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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힘센 점순네 닭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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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힘센 점순네 닭은 어디로 갔을까?

[작은것이 아름답다] "획일화된 종에선 획일화된 음식문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닭을 그려보세요."

아이들에게 말하면 아마 대부분 달걀 포장지에서 봤던 닭을 그릴 것이다. '1인 1닭'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듯 치킨 많이도 먹는다. 튀겨먹고 볶아 먹고 고아 먹고 구워 먹고, 닭발도 모래주머니도 먹는다. 하지만 먹는 닭이 어떤 종인지, 어떤 생김새를 가졌는지, '치킨' 아닌 닭은 잘 알지 못한다.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힘센 점순네 닭은 어디로 갔을까?

▲ 양계농가들이 한정된 종을 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계열화' 문제와 맞닿아 있다. 효율성만 따져 95%가 수입품종만 키운 탓에 재래닭이 설 자리가 없다. ⓒ현인농원

재래닭을 복원하다

목 놓아 우는 닭, 사방에서 들려오는 진돗개 짖는 소리, 작은 나무 사이 얼기설기 걸린 호랑거미 거미줄, 20가지 색 재래닭을 복원하는 것이 목표라는 경기도 파주 현인농원에 도착했다. 재래닭은 '토종닭'이란 단어가 가진 '재래종'과 '토착종' 두 의미 가운데, 재래종을 분리해 말할 때 쓴다. 재래종은 소설 <동백꽃> 속 닭처럼 예로부터 사육해온 닭을 뜻하지만, 토착종은 외국 품종이 7세대 넘게 적응한 품종을 말한다. 흔히 보는 토종닭은 토착종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농원 대표인 홍승갑(77세) 님은 1980년대부터 재래닭 매력에 빠져 닭을 기르기 시작했다. '닭'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대여섯 살 때 우리 마당 닭이 꼬리가 너무 길어 치렁치렁 매달리니까 깃털은 다 닳고 촉만 남은 모습을 봤어요. 그걸 보고 '왜 저 닭은 철사를 매달고 다니나?' 하고 생각했죠."

재래닭 특징 가운데 하나가 '꼬리가 길다'인 것을 알게 된 건 한참 뒤 일이다. 1960년대 우연히 재래닭을 길렀지만, 워낙 야생성이 강해 행인들을 공격하는 통에 화가 나 잡아먹어 버렸다. 아름다웠던 재래닭에 대한 아쉬움이 늘 남았다.

1980년대 우연히 본 유인물 속 '중부닭'이 눈에 밟혔다. 수소문해 얻은 닭으로 '중부닭'을 복원해보기로 했다. 농원이 있는 파주가 한반도 중앙이니, 중부 재래닭을 재현하는 데 의미를 뒀다. 회색과 검은색 닭 사이 조금 하얀닭이 나왔을 때, 색으로 자웅을 맞춰 병아리를 낳게 했다. 그 뒤 다시 짝 맞추길 반복하면 누가 보아도 하얀 재래닭이 복원된다. 조금이라도 다른 색이 나오면 짝을 맞추다 보니, 색이 다른 여덟 가지 재래닭이 생겼다. 농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어디 닭인지 확인해주기도 했다.

"나이 든 분들 가운데 이북 사람도 있고 저 남쪽 사람도 있잖아요. 기억을 더듬어 '저 닭은 우리 고향닭이네요' 알려줬어요."

현재는 열다섯 색, 재래닭 2000수가량 기르고 있다. 이야기하는 내내 닭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소리를 따라 닭장에 도착하니 중부닭이 가장 먼저 보인다. 암탉은 옅은 갈색 몸통에 날개 끄트머리가 짙은 갈색과 검은색, 수탉은 머리부터 목까지 옅은 갈색, 밑으론 황토색이었다. 꼬리는 어두운 청록색이다. 사진기를 들이대니 푸드덕대며 셔터보다 빠르게 렌즈를 벗어난다. 들은 대로 기운이 넘쳐난다. 홍승갑 님은 재래닭은 100미터에서 150미터까지 날 수도 있다며 웃는다.

▲ 현인농원 홍승갑 님. ⓒ작은것이아름답다

닭의 생명리듬에 맞춰

재래닭은 대체로 외국 개량종보다 작다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작지 않았다. 한반도 북쪽 닭일수록 크기가 아담하고, 남쪽닭은 2킬로그램 되는 녀석도 있단다. 우리나라는 1∼2킬로그램 정도 닭을 가장 많이 먹는다. 개량종이 불과 30일 만에 팔려나가고, 재래닭이 두 달 넘게 자라야 어른 몸이 된다.

홍승갑 님은 재래닭이 알을 많이 낳거나 몸집이 빠르게 불어나지 않는 것은 '윗세대가 길렀다는 이유만으로 이어 길렀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산업화 탓에 밀려난 거예요. 선조들이 개량한 닭을 만들었다면, 이렇게 외국 닭이 와서 판을 못 치지."

계란을 공급하는 외국 산란계들은 알을 품으려는 성질인 '취소성'을 잃었다. 취소성이 있으면 생산량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외국 산란계들은 모계부화가 불가능하다. 재래닭은 모두 알을 품을 줄 안다. 알을 품지 못하게 하면 알을 낳지 않는다. 둥우리에서 골골대며 시위한다. 외국 산란계가 1년에 300개 계란을 낳는다면, 재래닭은 1년 100개~150개가량 낳는다.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번식기인 봄철에 많이 낳고, 점점 줄어들다 추운 겨울엔 단산한다. 봄철 3~5월은 알 개수가 다른 철의 곱절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예외는 있다.

"심하면 정월부터 서리 내릴 때까지 1년 내내 품기만 하려는 녀석들이 있어요. 닭에 따라 다른 거죠. 그런 닭은 언제든 알 낳는 대열에서 빠져요."

닭장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니, 다른 색 닭이 섞이지 않도록 작은 방을 이어붙인 평사가 양 옆으로 줄지어 있다. 열심히 모래목욕을 하는 녀석, 누가 들어왔는지 관심도 없는 녀석, 푸드덕대는 녀석까지 제멋대로다. 그런데 닭장 옆을 꽤 오래 걸어도 냄새가 나질 않는다.

"산에서 자연균 채취해 황토에 띄워놔요. 그게 흙 누룩이라 '토곡'이라 불러요. 그걸 비축해놓고 농가 부산물을 계절 따라 섞어 먹이죠. 고추씨 같은 것도 넣고, 맥반석, 활성탄, 키토산, 달걀 다룰 때 달걀이 잘 깨진다 싶으면 골분도 넣고, 마지막에 쌀겨로 양을 불려서 먹이는 거지. 발효된 걸 먹고 똥을 싸니 냄새가 없어요."

고생스럽지만 저녁마다 사료 발효시키는 일을 한다. 지금 발효하고 있는 사료 통에 손을 넣으니 데일 듯 뜨끈하다. 청국장처럼 구수한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닭장 벽이 넓은 철망으로 된 탓도 있다. 닭을 기르기로 결심한 뒤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이 이 닭장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닭장이라는 개념 없이 닭을 길렀어요. 적게 사육하면서 풀어놓고, 풀벌레 잡아먹고. 낱알 몇 개 뿌려주는 게 그때 방식이에요. 내가 기르는 닭이 그렇게 대대손손 길러졌잖아요.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요즘은 아예 창 없는 닭장에 컴퓨터로 온도 습도를 모두 조정하는 기술도 나왔다. 하지만 자연을 차단하는 기술엔 한계가 있다.

"우리 닭은 겨울에도, 여름에도 뻥뻥 뚫린 닭장에서 살아요. 자연을 이겨내는 힘이 강해지고, 면역력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죠. 이번에 난리 났던 게 살충제잖아요. 원래 동물마다 살아가는데 위해요소가 다 있어요. 닭은 기생충이 끼기 마련이에요. 그럼 모래목욕으로 없애죠. 닭의 생명 리듬인 거예요. 그럴 환경을 만들어주면 되는데 공장식 축산은 알 낳는 도구로 닭을 보니까 불가능해요."

맛 좇다 사라진 생명들

재래닭 키우는 농가는 얼마나 남아있을까. 1980년대엔 '한국재래닭연구회'도 있었다. 현재 재래닭 농가가 많이 줄어 휴식기에 있다. 홍승갑 님에 따르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우리나라 육계 산업 95%를 수입품종 닭이 차지한다. 사육되는 닭은 로스미국, 코브미국, 아바에이커미국, 인디언리버미국, 하바드프랑스 다섯 가지. 순서대로 33%, 22%, 22%, 17%, 6%를 차지한다.(2016년 기준) 우리나라는 2015년 미국에서 대규모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병하면서 원종계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수입에 의존하니 뾰족한 대책이 없다.

양계농가들이 한정된 종을 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계열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육계회사가 농가와 계약을 맺고 병아리와 사료를 모두 제공해 기르는 역할만 맡기는 것이다. 농가는 어떤 종을 키울지 선택할 수 없다. 육계회사는 적게 먹고 많이 자라는 '사료 효율성'을 기준으로 닭을 들여와 집중적으로 사육한다. 이러한 계열화는 2015년 기준 91.4%까지 진행됐다. 돼지나 소도 빠르게 계열화되고 있다. 닭은 빨리 자라 사료 회전, 자본 회전이 빠른 탓에 가장 먼저 계열화가 진행됐다. 농촌농업사회학자 정은정(40세) 님은 이렇게 획일화된 종에선 자연히 획일화된 음식문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소비자들이 품종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종 다양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것.

"사과만 해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 품종을 먹죠. 그저 달고 아삭거리기만 한 맛만 찾다 사라진 사과 품종이 얼마나 많은가요. 가축도 마찬가지라 저마다 특성이 있어요. 외국 개량종은 빨리, 많이 키워내다 보니 그 자체로 별맛이 없어요. 그렇다 보니 튀겨 양념을 발라 먹는 음식문화가 만들어진 거죠."

토종닭은 다 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뼈가 튼튼하다. 때문에 푹 고아 먹는 백숙에 어울린다.

▲ 현인흙계. ⓒ현인농원

종 다양성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까?

"작은 농장에서 다양한 닭을 키우려면 소비해줄 시민과 유통통로가 필요하겠죠. 이미 계열화가 완료된 상황이라 전망이 그리 좋진 않아요. 재래닭을 키우는 농가에 대한 지원도 전혀 없어요. 이에 대한 제도 마련이 필요해요."

홍승갑 님도 같은 점을 지적한다. 2008년 조류독감 유행 때에 질병 발생 반경 안에 들어온 농가 닭은 모두 살처분한다는 공고가 떨어졌다. 현인농원엔 몇십 년 걸려 복원한 재래닭들이 있었지만, 혹 반경 안에 포함되기라도 하면 그대로 살처분되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재래닭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서다.

"개인이 수십 년 종자를 지켰는데, 정부가 저렇게 안일한 생각을 하나. 과연 이런 나라에서 종자를 지킬 명분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축산과학원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선생님 닭 키운 거 없애면 안 된다고. 그 연구관이 연락하지 않았으면 수일 내에 다 정리했을 거예요. 종자는 그런 세심한 관심이 없으면 이어갈 수 없어요."

현재는 현인농원 재래닭 가운데 '현인흑계'를 국제식량농업기구 가축유전자원정보시스템에 등록했고, 슬로푸드 '맛의 방주'에도 등재했다. 재래닭인 황계, 긴꼬리닭, 황봉닭, 횡성약닭도 현인흑계와 함께 가축유전자원정보시스템에 등록됐다. 가축이기 때문에 사람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종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그나마 선택받은 종도 새끼 품는 방법을 잊고, 날아다니는 방법을 잊은 채로 남았다. 앞으로 닭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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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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