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과 미혼모의 관계는 마치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약 20만 명에 달하는 해외입양인을 내보낸 단연 세계 1위의 입양수출국이다. 이렇게 해외로 나간 입양인 중 절대다수는 미혼모의 자녀였고 미혼모가 자녀를 키울 수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는 해외입양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해외입양 중단은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만드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우리 사회의 미혼모를 바라보는 시각은 최근 10여 년 사이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처녀가 아이를 가져도 할 말이 있다더니'라는 식으로 미혼모를 아예 발언권조차 없는 투명인간으로 대해 왔던 인식에서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겠다면 지원해 줘야 한다'라는 생각이 다수를 이루기까지 단기간에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런 변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중요한 고비마다 입양이 연관되어 있다.
미혼모 당사자들의 활동
미혼모에 대한 인식 변화를 만들어낸 가장 큰 동인은 무엇보다도 미혼모 당사자들의 용기와 권리에 대한 자각이다. 언론에서, 공론의 장에서, SNS에서 미혼모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미혼모들은 2010년을 전후하여 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 '미혼모협회 아임맘'이라는 미혼모 당사자단체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자신이 미혼모임을 공개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사람들은 미혼모를 막연한 존재가 아닌 구체적인 모습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우리 이웃, 직장 동료와 같은 평범한 여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은 동시에 입양을 거부하는 과정이었다. 이들이 활동을 시작한 2010년 무렵에는 거의 예외 없이 미혼모들에게 입양이 권유되고 있었다. 양육과 입양의 갈림길에서 미혼모들은 입양을 택하지 않고 아이를 양육하는 길을 택하기 시작했고 이 길을 택한 초창기 미혼모들은 선구자라고 불릴만하다. 이중에서도 한국미혼모가족협회를 창립하고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고(故) 목경화 대표가 계신다. 작년에 안타깝게도 한창나이인 47세로 유명을 달리하였지만 많은 미혼모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싱글맘의 날'과 '한부모가족의 날'
미혼모 당사자들이 활동을 시작하자 해외입양인들도 한국의 미혼모 지원에 나섰다. 절대다수가 미혼모의 자녀였던 해외입양인들은 한국이 더 이상 미혼모의 자녀를 해외로 입양 보내지 않기를 바랐다. 해외입양인들은 미혼모들에게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키워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며 미혼모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해외입양인들의 미혼모 지원이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싱글맘의 날'이다.
싱글맘의 날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입양의 날'인 5월 11일을 '입양보다는 원가족이 아동을 양육할 수 있는 권리'가 더 우선한다는 뜻을 담아 재명명한 날이다. 해외입양인들이 먼저 싱글맘의 날을 제안했고, 이에 미혼모단체들이 호응하면서 2011년 5월 11일을 전후하여 제1회 싱글맘의 날 기념 국제 콘퍼런스와 캠페인을 열었고, 이후 해마다 싱글맘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민간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일자 정부도 입양보다는 원가족이 아동을 양육할 권리가 더 우선한다는 메시지에 공감하였고, 이러한 의미를 담아 드디어 2018년에 입양의 날인 5월 11일보다 하루 앞선 5월 10일을 '한부모가족의 날'로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는 입양과 양육의 당사자들인 미혼모와 입양인의 주장을 공적인 차원에서 수용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에 싱글맘의 날을 주최해왔던 입양인들과 미혼모들은 2019년에 싱글맘의 날을 제 9회로 마무리하고, 입양의 날인 5월 11일을 '입양진실의 날'로 다시 명명하면서 입양에 대한 공론화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보아스 박사와 미혼모 정책연구의 본격화
미혼모 정책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정 또한 입양에 대한 반성적 시각에서 비롯한다. 우리나라 여자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던 미국의 안과 의사인 리처드 보아스 박사는 한국의 미혼모 쉼터를 방문했다가 자녀를 입양 보낸 슬픔을 겪고 있는 미혼모들을 만나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한국의 미혼모가 자녀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2007년에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를 설립하여 우리나라의 정부와 연구기관, 언론에 미혼모지원의 필요성을 호소하였다.
보아스 박사는 다양한 미혼모 지원활동을 하였지만 가장 큰 역할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등에 과감한 연구지원을 하여 미혼모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이다. 보아스 박사는 2012년까지 활동하다가 이제는 한국이 스스로 자국의 미혼모를 책임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한국의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입양 관련 법률에서도 진전이 있었다. 2012년에 입양특례법이 입양허가제, 입양숙려기간의 도입 등을 골자로 하여 국가의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 입양제도도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2011년에 한부모가족지원법에 입양기관은 미혼모의 임신·출산기를 지원하는 시설의 운영을 금지하는 규정이 신설되어(제 20조 4항) 이전까지 입양기관을 통하여 이루어졌던 미혼모의 자녀에 대한 해외입양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입양기관들은 이에 반발하여 헌법소원까지 냈으나, 헌법재판소는 2011헌마363판결에서 입양기관을 운영하는 자는 자녀 양육보다는 입양을 미혼모에게 권유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 이러한 금지는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겪으며 우리나라의 해외입양인 수는 현저하게 감소하게 된다.
미혼모에 대한 지원은 특히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확대되고 있다. 만 30세 미만 미혼모에 대한 부양의무자의 폐지, 긴급복지지원의 대상자 확대, 한부모가족에게 지급되는 양육비 증액, 임대주택의 순위 제공의 지원의 확대와 차별적인 법제의 개선 등도 추진되고 있다. 아직 임신 초기 고민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시스템 및 미혼모 자립을 위한 치밀한 설계에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여건은 갖추어졌다.
해외입양 중단을 선언하자
해외입양 중단은 다른 나라에 아동 양육의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우리나라가 아동 양육을 온전하게 책임지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해외입양인이 인천공항에서 '이렇게 잘사는 나라였다'는 사실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아동의 양육을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최근 10여 년간은 세계 1위 입양수출국의 역사가 남겼던 흔적을 지워가는 기간이었다. 미혼모들이 자녀를 양육하기 시작했으며, 해외입양인들이 이를 지원하였고, 미혼모지원제도가 갖추어져 가고 있으며, 입양보다는 원가족이 아동을 키울 수 있는 권리가 우선한다는 주장이 한부모가족의 날 제정으로 확인되는 등 사회적 여건도 무르익어 가고 있다.
해외입양 중단은 모든 여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뒤에 하는 선언이 아니다. 국가의 방향성에 대한 정책적 결단이며 방향이 명확하게 제시된다면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변화의 흐름은 그 속도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아동 양육을 온전하게 책임지기 위하여 해외입양 중단의 결단을 숙고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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