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감사원은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작년 10월 국회는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 과정의 타당성 및 이사회의 배임행위에 대한 감사를 요구한 바 있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 찬핵인사들은 한수원이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를 하는 데 있어 의도적으로 저평가하거나 이를 낮추기 위한 조작과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논란만 부추긴 월성1호기 감사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통해, 그동안 가장 논란이 되었던 이용률(연간 발전가능량에 대비한 발전량 비율)을 일부러 낮게 설정했다는 점에 대해 불합리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제성 평가 용역보고서에 월성1호기 이용률이 40%, 60%, 80%로 제시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중립적 이용률로 제시된 60%는 적정한 추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사원은 경제성 평가 시 적용한 한수원 전망단가의 경우 실제 판매단가보다 낮게 추정됨에도 이를 그대로 적용해 경제성이 낮게 산정된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가동중단 시 감소되는 인건비와 수선비 등도 과다하게 반영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 결과 월성1호기 계속 가동의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고 보았다. 감사원은 감사를 대비해 산업부 직원들이 월성1호기 관련 자료를 삭제하거나 지시해 감사를 방해했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이번 감사는 한마디로 월성1호기 폐쇄를 부당하다 할 내용이 없다고 요약된다. 감사원이 문제 삼은 경제성 평가 일부 내용 역시 감사원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 정확하게 입증된 문제도 아니다. 더구나 안전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손익평가를 넘어서지 못한 평가에 대한 평가만 했다는 점에서도 한계가 크다. 감사원 스스로도 이번 감사가 안전성, 지역수용성 등의 문제는 감사 범위에서 제외함으로써 월성1호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안전성 고려하면 폐쇄 이유 충분
애초에 한계가 많은 감사를 왜 이렇게 사회적 논란을 부추기며 진행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전의 경제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안전성 자체를 고려하지 않은 것부터가 문제다. 설계 수명(30년)이 만료되어 수명연장까지 한 월성1호기는 최신 안전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등 안전성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압력관을 교체했지만, 노후화된 설비들은 가동 시 잦은 고장과 안전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월성1호기는 안전성을 제대로 평가했다면 수명연장 자체가 불가능한 원전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성 미확보 논란 속에 2015년 2월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허가했지만, 2년 후 서울행정법원은 수명연장 허가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수명연장까지 하면서 최신 안전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과 같은 모델인 월성 2,3,4호기에도 적용한 안전설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재판부는 주요한 문제 중 하나로 보았다.
영구처분장도 없이 포화상태에 달한 핵폐기물 문제 역시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에 반영하지 못한 문제도 있다. 월성1호기를 포함해 월성원전은 국내에서 유일한 중수로형 모델로 사용후핵연료가 다른 원전에 비해 4.5배나 많이 발생한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월성원전에는 49만3000여 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쌓여 있다. 현재 부지 내 보관시설의 포화도는 92.3%로 2년 이내에 추가적인 보관시설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가동을 정지시켜야 할 상황이다. 최근 정부는 엉터리 공론화로 월성원전 안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7기를 증설하는 계획을 확정하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하지만 경주와 울산 등 지역 주민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공사중단을 요구하는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처분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지만, 비용도 제대로 산정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한수원은 사용후핵연료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고 하지만 장부상의 비용이라는 점은 물론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 사업의 불확실성이 큰 점을 고려하면 비용증가는 불가피하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과 최종처분시설 건설과 운영 등의 비용으로 약 64조 원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장을 마련해 운영 중인 나라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볼 때 현실 가능하지 않은 계산서로 보인다.
월성핵발전소는 삼중수소 등 방사성물질도 훨씬 더 많이 액체와 기체로 방출한다. 때문에 월성핵발전소 앞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몸속에서 항시적으로 삼중수소가 검출되고, 갑상선암 등 피해를 호소하며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는 2014년부터 6년이 넘게 이주를 요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지만 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고 있지 않다. 그나마 월성1호기가 작년 12월 영구정지되면서 주민들의 삼중수소 검출량이 조금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민들은 방사능과 사고 위험에 항시 노출된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감사원은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에서 원전 안전과 핵폐기물, 주민피해 등과 관련한 비용 문제는 전혀 들여다보지 않았다. 제대로 된 경제성 평가라고 할 수 없는 한수원의 용역보고서를 감사원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검토만 한 셈이다. 원전은 안전하고, 사고는 절대로 발생하지 않으며, 핵폐기물은 모르겠다는 생각과 태도로 원전의 경제성을 평가할 수 없다.
기후위기 취약한 원전 안전부터 확인해야
월성1호기 폐쇄 과정에서 불거진 경제성 평가 논란 속에 정작 중요한 안전 문제는 관심 영역 밖이다. 지난 9월 태풍에 일제히 멈춰선 고리와 월성 원전 문제만 봐도 그렇다. 총 8기가 가동이 정지되고, 소외전원상실 등의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지만 원인 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실한 대책만 제시된 채 재가동이 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번 사건이 태풍으로 인해 바닷가에 위치한 원전에 소금기가 있는 바람이 불어와 전력계통설비들에 쌓이면서 섬락과 지락을 일으켜 전원공급이 끊기고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었다고 설명했다. 태풍에 날아온 소금바람에도 전원상실을 막지 못한 대비책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번 태풍으로 인한 원전 사고는 기후위기 시대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자연재해에 원전이 얼마나 취약한 발전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더구나 한 부지에 6~8개 호기씩 밀집해서 원전을 운영하는 우리 현실이 동시다발로 피해를 더 키울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번에는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어 원자로의 냉각 기능이 유지됐다고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점차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로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재난과 기상이변의 빈번한 발생은 원전 안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대처도 문제다.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이번 태풍 상륙 전에 대비태세 점검회의를 주최하고 비상근무체계까지 가동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예측하지도 막지도 못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안전을 강화하겠다며 40개 항목의 후속대책을 마련해 1조 원을 투입해 조치를 취했다고 자랑해왔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조치들은 염분에 의한 사고조차 막지 못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원안위원장에게 예산집행 내역과 보고서를 요구했지만, 한수원의 영역이라 갖고 있지 않다는 무책임한 답변이 이어졌다.
이번 원전 집단 정지사고는 안전성 측면에서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원전을 여전히 주요한 전력공급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 전력공급체계에서 한꺼번에 대규모 전력공급원이 상실될 경우 지역 정전은 물론 대규모 블랙아웃까지 발생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정부는 원전의 다수호기가 불시에 정지할 경우에 대비해 전력공급망의 안정성에 어떤 대비책을 갖고 있는지 어떤 설명도 내놓고 있지 않다.
핵발전을 정치 볼모 삼는 현실이 위기
탈원전 정책이 정치 쟁점화 되면서 정작 중요한 안전 문제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번 월성1호기 감사에서도 드러났듯이 감사원조차 국회의 정치 대결에 휘둘려 안전 문제를 도외시했다. 미래를 읽지 못하는 보수정당들이 제기하고 있는 탈원전 반대 정치공세를 피하려다 안전마저 외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진작 폐쇄되었어야 할 월성1호기 논란 속에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는 결정을 내리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더 이상 소모적인 논란을 벌이기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부터 막을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힘을 모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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