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도 농성도 퍼포먼스도 모두 죄
"케이블카 건만 말씀드리면 되는 거죠?"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탓에 받게 된 재판이 몇 건이냐 묻자, 박성률(53세) 목사는 그렇게 답했다. 그는 설악산 국립공원지키기 강원행동 집행위원장이자, 강원도 골프장 문제해결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 원주 녹색연합 대표로 있다. 설악 오색케이블카 반대 활동 때문에 받게 된 재판은 모두 세 건. 강원도 골프장 반대 활동까지 합하면 10건 정도라 한다.
재판 가운데 첫째는 '강원도청 페인트 퍼포먼스' 사건이다. 박그림 녹색연합 대표와 함께 케이블카 설치를 3대 현안으로 지정하고, 오색삭도 추진단을 꾸린 최문순 강원도지사 면담을 요구했다. 현관과 계단에 붉은 페인트를 흩뿌리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억압받고 탄압받는 자연과 민중을 상징한 것이다. 이로 인해 1심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2심 진행 중이다.
두 번째 재판은 원주지방환경청(원주청) 앞 비박농성과 고공시위 때문이었다. '설악산 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 초안' 반려를 위해 초안 심사를 맡은 원주환경청 앞에서 박그림 대표와 '비박농성'을 시작했다. 설악권 주민 대책위도 함께했다. 지난해 1월 25일 사다리를 놓고 원주청 옥상에 올라가 '환경영향평가 초안 반려'를 외쳤다. 7개윌 뒤 함께 오른 녹색연합 활동가와 설악권 주민, 박성률 목사까지 15명이 기소됐다.
두 사건에는 모두 '주거침입죄'라는 죄목이 붙었다. 강원도청 정문으로, 원주청 옥상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관공서는 본래 모두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어떻게 주거침입죄가 인정된 걸까? 녹색법률센터 신지형(39세) 변호사는, 형법상 주거침입죄는 사람의 주거 또는 '관리하는' 장소의 평온과 안전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출입이 허용된 관공서라도 공간을 관리하는 이의 뜻을 거스르면 주거 침입이라 본다는 것. 다만 '관공서의 청사는 출입의 자유가 허용되는 것이므로,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
녹색연합 박수홍(35세) 활동가는 원주청 고공시위로 법정에 서게 된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시위 뒤 7개월이나 지나 기소됐기 때문이다.
"재판 회부시점이었던 2016년 7월은 문화재 위원회에 문화재현상변경 건이 상정됐던 달이에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었죠. 한창 활동해야 하는 시기에 재판에 회부 됐다는 소식을 듣고, '시민들의 반대활동'을 고의로 탄압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박성률 목사도 재판정에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입 모은다. 박성률 목사는 2010년 강원도 골프장 문제에 항의하다 처음 재판을 받았다. 군수 앞 1인 시위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격렬한 정권타파 투쟁도,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일도 아닌지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죄를 인정받기 위한 3년 과정에서 법을 탄압도구로 이용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1인 시위는 집시법위반이 아닙니다. 그런데 죄를 어떻게든지 만들더라고요. 연행되면서 '군수님, 골프장문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딱 한마디 했어요. 그런데 그걸 판결문에 인용하면서 '직업이 목사인 점, 평소에 목소리가 크고 우렁찬 점으로 보아 군수가 충분히 연설하는 데에 업무를 방해받았다 볼 수 있다'고 해서 공무집행방해로 벌금 받았어요."
5미터 거리에서 던진 '상추' 때문에 대법원까지 간 일도 있다. 골프장 관련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공무원을 향해 박성률 목사가 상추를 던진 것이다. 그는 던진 행위로만 보면 폭력이 맞는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상추를 맞을 뻔했던 공무원은 재판정에서 '상추가 날아올 때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는 어처구니없는 증언을 했단다. 재판장은 '피해자가 죽을 만큼 위협을 느꼈다면 폭력'이라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어떤 때는 군수가 군청 200미터 이내 '접근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했다. 물론 기각됐지만, 그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며 오히려 무죄를 증명받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한다.
"저는 원주청 건 최후 변론 때에도 설악산 케이블카가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어차피 유죄 받을 거 아니까요. 우리 변호사님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법이 침묵하라 말하는 것이 권력을 유지하고 독재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침묵할 수 없는 거죠."
재판정 분위기는 사람을 압도한다. 위에선 형광등 불빛이 하얗게 비추고, 판사가 앉는 자리는 높은 곳에 있고, 방청 의자 뒤쪽에 붙은 '사진 찍지 말라'는 경고문을 보면 마음이 졸아든다. 재판 방청 온 사람도 그런 마당에,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박수홍 활동가는 '징역'이란 단어를 이름과 함께 듣는 순간 겁이 났다.
"검사가 무표정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징역 8개월을 구형했어요. 그 목소리가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들에게 시위와 집회에 나서는 우리 시민이 어떤 존재인지, 법 집행 이외 사회에 대한 어떤 감수성도 없어 보이는 검사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을까 하는 답답한 마음도 들었고요."
다행히도 이들이 재판받는 법정엔 많은 시민들이 방청으로 연대했다. 큰 재판정은 아니었지만, 늘 방청석이 꽉꽉 찰 정도였다. 또 원주청 고공시위 때 검찰이 박그림 대표를 비롯한 3인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청구된 시점부터 9시간 만에 5145명의 탄원서가 모였다. 구속영장 청구는 기각됐다.
설악산을 왜 우리가 지키나
대한민국 헌법 제 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2항에선 이 자유를 더 자세히 명시하고 있다.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현재 '집회 및 시위의 관한 법률'은 사전신고제도를 통해 집회를 사실상의 '허가제'로 관리한다. 옥외집회에 대해 사전신고를 하고, 경찰관서장의 심사를 거쳐 집회의 허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 허가를 받지 않으면 금지 통고를 받거나, 미신고 집회에 대한 해산과 처벌 규정에 따라 처벌된다. 신지형 변호사는 현행 집시법에 따르면, 신고 없는 집회의 개최가 범죄행위가 되는 꼴이라 말한다.
"단지 신고를 하지 않았단 이유로 기본권 행사가 범죄가 되는 것이죠. 이는 헌법상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를 야기합니다. 집회 자유가 온전히 구현되려면 집시법의 즉각 폐지나 전면 개편이 필요해요."
국회 앞에서 진행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기자회견을 경찰 스스로 '집회'라 판단하기도 했다. 스피커와 마이크를 설치하고 사회를 봤고,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판사는 경찰 의견을 받아들여 국회 앞 기자회견 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 기자회견이 있기 두 달 전, 노동당이 같은 규모로 구호를 외치고 펼침막을 썼던 일에 대해 경찰은 '집회라 볼 수준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개인이 지자체가 시행하는 사업에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는 좁다 못해 없다시피 하다. 양양군 군민 김동일(48세) 님은 양양군수에 면담을 요구하다 재판을 받았다.
"양양군수는 엄연한 선출직인데, 자기 업무를 보고 있으면서 케이블카에 반대의견 가진 사람들은 면담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말도 안 되죠. 우리로선 다른 방법이 없어 양양군청 안 현관에서 4∼5일 교대하면서 기다렸어요."
양양군청은 그들을 퇴거불응으로 고발했고, 저마다 다르지만 벌금 100∼200만 원이 부과됐다. 김동일 님과 함께 행동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대책위는 이 부과가 부당하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관련 재판은 현재 1심 진행 중이다.
박수홍 활동가는 '국립공원이자 천연보호 구역인 설악산을 너무 가벼이 대한 죄도 집요하게 따지고 있느냐?'고 날카롭게 묻는다. 설악산 케이블카 경제성을 부풀려 조작한 공무원 두 명은 고작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박성률 목사도 한마디 보탠다.
"국립공원은 개발하지 못하도록 환경부가 막아야지. 천연보호구역은 우리가 지킬 게 아니라 문화재청이 나서서 지켜야지. 백두대간 보호구역을 개발한다? 산림청이 나서서 막아야지."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지난 6월 15일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허가를 내줘야 한단 결정을 내린 탓에, 활동가들의 발걸음이 다시 분주해졌다. 광화문에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천막을 쳤고, 아침마다 171호 천연기념물인 설악산을 위해 171배를 한다. 청와대 앞 1인 시위, 피켓시위, 기도회, 집회도 열린다. 문화재청은 오색케이블카 검토위원회를 구성해 문화재 현상 변경에 대한 재심의를 진행한다. 설악산은 문화재 위원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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