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후로 전개된 양상은 조금 달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저소득계층과 차상위계층의 통신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을 뿐이었다. 이동통신 업체도 사용량에 따라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요금 상품을 출시했지만 실제로 통신비가 내려간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정부가 미적대는 사이 우리나라와 외국의 통신비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는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결과가 지난 7월말 나왔다. 예전에도 통신비 인하 운동을 벌였던 참여연대와 소비자 단체들은 정부가 애당초 약속했던 20% 인하라도 추진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통신비 부담은 일부 계층의 문제가 아닌 전체 국민의 부담이므로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소비자 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경제 위기로 힘겹게 가계를 지탱하면서 공약 이행을 기다리던 소비자들은 이런 운동을 환영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이미 8년 전에도 통신비 인하를 요구하는 100만 명의 서명을 받아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20% 인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소비자단체와 연계해 인하 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들은 거대 이동통신 업체가 취하는 폭리가 이젠 소비자의 몫으로 되돌아와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을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다시 불붙는 통신비 논란①] 소비자원 vs 통신업체·방통위
"이동통신은 애초 국가기간사업…요금도 공공적 성격 지녀"
▲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 ⓒ프레시안 |
안진걸 : 2001년 처음으로 시작했다. 당시 100만 서명운동에 성공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다. 그 이전까지의 소비자 운동은 점잖고 정태적인 형태가 많았다. 가끔 조사 발표하고 성명 내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나라가 급진적인 양상을 띠거나 전반적으로 행동지향적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그전에 벌였던 낙선운동, 납세자 운동처럼 자기 목소리 한 번 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애초 30% 인하를 주장하다가 연말 즈음에 15% 인하로 끝났다. 끝마무리 단계에서 우리의 힘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통신 분야는 여러 측면에서 삶에 직결되는 문제인데 각종 통신 서비스나 시장 자체의 문제까지 연결해서 운동을 진행하지 못했다. 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면도 있었다.
그 후 지금까지 녹색소비자연대, 서울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전문성을 높여가면서 그동안 잘 대응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이동통신 요금이 내려갈 때 우린 오히려 통신비 지출이 상승했다. 소비자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의 독과점 현상과 정보의 불균형으로 폭리가 생기는 것을 막는 것이다.
프레시안 : 방송통신위원회와 이동통신 업체는 우리나라 통화 요금이 높다는 소비자원의 발표에 조사 방식의 문제나 국가별 사용 환경의 차이 등의 이유를 들며 반발하고 있다.
안진걸 : 민간단체의 조사 결과에 정부가 반박하는 건 봤지만 정부기관끼리 그러는 건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조사결과의 진위에 대해 소비자들이 그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부담이 OECD 가입국 중 최고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중국인 유학생이 한국 휴대전화 요금 너무 비싸다고 하소연한 글도 봤다. 우리나라 가계지출 중 통신비 비중이 4.5% 안팎으로 나오고 있는 사실이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프레시안 : 이동통신사들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도 하고,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과소비 성향이 있다는 역공도 제기한다.
안진걸 : 그런 부분은 소비자 단체 내에서도 나오는 지적이다. 이동통신 사업이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중·대 장치산업인건 사실이다. 하지만 통신요금은 준 공공요금의 성격이 있다. KT 같은 곳이 아무리 민영화 됐다 해도 국가기간통신망 사업 자체는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요금 역시 공공성을 고려해 정해져야 한다. 1990년대 중후반에 처음 이동통신 사업을 시작해서 벌써 십여 년을 훌쩍 넘겼다. 투자비용 회수는 이미 지난 이야기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해서 시장친화적이라 자부하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이 인수위 시절 20% 인하 공약을 내걸었다. 이들도 요금이 20%까지는 인하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시장 점유율 1위인 SK텔레콤 순이익이 연간 1~2조에 달하는데 20% 인하해 1조 원 안팎으로 떨어졌다고 해서 연구개발에 차질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공약대로 해보고 결과를 보면서 조정하면 된다.
소비자들이 전화를 많이 사용하는 측면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생활에서 통신이 가지고 있는 소통 기능, 정보의 교류 기능, 취업할 때 연락수단 등이 최우선이 놓여 있는 것을 고려하면서 봐야 한다.
▲ 소비자 여론을 의식해 시장 친화적인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통신비 20% 인하 공약을 내걸었다. 이들도 그 정도 여력은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프레시안 |
"이제는 이동통신사들이 국민들에게 보답할 차례"
프레시안 : 방통위도 이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에 발맞추는 차원에서 인하 요구를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이미 최저소득계층, 차상위계층 통화 요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동통신업체도 소비자가 요금을 선택할 수 있게 한 요금제나 망내 할인 등을 시행하고 있는데 실제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보나.
안진걸 : 저소득계층을 돕는 것은 복지차원의 문제로 소비자 운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회복지는 약자부터 돕자는 취지고 소비자 운동은 보편적인 소비자들이 느끼는 문제다. (통화 요금 지원이) 복지부가 한 일이라면 만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방통위라면 이동통신사들의 막대한 수익을 고려했을 때 시장에서 기업들이 폭리를 거두고 있는지,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저소득층 지원 이야긴 궁색한 논리다.
이동통신 업체 쪽을 보면 현재 시장의 독과점 상황에서 요금 문제를 시장에만 맡길 순 없다. 우스갯소리로 통신업체 임원들도 자기 회사 요금제가 몇 종류가 되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요금제 때문에 소비자도 헛갈린다. 망내 할인, 결합상품제가 가시적인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복잡성 때문에 효과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 그런 걸 잔뜩 내놓고 '할 건 다 했다'식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폭리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에 화답해야 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자본주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요금에 대한 요구수준도 너무 점잖을 정도로 합리적이다. 기업들이 적정이윤을 얻는 걸 부정하면서까지 반감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게 20% 정도라는 거다.
프레시안 : 시장 독과점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의견도 있다. 경쟁을 활성화해 가격을 낮추는 방법은 어떤가.
안진걸 : 외국에서도 이동통신 업체가 국영으로 시작해 민영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경쟁 자체가 심화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도 통신회사가 많이 늘어나진 않을 것이다. 시장 성격상 독과점은 유지될 것이고 이걸 꼭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국민에게 적정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얻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동통신사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단말기가 빠르게 보급되고 소비자들도 과소비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로 사용한 탓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이 때문에 많은 이윤을 남겨 그 돈으로 연구·개발에 많이 투자해서 외국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성장했으니 이젠 이동통신사들도 국민이 보내준 기여에 보답하라는 거다. 서비스의 질 이외에도 소비자들의 신뢰·친숙함은 기업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동통신 요금을 낮추면 고객들이 이동통신 회사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지금은 적어도 소비자들에게 보답할 때다.
"국민이 처한 고통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면 가짜 서민 행보 될 것"
프레시안 : 정부 쪽에서 보면 이동통신사가 와이브로 사업 투자도 늘리고 IPTV 콘텐츠 사업도 더 나서길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통화료 문제보다는 신규 사업 투자에 더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안진걸 : 통신회사들이 새로운 투자 부담이나 경쟁에 대한 부담이 있을 거다. 예를 들어 화상통화 같은 3세대 통신은 새로운 황금을 창출하려는 시도인데 가입자는 많아도 서비스는 잘 안 되고 있다.
그렇게 예상을 깨는 상황이 나올 수 있지만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하는 건 소비자들도 고려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다려준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과도한 인하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 SMS 요금 인하는 적절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기술 수준이 높아지고 가입자가 늘면 기본료도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유선전화도 맨 처음엔 기본료가 22만5000원에 시작해서 지금은 5000원 수준이다. 휴대 전화는 지금도 1만 원이 넘어간다.
프레시안 : 소비자 측면에서는 요금이 내려 지금 경쟁적으로 지급하는 보조금이 줄어든다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안진걸 : 보조금, 번호이동성 제도 등이 생겨나면서 단말기의 수명이 짧아지고 바꾸는 속도가 늘어났다. 자원낭비 심화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통신사 처지에서는 출혈경쟁으로 이어지는 악영향도 있다. 소비자들은 '무슨 광고를 저렇게 많이 하나, 저걸 우리한테 통신비 인하로 쓰지'라고 생각한다.
보조금 축소하라고 말하긴 쉽지 않지만 단말기 교체주기가 짧아지는 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소유기간이 일정기간 지날수록 세금을 깎아준다. 그래서 자동차를 오래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난다. 단말기도 소비자 보답차원에서, 또 자원 측면에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신규가입자가 아니라 충성도 높은 고객에게 단말기 비용을 보조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프레시안 : 이동통신 요금 인하 운동은 민생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참여연대에서도 등록금 인하 운동, 기업형 슈퍼마켓 문제 등과 함께 민생 이슈로 다루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민생행보'에 대한 평가는?
안진걸 : 이명박 정부가 '강부자' 정권인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등록금 후불제 등은 서민들을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일부에서 비아냥거릴 수는 있어도 행위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등록금 대출제도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한나라당이 규제 강화한다고 나선 것 역시 환영할 부분이다. 소비자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말로 환영을 받으려면 국민들이 겪는 고통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들이 내는 목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등록금 후불제는 찬성하면서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 안하면 국민은 더한 빚더미에 오를 수 있다. 영세상인들이 SSM 허가제를 주장하는 목소리에도 화답해야 한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야말로 경제위기에서 가계 부담이 큰 국민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될 것이다. 강부자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역할 제대로 수행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이 될 거다. 아니면 가짜 서민 행보로 귀착될 것이다. 민생현안에 대해서 국민이 의외로 더 잘 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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