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국회 인준 부결은 집권여당이 소수세력이란 한계를 절감케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은 통과됐으나 여당으로서는 입법과 예산 등 각종 사안마다 야당의 반대에 직면할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야당의 존재감 부각이 의회 상황을 한층 어렵게 만들 수 있다.
2004년 17대 총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이 결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득표에 성공했다. 2012년 19대 총선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기에 힘입어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152석의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곤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처음 치러진 13대 총선에서의 야당의 과반 득표 이후 여소야대는 의회의 보편적 정당분포가 되었다. 입법 권력과 행정 권력의 충돌로 국정은 교착에 빠지는 경우가 흔했다. 국회와 행정부 모두 선출된 권력으로서의 이원적 정통성에 입각하므로 국정운영에서의 갈등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
정치이론적으로 여소야대라는 분점 정부(divided government)의 긍정적 면도 있다. 제왕적 권력으로 비판받는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문제는 국회가 정략적으로 정부 여당을 고립시키는 전략으로 일관할 때다. 내각제는 연정과 협치를 통해서 여소야대가 구조적으로 극복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의회 다수파가 총리를 맡는 권력구조에서 여소야대의 존재 자체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여소야대에서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을 여당이 효율적으로 뒷받침할 수 없는 근본적 제약을 안고 있다. 여소야대가 국회 권력의 제왕적 대통령 견제라는 긍정적 기능이 있음에도 국정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교착을 가져오는 이유이다.
촛불 혁명이 가져온 정권교체라면 시민적 지지를 국회에 투영시킴으로써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넉 달이 넘었다. 집권 초기의 감성적 소통과 탈권위적 행보, 지난 정권의 반민주적 정책의 시정들은 국민의 압도적 기대와 지지로 나타났다.
그러나 인사실패,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인한 안보정책의 중심축의 혼선 등은 지지층의 이탈을 가져올 수 있는 중대한 변수들이다. 게다가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총공세로 나오고 있다. 존재감을 살리겠다는 국민의당이 우파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하여 강공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 더구나 김명수 대법원장 인준에 협조한 반대급부를 의식한다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 상황은 어느 때보다도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안보 변수와 인사 실패에 대한 비판으로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문재인 정권은 여전히 60%를 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해 20대 총선의 의석구도가 지금의 민심을 반영하고 있느냐의 이론적 논점을 제기할 수는 있어도 의석 분포는 현실이다. 과반에 훨씬 미달하는 여당이 쟁점 법안은 차치하고 일반 법안 하나 통과시킬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정당구도다.
역대 여소야대 국회는 상황논리에 의해 구도가 바뀌곤 했다. 1990년의 3당 합당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과거 정권들처럼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탈바꿈시킬 생각도, 상황도 아니라면 청와대와 여당 등 집권세력은 지금 초기에 개혁 의제들을 추진해 나가기 위하여 정국운영의 로드맵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소야대는 상수다. 야당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다. 여소야대의 상황에 기인하는 원천적 교착을 풀 수 있는 여야 협치의 정치적 관행을 제도화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북핵과 안보위기에서 정권의 철학과 지향을 지켜내야 한다. 인사 문제는 여론과 야당의 비판을 귀담아 듣고 원점에서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정치엘리트들이 전방위로 야당을 설득하는 진정성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높은 지지를 여소야대 극복을 위한 추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근본적 지향을 실현시킬 정교하고 세심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않으면 지지층의 이반과 함께 여소야대 상황이 현 정부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다시 극우보수의 준동을 불러오는 역사의 반동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반동은 늘 있어왔다. 아직도 색깔론의 낡은 프레임을 들먹거리는 세력과 박근혜의 석방을 외치는 인사들이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보다 정교한 전략과 전술을 국면마다 적절히 배합하는 노련한 리더십과 조정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은 혁명을 개혁처럼, 개혁을 혁명처럼 추진해야 하는 엄중한 시점에 와 있다. 정권이 분발해야 한다. 위기는 소리 없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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