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검사' 임수빈 변호사(56, 법무법인 동인)가 검찰 개혁 방안을 정리한 책 <검찰은 문관이다>(임수빈 지음, 스리체어스 펴냄)를 냈다. 임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으로 근무하던 2008년, '<PD수첩> 보도로 인해 정운천 (당시) 농식품부 장관과 정부 협상단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의뢰된 수사의 주임검사를 맡았다. 임 변호사는 제작진 기소를 거부했다. 상명하복 문화가 지배적인 검찰에서 전담수사팀이 검찰 지휘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은 건 사건이었다. 이후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빚던 임 변호사는 2009년 1월 검찰 옷을 벗었다.
변호사로 변신한 후, 임 변호사는 특기를 살려 형사 사건 변호사로 활약하는 한편 검찰 개혁 방안을 공부했다. 노력은 지난 2월 24일 모교 서울대 법학과에 제출한 <검찰권 남용에 대한 통제방안>이라는 제목의 박사 논문으로 결실을 맺었다.
<검찰은 문관이다>는 임 변호사의 논문을 정리한 책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 개혁이 화두로 오른 마당에 나왔다. 이 책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검찰 수사 자체에 집중한다. 임 변호사에 따르면 "미시적 문제"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는 게 새로운 규제 기구를 만드는 것 못잖게 중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프레시안 : 심야조사도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당장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주요 피의자들이 새벽까지 조사받았더라는 식의 보도를 익히 봐 왔습니다. 미묘한 심리적 쾌감을 얻은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를 금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수사할 내용이 많다면, 심야조사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임수빈 :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검찰 조사가 심야까지 가는 이유는 조사할 양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검사가 같은 질문을 삼십 번, 백 번하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시간은 밤으로 흘러가죠. 밤으로 갈수록 검사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됩니다.
제가 예전 검사할 때 들은 이야기가 "밤새면 자백 받을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피곤한 상태에서 긴장이 완화되고 판단력도 흐려진 마당에 같은 질문을 계속 받으면, 피의자가 자기 확신을 잃어버립니다. 검사가 원하는 대로 이끌릴 가능성이 아주 크죠. 실제 피의자가 이런 환경에 노출되면 검사가 원하는 답변을 할 확률이 커진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검찰이 이른바 보여주기 용으로 심야조사를 이용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유명 인사를 새벽까지 수사했다'는 식으로 언론에 보도되어야 검찰 입장에서는 '권력자 수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면을 세울 수 있고, 상대방도 '당할 만큼 당했다'는 걸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죠. 언론에서 이른바 사회 지도층 수사 관련 보도를 볼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피의자가 심야 수사 후 초췌한 표정으로 귀가한다'는 식 아닙니까.
시민 참여가 검찰 수사를 개선한다
프레시안 : 수사 과정의 법제화 못잖게 중요한 검찰 개혁 방안으로 시민의 참여를 꼽으셨습니다. 현 대검 예규에 근거한 '검찰시민위원회'를 아예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법제화한 검찰시민위원회가 어떻게 조직되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까요?
임수빈 : 검찰시민위원회는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국민의 검찰 불신이 커지고,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2010년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이 도입을 결정한 조직입니다. 하지만, 현 위원회는 임의기구입니다. 가장 큰 맹점은 시민위원을 검찰이 지명한다는 겁니다. 견제 받을 대상이 견제 주체를 결정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죠. 어용기구로 전락하리라는 우려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시민위원을 무작위 추출해야 합니다. 법원에서도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할 때 배심원 무작위 추출을 합니다.
프레시안 : 검찰이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수사 절차를 모르는 시민이 검찰의 기소 여부를 심판하고, 검찰을 견제하는 게 문제라는 여론도 있을 법한데요.
임수빈 : 우리 국민 역량을 충분히 믿을 수 있어요.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해도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시민 역량을 불신할 필요가 없습니다. 검찰시민위원회 운영 방식도 바꿔야 합니다. 지금은 검사가 의뢰할 때만 위원회가 운영됩니다. 이제는 고소인이, 혹은 피의자가 기소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의뢰하면 시민위원회를 열도록 해야 합니다. 나아가 위원회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사건 점검을 직권할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시민위원회에 법률 보조인 제도도 마련해야 합니다. 검찰의 일방적 설명만 듣고 위원회가 수사 적절성 여부를 판단케 해서는 안 됩니다.
프레시안 : 시민위원회의 기소 결정 권한은 어디까지로 해야 합니까? 법적 귀속력까지 줘야 할까요?
임수빈 : 사실상의 귀속력에 그치게끔 하면 됩니다.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역할과 같습니다. 비록 법적 귀속력은 없지만, 국민참여재판에서 재판부가 배심원 의견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검찰시민위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만, 시민위원회의 의견을 검찰이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기소권을 남발하기란 어렵습니다. 법적으로 명확한 귀속력은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상의 귀속력을 가지게끔 할 수 있죠.
프레시안 : 대표적 시민 참여 모델이 검사장 직선제입니다. 미국이 주 검찰청장과 지방 검찰청장을 주민 선거로 선출하죠. 국내에서도 참여연대 등에서 비슷한 방식의 제도 도입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검사장 직선제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수빈 : 저는 검찰 직선제가 한국 현실에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 사례를 예로 들면 좋을 듯합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일본 사법 체계에 도입하려던 제도가 검사장 직전제와 대배심제입니다. 그런데, 둘 다 도입에 실패했습니다. 대배심제는 검찰심사회제가 되었고, 직선제는 검찰관 적격 심사회로 변경 도입됐습니다.
이 일이 1948년 사례이긴 합니다만, 지금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정보도 줍니다. 당시 일본이 검사장 직선제를 반대한 이유는 정치의 검찰 개입 부작용 우려입니다. 검사장 선거를 치른다면, 결국 정당이 선거에 개입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역별로 검찰의 정치색이 변한다면, 우리 사회가 이를 어떻게 소화 가능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직선 대상이 어디까지인지, 국가직 공무원인 검찰의 지방 검사장을 직선한다면 그 문제는 어떻게 조정할지 등도 혼란스럽습니다.
공수처 도입해야... 검경 수사권 조정은 신중
프레시안 : 책에서 공수처 도입 문제 등을 굳이 거론하지 않고, 미시적 문제에 집중하겠다고 언급하셨습니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 공수처 도입이 검찰 개혁과 관련한 중요 현안임은 틀림없습니다. 공수처 도입을 찬성하시나요?
임수빈 : 사실 공수처에 관한 연구는 이미 되어 있어요. 결단만 남았어요. 구태여 제가 책에서 다룰 필요가 없죠.
저는 공수처 설치에 찬성합니다. 모두가 검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이 우리 사회에서 왕따 당하고 있어요. 더는 이래서는 안 됩니다. 모든 국가 기관의 존립 근거는 국민에게서 나오는데, 국민이 검찰 조직 자체를 불신하고 있어요. 공수처가 생기면 검사에게 '당신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게 됩니다. 이것만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검사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설립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 헌재가 생길 때 대법원이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헌재가 생기니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좋은 판결이 더 많이 나왔습니다. 헌재는 본부 조직만 있으므로 각 지방 조직이 거대한 법원 위에 일방적으로 군림하지도 않습니다.
공수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거론되는 공수처 모델도 본부 조직뿐입니다. 전국 조직인 검찰 위에 군림하지 않을 겁니다. 옥상옥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공수처는 대법원에 관한 헌재와 같은 기능을 하게 될 겁니다. 검찰이 수사를 더 잘하게 될 겁니다.
프레시안 : 공수처 도입과 함께 중요하게 거론되는 검찰 개혁 방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입니다.
임수빈 :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관해서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수사권 조정 여론이 나온 근본 이유는 그간 검찰이 수사권을 남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굳이 수사권을 박탈하는 게 올바르냐에 관해서는 제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필요한 건 제가 책에서 강조한 것처럼 검찰의 수사 절차를 적법하게 규제해, 수사권 남용 가능성을 차단하는 겁니다. 그 다음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고민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경찰의 수사권한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잘못됐다는 건 아닙니다만, 검찰 수사 절차에 관한 비판은 경찰 수사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어요. 수사 과정의 인권 침해 문제는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에도 발생하니까요.
프레시안 : 특히 이 책은 검사를 중심으로 큰 주목을 받을 듯합니다. 책을 봤다며 연락한 검사가 있나요?
임수빈 : 본 사람이 꽤 있다고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진 않더군요. (웃음) 아무래도 서로 조심스럽죠.
프레시안 : 아들이 학교(서울대 법대) 후배입니다. 아들도 법조인의 길을 걸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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