p 인상이 최초로 집계된 결과이다. 세제 개편 효과가 예상보다 큰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듣기로는 우리나라의 세제가 뛰어나 해외로 수출까지 한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행정 기술(Government Technology)이 성장했는데, 정부나 국세청이 왜 적극 홍보를 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는 국민들이 기존에 조세당국에 대해 갖고 있던 불신을 종식시켜 납세순응도를 높일 뿐 아니라, 증세를 위한 연대감 형성에 꼭 필요한 일이다.
시민들이여, '세금 연대'에 나서자
주식양도차익과세 개정법 논란에서 기획재정부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뿐만 아니라 사실 이재명 지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재명 지사가 지적한 대로 '대주주' 워딩이나 기획재정부 접근법의 미숙함에 대해서는 마땅한 지적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대선주자로서는, 좀 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코로나 위기 극복 뿐만 아니라 고령화사회로 닥칠 복지 부담을 생각한다면, 거기서 그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편증세를 위한 포석으로서 주식양도소득이라는 불로소득에 대한 증세는 얼마나 점진적이든 간에 큰 로드맵 내에서 일단 앞으로 전진하는데 협조해야 하지 않았을까? 코로나로 인해 타이밍이 적절치 않았다고 해도, 이재명 지사 특유의 설득력 있는 논변으로 부분적 진실 이상의 더 큰 그림을 위해 국민들의 협조를 요청하는 모습을 바랬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사회가 점점 더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가고,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으며, 경제불평등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이 세금이 곧 가장 현실적인 연대의 방법임을 알고 증세에 협조할 수 있도록 정치인들은 이제 본인들의 정책 프랜차이즈화를 위한 분열 프레임을 내려놓아야 한다.
또한, 시민은 정책소비자의 입장에서 정부에게 세제의 UI(User Interface, 사용자 환경)와 UX(User Experience, 사용자경험) 향상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기업이 FGI(Focused Group Interview, 집단심층면접)를 통해 수요자의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이듯, 시민들의 납세 과정에 편의를 높이고 세제에 대한 이해도와 접근성을 높이는 쪽으로 세제를 개혁해야 한다. 또한, 개선된 조세제도 홍보를 통해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서 허심탄회한 세금의 연대로 유도해야 한다.
이번 시민세금학교를 마치면서 수강생들은 스스로 작성한 <세금정의 백서>를 통해 시민들에게 적극 제안한다. 코로나 위기에서 K-방역뿐 아니라 K-복지를 함께 일궈나갈 수 있도록, 함께 세금의 연대에 나서자고. 장제우 저자의 말처럼, 세금은 "비정한 사회를 넘어서는 위대하고도 평범한 도구"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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