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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동물, 호모 카에데스

[귀농통문] "지금 당장 살처분을 중단하라"

누가 인간을 '이성의 동물'이라고 말했던가? 인간이 지금까지 지구 생태계와 인간 세상에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면 학살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생물종과 구별 짓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 아닌가 싶다. 이성은 그러므로 학살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게 아니라면 학살의 순간에 이성이 잠시 마비되었던지. 괴롭지만 인간이 저지른 학살의 역사를 대충 훑어보자.

지구 생물종의 3분의 1 이상이 살고 있는 열대우림은 지난 50년 사이에 그 면적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의 '카네기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기후 이상 현상과 더불어 금세기 내에 열대우림은 거의 파괴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실 인간의 학살 행위가 가장 심하게 행해진 곳은 동물계가 아니라 식물계이다.

콜럼버스가 인도에 가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처음 발견한 섬이 지금의 아이티이다. 그는 울창한 원시림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섬을 보고 그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에서 온 백인들은 처음엔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원주민을 학살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백인들이 가져온 질병으로 인해 거의 전부가 몰살되고 만다. 백인들은 그곳의 산림을 베어내고 거대한 설탕 농장을 경영하면서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데려오기 시작한다. 당시 카리브해 도서 지역에 있는 약 100만 명의 흑인 노예 가운데 절반이 아이티에 있었다고 하니, 이 섬의 설탕 농장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간다.

아이티는 독립 후에도 이러한 사회경제 구조를 유지하면서 산림을 파괴한 결과 오늘날 겨우 국토의 1%만이 숲을 이루고 있다. 아이티야말로, 자연과 인간에 대한 학살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비극의 땅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백인들은 아이티의 비극을 전 세계에 수출하여 지난 500년 동안 지구생태계를 학살의 현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산림을 포함한 다양한 지표 식물들은 지구 생태계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명군이지만, 인간은 대규모 단작농(monoculture)과 약탈 농업을 통해 지구 표면의 식생을 거의 다 파괴해버렸다. 오죽하면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라는 말이 생겼을까. 산림을 파괴해 농경지로 만드는 것도 문제인데 그 농경지마저 매년 600만 헥타르(ha) 정도가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을 건설한 유럽계 백인들은 서부 개척사를 위대한 국가 건설의 역사로 알고 있지만, 그 실상은 끔찍한 인종 학살과 토착 동물의 멸종으로 점철되어 있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북미 평원에는 약 6000만 마리의 들소(버펄로)가 노닐고 있었으나, 백인들의 학살에 의해 100년도 안 되는 사이에 겨우 수백 마리로 줄어들었다. 지금은 보호 정책에 의해 약 3만 마리 정도가 유지되고 있다.

버펄로는 인간이 직접 사냥에 나서서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이 파괴한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멸종하고 말았다. 하버드대학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이 나타나기 전까지 생물의 멸종 속도는 매년 100만 종 가운데 한 종 정도였으나, 지금은 대체로 그 1000배에 가깝다고 추정한다.

사실 다른 생물종의 학살에 비해 인간의 학살은 비교조차 되지 않지만,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이 간다. 인간의 학살은 대부분 전쟁 또는 전쟁에 버금가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분쟁의 역사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서로 죽고 죽이는 일로 가득 차 있다. 근대 이전에 저질러진 가장 끔찍한 학살은 유럽의 백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하는 시기에 일어났다. 콜럼버스가 아이티에 첫발을 디딘 이후 500년 동안 신대륙에서 벌어진 학살극으로 인해 약 1억 명의 원주민이 죽었다.

학살은 직접적인 살육 외에 질병이 큰 역할을 했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이 구대륙의 병원균에 면역력이 없음을 알아채고 의도적으로 질병을 퍼트리기도 했다. 이것은 인류가 최장 기간 최대의 인간을 집단 학살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같은 기간에 아프리카에서는 비슷한 의도와 목적에 의해 3000만 명이 죽어갔다.

ⓒ프레시안

20세기에 들어와 세계 곳곳에서 근대 국민국가가 들어서면서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 투쟁과 인종 갈등이 벌어져 끔찍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이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대략 600만이 죽었다고 한다. 그밖에 터키와 발칸반도, 콩고, 르완다, 수단, 캄보디아,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베트남, 시리아, 중국, 일본 등지에서 집단학살을 당한 사람들의 숫자를 다 합하면 족히 1000만이 넘는다. 이것은 전쟁에서 죽은 전사자 통계 밖에 있는 숫자이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와 중국은 독재적 지도자가 사회 개혁을 강제하기 위해 자국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경우이고, 터키와 발칸반도, 아프리카, 일본 등지의 학살은 서로 다른 민족 또는 부족끼리 상대방을 위험한 적으로 간주하여 학살극을 벌인 것이다.

한국도 이 대열에서 빠지면 대단히 섭섭해할 나라이다. 우리는 유독 험난한 근대사를 겪어오면서 같은 민족끼리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죽고 죽이기를 반복해왔다. 지금도 여전히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언제라도 같은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멀리는 해방 후 보도연맹 사건에서 시작하여 가까이는 광주학살에 이르기까지 집단학살의 이력이 화려하다. 심지어 우리는 베트남에 가서 다른 민족을 집단 학살하는가 하면, 일본에서 현지인들에게 집단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 민족이 생명을 사랑하고 신명을 즐기는 낙천적 민족이 맞나 의문이 들 지경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문턱에서 끔찍한 학살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살처분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어서이다. 지난겨울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가금류가 3200만 마리 넘게 살처분되고 지금은 구제역으로 인해 대동물인 소의 살처분이 확대되고 있다. 물론 가축을 키운 농장주들은 결코 죽이고 싶지 않았겠지만, 대부분 정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살처분에 동의하고 마는 것은 생명보다 돈이 더 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탄핵정국이라 해도 이렇게 많은 동물들이 죽어가는데도 눈 하나 꿈쩍 않는 국민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학살의 동물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걸까? 세월호 사건을 보면 같은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은 분명 살아있는 것 같지만 인간 이외의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은 여전히 먼 이야기인가? 아니 이러다가도 사회가 둘로 나뉘어 싸울 때는 자기들끼리 무자비한 학살극을 벌이지 않는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불교에서는 이를 일컬어 깊은 '무명(無明)'에 싸여있다고 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대자연의 질서이니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즉자적인 생존을 넘어 불필요한 살생을 한다. 삐뚤어진 자의식과 욕심, 그리고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다른 생명의 멸종과 환경 파괴가 일어난다. 인간이 학살의 동물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의 소자아를 벗어나 생태계 전체와 연결되는 대자아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소자아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사회구조를 과감하게 혁파해야 한다. 예컨대 살처분을 요구하는 국제 질서에 당당히 맞서 '생명주권'을 선포하는 배포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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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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