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샤넬이 디오르에게 분노했던 까닭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샤넬이 디오르에게 분노했던 까닭은?

우석훈과 20대 논객들의 만남…"20대 삶에 대한 객관화가 먼저"

'88만 원 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한지 2년이 지났다. 이전 세대와 달리 대학교 졸업 이후에도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실업상태에 노출되어 있는 '88만 원 세대'는 20대를 상징하는 음울한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20대가 처해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드러냈을 뿐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윤형 <뉴라이트 사용후기> 저자의 지적처럼 "이렇게 힘드니 열심히 살아보자"식의 처세술로 오독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용어를 처음 제시했던 우석훈 박사(경제학)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레디앙 펴냄)라는 후속작을 선보였다. 우 박사는 책 제목 뒤에 "시작되었다" 말이 생략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혁명의 모습이 무엇인지, 어디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지만 그 내용을 결정짓는 주체는 (우 박사가 아닌) 20대 당사자라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우 박사와 100여 명의 20대들은 23일 연세대에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출간 기념 토론회를 열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우 박사는 "20대가 벌이는 긍정적인 모습도, 잘못에도 우석훈의 눈치를 보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가 '혁명'을 말하는 이유는 20대가 구시대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 올 시대를 선도하는 첫 세대가 되기 원해서다. 이제 공은 20대 자신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토론회에 앞선 저자의 강연을 요약 소개한다.

아무리 많은 '~쯤'을 모아도 미완성이 완성으로 바뀔 수는 없다

▲ 우석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저자 ⓒ프레시안

오늘은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쯤'과 '진(陳)', 그리고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쯤'은 미완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 연세대의 공학관 지하에 있는 커피숍에서 겪었던 일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거기 커피 값이 캠퍼스 안의 다른 가게보다 약간 비쌉니다. 그래서 여길 찾는 사람들은 보통 좀 멋있게 보이려고 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 커플이 앉아 있었는데 남자가 자기에게 소개팅을 주선하겠다는 사람이 많은 이유를 여자친구에게 설명하고 있더군요. 자기가 학교는 '연대쯤' 되고, 공부도 '나쯤' 하고, 키도 '나쯤' 되고 - 사실 키는 저만 하더군요 - 패션도 '이쯤' 되면 소개팅이 많이 들어온다는 겁니다. 지금 넌 '뭐쯤' 되는 애를 만나고 있다는 얘기죠,

제가 볼 땐 솔직히 별볼일없는 친구였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지갑을 슬쩍 봤는데 80만 원 정도 하더군요. 그 지갑이 바로 '~쯤'을 노리는 마케팅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패션 경영학이나 럭셔리 마케팅과 같은 분야에서 이런 남자를 엔트리(entry)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80만 원짜리 지갑을 사는 엔트리를 5년 후에 1억 원 어치를 사게 만드는 게 이들의 목표입니다. 결혼 예물로요.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를 보면 출연하는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특A'급은 아닙니다. 이런 배우들이 '~쯤'의 범주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이 명품 등으로 치장을 하면 특A에 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럭셔리 마케팅입니다. 상위 1% 계층은 이런 마케팅에 끌리지 않습니다. 애초에 소비 여력이 없는 하위 계층 역시 마찬가지죠.

고려대에서 강연을 해도 '고대쯤', 성균관대를 가도 '성대쯤'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20대들에겐 이런 마케팅이 통합니다. 하지만 그 '~쯤'을 다 모아도, 명품을 모아도 완성품이 되진 않습니다. 슬픈 이야기죠.

"지금의 20대는 고독한 저격수"

다음은 진, 즉 포메이션(formation)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곧 우리 혼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대는 어려서부터 혼자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거야 거야 잘할 거야, 혼자서도 잘할 거야'인 거죠.

다른 세대는 모두 진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50대들은 출신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고한 진이 있었습니다. 80년대 학생운동 당시의 '교문 돌파' 역시 대표적인 진의 사례입니다. 각각의 대학에서 교문을 뚫고 나가면 청와대로 진격할 수 있다고 믿었죠. 실제로는 걸어서 2시간도 더 넘게 걸리는 거리였는데 당시엔 그걸 잘 몰랐습니다.

지금의 20대를 진의 형식으로 풀어보면 홀로 몸을 숨긴 저격수(sniper)에 가깝습니다. 군대에서 저격수는 한 명을 맞추는데 이틀을 잠복합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면 잘 알 수 있죠. 그렇게 기회비용이 크기에 저격수는 일반 사병보다는 장교를 노립니다. 지금의 대학생 역시 숨어서 큰 타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걸 두 개로 나누면 하나는 삼성 입사, 하나는 고시 정도가 되겠죠.

실제로는 현대전에서 저격수는 옵서버를 대동하고 뒤에서 부대 작전을 총괄하는 리더가 따로 있는 등 하나의 팀 체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20대는 그냥 고립된 저격수 꼴이죠. 간혹 이들에게는 옵서버 대용으로 '엄마'라는 존재가 있긴 합니다. 책을 준비하면서 관찰해보니 고시라는 것도 돈이 많이 들더군요. 학원 수업료 등을 엄마가 잘 충당해 줄수록 좋은 저격수가 되는 거죠.

다시 진의 얘기로 돌아가서 진을 이루기 위해서는 리더와 수신호를 보내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현재 대학생은 둘 다 없습니다. 20대에게 누구를 영웅으로 여기냐고 물어봐도 신통치 않아요. 그들에게 강의석과 장기하를 예로 들어봤는데 둘 다 아니라더군요. 강의석은 20대를 좋아하지만 20대는 그를 확실히 싫어하고, 20대는 장기하를 좋아하지만 장기하가 20대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김연아는 국가를 대표하는 영웅이지 20대의 대변인은 아니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극찬했던 류현진 역시 여학생들 중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요.

하지만 지금 20대에서도 진이 나올 수 있습니다. 물론 예전의 수직적인 구조의 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신세대의 진은 상명하복의 작동원리를 갖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죠. 그 세대는 평생 그렇게 살아서 다른 방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표적이죠. 학생운동 시절의 진 역시 상명하복까지는 아니지만 수직적인 시스템입니다. 민주집중제라고 해서 모두가 모여 결정하고 결정되면 모두가 승복하는 형태였는데 사실 모두가 모여 결정하는 경우도 몇 없었어요.

20대는 조직이 없지만 관계가 수평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수직적인 걸 싫어해요. '야, 다 모여'라고 하면 '네가 뭔데'라고 대꾸합니다. 강의를 하고 있으면 '쟤 뭐라는 거냐'라고 하는 게 들립니다. 예절·에티켓을 떠나 같이 나이 먹어가는 처지란 거죠. 1학년 여학생과 29살 먹은 복학생이 '오빠·선배' 호칭을 안 쓰고 친구합니다.

어려운 말로 자기발생적·자기구성적 복잡계로 불리는 이런 수평적인 형태에서 어떻게 진을 만들 수 있을까요? 조정과정은 있지만 서로 지시하는 건 없는 이런 상태에서 진이 출현할 수 있는 방법을 20대가 풀면 한국 사회 자체가 다음 사회단계로 진행되면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대가 새로이 출현할 한국 사회의 선도적인 세대가 되는 것이죠.

▲ 20대가 전 세대의 수직적인 형태를 벗어나 수평적인 형태의 진을 출현시킬 수 있다면 한국 사회의 다음 단계에서 선도적인 세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오스트럼과 가브리엘 샤넬

마지막은 오스트럼 이야기입니다. 오스트럼의 이론을 간단히 설명하면 공유재에 관한 것입니다. 사회과학계에서 오랫동안 제기된 문제였죠. 사람의 성향을 이타주의와 이기주의로 나누면 게임이론상으로 이기주의가 득세하게 됩니다. 선한 사람은 계속 손해를 보기 때문에 결국 악한 자들만이 남아 재화를 낭비하는 '공유지의 비극'이 대표적인 예죠. 이걸 법이나 규율로 막자는 것이 홉스의 발상입니다.

오스트럼은 홉스 없이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게임이론에서 기본적으로 이타주의를 지향하지만 상대방의 이기주의에 대해 한 번에 한해 보복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 결과적으로 공유재를 지킬 수 있는 해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단점은 이게 작은 집단에서는 증명이 됐지만 국가 단위에서 가능한지는 아직 풀어내지 못한 것입니다.

작은 집단을 한국식으로 말하면 '마을'의 개념이겠죠. 40~50대에게 마을은 푸근한 단어이지만 생태적·문화적 정서가 다른 20대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개념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환대해줄 공간이 없어요. 인터넷 공간만 봐도 환대보다는 '악플'이 많고 진보적인 사이버 공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50대들은 골프장 회원 모임 게시판만 가도 끈적끈적하고 따듯한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우파들의 강점이죠. 가난하고 고립된 이들은 만들기 힘듭니다.

'~쯤'에 사로잡힌 20대가 환대받을 수 있는 '진'을 만드는 것,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혁명은 사회학적으로 가장 많은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20대가 취할 수 있는 혁명의 길은 힘 있는 영웅이 아닌 문화생산자로서의 영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가 가장 편하게 느낄 수 있는 방식이죠.

가브리엘 샤넬을 예로 들어보죠. 20세기 역사는 샤넬을 제외하고는 설명이 안 된다는데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재산권이 생긴 게 20세기 초반인데요, 당시에 많은 여성들이 남자친구나 남동생 등의 후원으로 화가나 연극배우, 가수 등이 되어 재산권을 형성해 갔습니다. 에디트 삐아프가 대표적이죠.

샤넬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가게를 얻어 직접 옷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최초로 코르셋이 없는 속옷을 만든 이는 따로 있지만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것을 상품으로 팔릴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게 만든 이가 샤넬입니다. 모자나 옷에 달린 레이스를 제거한 상품을 선보인 것도, 핸드백에 끈을 달아 여성들이 손의 자유를 얻게 한 이도 샤넬이었죠.

샤넬이 일생 동안 가장 분노했던 대상은 크리스티앙 디오르였습니다. 디오르는 H라인, A라인 등의 컨셉트를 선보인 디자이너인데 샤넬이 여성에게 필요한 옷을 만들었다면 디오르는 남성의 눈으로 괜찮아 보이는 여성의 옷을 만들었죠. 샤넬에겐 디오르는 반동으로 비춰졌던 것입니다. 20대들은 샤넬을 소비하지 말고 샤넬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성해방을 이끌어냈던 문화생산자의 모습 말입니다. 굳이 여성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 역시 그들만의 문화생산자 역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대, 거창한 운동보다는 삶에 대한 객관화가 먼저"

▲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 노정태 전 <포린 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 '고대녀' 김지윤 씨, 한윤형 <뉴리아트 사용후기> 저자, 우석훈 박사 ⓒ프레시안

강연이 끝난 후 토론 패널과 우석훈 박사의 대담이 이어졌다. 지난해 촛불 집회 당시 <MBC> '100분 토론'에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과 설전을 벌였던 '고대녀' 김지윤 씨(25)는 "<88만 원 세대>가 나오고 난 이후에도 20대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우 박사는 '조용한' 혁명이라고 썼지만 20대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부모세대와 함께 '짱돌'을 들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왁자지껄한 혁명"이라고 제안했다.

노정태 전 <포린 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27)은 우 박사가 제시한 '혁명'의 방법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20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이후 논의의 방향이 '20대가 문제를 겪고 있다'가 아니라 '20대는 뭔가 문제가 있다'로 흐르고 있다"며 "지역 공동체는 뉴타운 개발 등으로 와해되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떠오른 비주류 엘리트들은 현재 어떻게 할 바를 모른 채 20대에게 '깃발을 들고 뭔가 해보라'고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 씨는 "진중권 교수가 중앙대에서 해임되자 '깃발'을 들었던 중앙대 학생들이 징계를 받을 때 과연 누가 그들을 지키려 나섰는가"라며 "20대 당사자 운동은 필요하지만 지역·정당운동이라는 전제조건을 만드는 것은 전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윤형 <뉴라이트 사용후기> 저자(27)는 "20대들은 <88만 원 세대>의 초반부만 읽고 '이렇게 힘들게 산다는 걸 알았으니 됐어'라며 책을 덮어버린 채 자신이 20대를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가능한 대안을 들이대도 '우린 안돼요'라고만 하는 시행착오는 20대 스스로가 풀어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 씨는 "20대들이 해야 할 일은 거창한 운동보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객관화된 서사"라며 "한국 젊은이들의 삶이 잘 드러나 있는 웹툰이 많이 소비되고 있지만 분석과 비평은 곁들여지지 않는데 이런 부분부터 20대들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우 박사는 "사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계획 밖의 책으로 사실 20대 이야기를 내가 더 쓰는 것 보다는 책의 마지막에 실려 있는 대학생들의 글처럼 20대 당사자가 나머지를 채웠으면 했다"며 "정당운동 등의 방법이 지금 당장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지방선거와 대선을 거치는 과정에서 좋든 싫든 공간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우 박사는 또 청중 한 명이 20대의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세대 착취론에만 메여 있는 것 같다는 지적에 "실제로 한국의 지배계급에 20대는 한 명도 들어가지 않는 현실에서 세대 착취의 범위 안에서 환경과 성 평등, 수도권 문제 등을 풀어나가려고 한 것"이라며 "학생운동과 지역운동 등 다원화된 형태의 그림으로 기득권을 연타할 수 있는 작은 물결들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