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코로나가 뒤흔든 세상, 정치가 응답할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코로나가 뒤흔든 세상, 정치가 응답할까?

[최창렬 칼럼] 21대 국회는 '포스트 코로나' 준비됐나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초에나 있을 법한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다. 여러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21대 총선의 역대급 승리의 컨벤션 효과와 보수진영의 행태를 들 수 있다.

보수진영은 영남지역 싹쓸이를 제외하곤 '폭망'에 가까운 패배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 패배 후 그간의 정치 행태에 대한 사과는 찾아볼 수 없고, 보수의 지향에 대한 의미 있는 토론조차 찾기 어렵다. 정치세력으로서의 존재가치보다는 각자의 정치적 입지에 집착하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은 이의 반사효과의 측면이 있다.

둘째, 코로나19라는 국가재난 방역에서 얻은 국내외적인 긍정적 평가에 힘입은 바 크다. 이는 세대와 지역에 관계없이 고른 지지율 분포에서도 알 수 있다. 효율적인 방역 체계가 정부에 대한 신뢰로 연결됨으로써 다른 부정적 요인이 잠복되고 집권세력에 안정적 지지를 보내는 것이, 코로나 이후의 경제 위기 등 새로운 패러다임 대비에 긴요하다는 판단 등일 것이다.

거대정당으로서 압도적 의석을 확보한 집권여당이 영어 표기 그대로 'ruling party'가 된 형국이다. 제1야당은 내부를 추스르기에도 버겁고, 과거지향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수진영이 비상대책위나 전당대회를 통해 어떤 형태의 혁신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정당체제에서의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한 지형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구도로 볼 때 견제와 비판을 바탕으로 한 여야의 적절한 균형이 유지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정치는 역동성을 특징으로 하고 어떠한 돌발 대형 변수가 불거질지 모를 일이다. 21대 국회 개원도 역대 국회처럼 자리다툼으로 지연되고 공수처장 임명과 검찰개혁 등의 이슈가 여야의 대치로 이어질지, 진전된 정치행태가 발현될지 알 수 없다. 여당은 압도적 의석을 앞세워 정국을 주도하려 할 것이고 미래통합당은 수적 열세를 또 다시 강경투쟁으로 만회하려 할 수도 있다. 통합당내 사정이 여야관계를 경색으로 몰고 갈 수 있고, 대선을 의식한 두 정치세력이 총선 이후에도 진부한 정치행태를 보일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우선 통합당은 지난 총선이 주는 메시지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바탕으로 강성보수의 구각을 깨고, 시대와 유권자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여야관계는 다시 20대 국회의 구태를 반복할 것이다.

21대 국회 초반에 예상될 수 있는 정치적 소용돌이는 개헌을 떠올릴 수 있다. 권력구조 변경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공감대가 필요한 문제로서 대선까지 연결되는 민감한 문제다. 대통령 임기 후반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변수를 고려할 때 개헌과 같은 헌정주의 정치의 거대담론을 여야가 혼란 없이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한국정치가 21대 국회라서 크게 나아지리라 본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1987체제의 발전적 해체를 통한 새로운 혁신이 정치제도의 변경에 그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정치제도의 변경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넘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자유주의의 열정을 가진 정치인들이 존재할 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기업의 구조, 수익모델의 변경, 4차 혁명, 한국판 뉴딜 등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가 추동할 숱한 과제들은 보수와 진보의 편협한 이념 공간에서 논의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영역이다.

어떠한 변화를 모색하든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담론들은 또 다른 양극화와 격차를 강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촛불 민심이 지향하고 요구했던 것은 경제적 불평등과 일상적 모순 구조를 혁파하는 새로운 사회였다. 4차 혁명은 분명 새로운 사회 건설이며 비단 한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세상을 지배하듯이 또 하나의 메가트랜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4의 혁명과 코로나 이후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차별과 배제의 공고화로 이어지고, 정치적 리더십마저 기업국가적 요소에 포획된다면 이는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제도적 디자인으로 정부조직 개편과 사회구조 개혁이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소외되고 낙오되는 계층을 사회안전망 속에 편입시키느냐의 문제는 더욱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정치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상상력과 결합됨으로서 시너지를 내야한다. 21대 국회에 주어진 역대급의 임무가 아닐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집단의 새로운 발상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21대 국회가 대선이라는 아날로그 정치에 포위되고 정치세력간의 권력투쟁으로 점철된다면 21대 총선에서의 집권세력의 압도적 승리와 보수진영의 대패는 정당사의 수많은 장면 중 하나로만 기록되는데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