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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 원 세대'는 죽지 않았다…'쿨'하게 혁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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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 원 세대'는 죽지 않았다…'쿨'하게 혁명하라!

[화제의 책] 우석훈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정규직 교수로 일찍 자리 잡은 후 엄숙주의 모드를 벗어나지 못하며 살고 있고, 담배도 안 피고 술도 별로 안 마시며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글만 써대는 선·후천적 명랑결핍증 환자인 나에게, 골초이자 술꾼인 비정규직 교수로 지식 게릴라 활동을 벌이며 "명랑 공산주의"를 전파하는 우석훈 박사의 글은 언제나 새롭고 재미있고 도발적이고 전복적이다. 그가 자신만의 예리한 시각, 풍부한 지식 및 발랄한 문체로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영역의 문제를 분석하고 또한 대안을 제시할 때마다 나는 항상 박수를 보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 알다시피 우 박사는 <88만 원 세대>의 공저자로, 20대의 고통과 감수성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는 68년생이지만, '386세대'임을 뻐기기 보다는 20년 아래인 88년생들과 호흡하려고 노력한다. 20대에게는 무게 잡고 훈시하는 선배 보다는 넥타이 풀고 같이 놀아주고 들어주는 우 박사 같은 선배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대는 정치적 민주화의 산물인 '1987년 헌법'이 제정된 전후 출생하였기에 아래로부터의 집단적 투쟁으로 세상을 바꾼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386 세대'들은 종종 군부독재에 맞서 싸운 자신들의 경험을 호기 있는 목소리로 들려주려 하겠지만, 20대에게 이런 이야기는 흘러간 옛 노래일 뿐이다. 사실 '386 세대'들도 자신들의 부모나 선배들이 한국전쟁이나 보리 고개 이야기를 할 때 귀담아 듣지 않았다.

20대의 집단경험은 1997년 IMF 경제위기일 것이다. 10살 전후 집안의 가장이 다니는 회사가 망하거나 가장이 실직 또는 명예퇴직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목격하고 경험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공포와 불안 속에 그들은 살인적 입시 경쟁을 치러야 했다. 사교육, 선행 학습, 조밀화(稠密化)된 내신 관리 등은 그들을 정신적·육체적으로 옥죄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20대 청년들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각자도생과 각개약진으로 자신만의 '스펙'을 쌓는 수밖에 없다는 철학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근래 이러한 20대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많이 제기되었다. 정치적 집단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386 세대'와 '10대 촛불소녀'에 종종 비교되면서. 심지어 20대를 포기하자는 제안 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20대를 "마조히스트"로 만든 것은 바로 "사디스트 사회"이다. 그리고 정치적 민주화 이후 사회·경제적 민주화 대신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했던 '개혁 정치 세력'과 이 노선을 은연중에 수용했던 '386 세대'는 20대를 비난할 온전한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20대의 고통을 줄이고 그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도를 제시하지 않고 자신들의 20대 시절만 떠올리며 현재의 20대를 비난만 한다면 20대들이 긍정적 응답을 할 리가 없다.

▲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우석훈 지음, 레디앙 펴냄). ⓒ프레시안
우 박사는 20대의 심리와 행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지만, 이는 그들의 목소리에 대한 경청과 그들의 처지에 대한 공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번 책에서 우 박사는 자신이 '88만 원 세대'라고 정의(定義)를 내린 20대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지적하면서도, 그들 가슴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외로움"에 공감하고, 그들이 가진 "'간지'를 목숨처럼 여기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명랑함"과 "불의는 참아도 추한 것은 참을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을 높이 평가하고, 또한 그들 가슴 속에서 "변화를 갈망하는 에너지"를 발견한다. 책 말미에 수록된 대학생들이 쓴 20대 관찰기를 읽으면 아직 20대가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 박사는 20대가 돈도 없고 집도 없고 결혼도 못하는 "3무 세대"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즉, 더 이상 쫄지 말고 당사자운동, 시민운동, 지역운동, 정치운동 그리고 '간지'나는 패션을 통하여 '혁명'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20대 문제의 해결을 전업적(專業的)으로 풀어나갈 사회운동가가 되거나 이들을 체계적으로 후원하고, 과감하게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지역에 기반을 두는 정치인의 길을 개척하고, 편의점 알바를 하면 시급을 받는데 급급하지 말고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국민의 마음을 훔쳐" 버릴 수 있는 멋진 옷을 만들어 패션쇼를 벌이자는 것이다. 성적 관리, 토플공부와 '알바'에만 빠져 청춘을 보내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이나 인턴 자리뿐이라면 차라리 새로운 모색을 하는 것이 오히려 이득일 것이다. 20대가 계속 "신자유주의라는 기이한 자기 폐쇄적 회로에 갇힌 몸과 마음과 영혼"을 가지고 "보신"과 "대세"를 모토로 "방살이"에 빠져 살아간다면, 그들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에도 미래는 없다.

자의반 타의반 신자유주의를 '육화'하며 살고 있는 20대 청년, 그리고 이 선배들보다 더 열악한 "77만 원 세대"가 될 것 같은 10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발칙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를, "나 혼자 살 거야."가 아니라 "친구, 안녕?"이라고 먼저 말하며 하고 수평적 연대를 이루어 "세상살이"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리하여 그들이 더 이상 "사회적 난쟁이"의 길이 아니라, 일본에서 비정규 문제해결과 빈곤타파에 앞장서 변화를 만들고 있는 아마미야 카린이나 유사아 마코토 등과 같은 청년 영웅의 길을 걷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20대가 마르크스, 레닌의 언사만을 암송하거나 반독재투쟁의 경험에만 사로잡힌 선배들을 비웃으며, 우 박사가 최고의 혁명가로 꼽은 패션 다자이너 코코 샤넬처럼 완전히 새로운 장을 멋지게 열어 제치길 소망한다. 이러한 '혁명'의 길은 구리지 않고 '쿨'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20대에게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우 박사의 책을 자신의 분야에 자리를 잡고 이름을 알린 '엄친아' 선배의 잘난 체함으로 간주하며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 박사는 나보다 훨씬 20대 친화적이지만, 그와 20대 사이에도 분명 세대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대가 우 박사의 열정적 "수다"를 외면하고 그가 내미는 따뜻한 손길을 뿌리치는 것은 치명적 업보가 될 것이다.

(이 글에서 쌍따옴표를 친 표현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의 문구를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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