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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꼬, 이까지 와서 농사 지을라 캐?"

[귀농통문] 나이 서른, 권고사직 받고 귀농하다

2012년 날로 깊어가는 조선업의 불경기로 권고사직을 받은 날, 미련 없이 백수의 길을 택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은 남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다 결국 자본의 노예가 되어가는 삶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돈을 벌기도 했지만, 삶은 더 팍팍해져 갔다. 그럴 때마다 진정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는 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장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막연히 내 일을 해야겠다는 것뿐!

집에는 돌보아야 할 어머니가 계시고 당장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살기 급급한 상황에서 백수 생활은 가시방석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욱 치열하게 삶의 방향을 고민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언제 행복한가? 무엇을 통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서른 살 백수가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직장생활은 다시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창업을 하자니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기발한 아이디어도 없고 돈은 더 없는 처지가 바로 내 현실이었다. 그러던 중 농사를 지어보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떠올랐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왠지 가슴에 와 닿았다.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소득이 생기고 더 나은 환경에서 좀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창귀농학교와 첫 인연은 이렇게 단순하지만, 새로운 삶에 대한 절박함에서 시작되었다.

▲ 귀농학교에서 처음 고추를 심었다. ⓒ김강진

몸뚱이 하나로 버틴 귀농 첫해

12박 13일 과정의 귀농학교는 아침 명상으로 시작해 낮에는 논과 밭에서 농사 일을 하고 저녁에는 여러 가지 이론 교육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2주간 참 많은 일을 했다. 밭에 고랑도 만들고, 비닐도 씌우고, 고추도 심어보고, 사과밭 일도 하고, 매일매일 닭 모이도 챙기고, 시골에서 절 빠질 수 없는 풀 뽑기까지. 100여 시간이 정말 훌쩍 지나 가버렸다. 2주 동안의 귀농 교육을 통해 두 가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농사는 힘들다! 농사로 돈 벌기는 더 힘들다! 그래도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은 이상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거창귀농학교 선생님은 교육 기간이 끝난 뒤에 학교에 머물러도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학교의 이런저런 행사를 도와주면서 일손이 필요한 곳에 일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귀농 첫걸음을 귀농학교에서 떼었다.

▲ 귀농학교 수료식. ⓒ김강진

집을 구할 돈도 능력도 준비되지 않았기에 농사일을 도와드리며, "이곳에 정착해서 농사지으려고 합니다. 혹시 빈집 있으면 소개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저 이 말밖에 할 게 없었다.

여러 사람 도움으로 빈집을 구했는데 사정을 얘기하니, 집세도 안 받고 흔쾌히 집을 내주었다. 이제 집은 구했으니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농사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농사일이 몸은 힘들지만 땀 흘리는 기쁨과 최소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 생각하면 마음만은 풍요로웠다. 감자밭을 시작으로 옥수수, 콩, 들깨, 배추, 무, 사과까지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으니 절박했다.

슬슬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농촌 들녘에서는 거짓말처럼 일거리가 싹 사라져버렸다. 읍내 일용직도 겨울에는 일감이 거의 없었다. 겨울에는 산불감시원 일이 괜찮다는 정보를 듣고 최연소 산불감시원이 되었다. 일거리가 없는 겨울철에는 가뭄에 단비 같다. 육체적으로 크게 힘들지 않고, 감시 활동하는 동안 생각할 시간도 많아 비교적 편하고 여유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 산불감시원은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주로 선발한다. 아무래도 농사를 짓기 힘드신 분과 연로하신 분이 대부분이다. 젊고 충분히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남의 일자리를 꿰찬 듯해서 무척 미안했다. 나로 인해 누군가는 이 일을 하지 못해 힘들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맘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귀농 첫해 겨울을 보냈다.

마을 주민으로 인정받자 살길이 열렸다

다시 봄이 오고 시골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사과밭 일을 시작했다. 아는 사람도 제법 많아지고 사과 농사를 크게 짓는 집에 고정적으로 일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사과 농사를 배웠다.

"만다꼬, 이까지 와서 농사 지을라 캐?"

어디든지 일을 가면 항상 듣는 질문이다.

"열심히 해볼라고요! 농사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질문이 어느 순간 이렇게 바뀌었다.

"진짜 농사지을 건가? 여기서 뭐 해 먹고살 건가?"

"네, 저는 여기서 농사짓고 살 겁니다!"

처음에는 '그래, 고생 한 번 해봐. 해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야'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다, 제법 버티자 '진짜 살라고 그러나?' 좀 더 지나니 '뭐 해 먹고살래?'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변하더니 얼마 안 가 이곳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내 처지를 걱정해주는 상황이 되었다.

▲ 처음으로 예초기를 돌리고 논바닥에 뻗었습니다. 흙이 참 폭신했습니다. ⓒ김강진

그러다 은인을 만났다. 사과 농사를 아주 크게 짓는 분이 배추를 심어보라고 땅을 임대해주었다. 드디어 내 농사를 처음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땅 갈고 모종 구하고 심는 인력까지 주었다. 농사는 혼자 힘으로 되는 게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다. 다행히 첫 농사치고는 배추가 잘 자랐다.

그렇게 가을 가고, 두 번째 겨울을 준비할 무렵 약간의 걱정을 하는데 배추밭 주인분이 사과밭을 구해 주었다. 농장주 어르신이 건강 문제로 임대 내놓은 무려 5000평의 밭을 얻었다. 농사를 짓겠다는 마음 하나로 이곳에 와서 마침내 사과 농사로 살길이 열렸다. 내 힘으로 한 건 별로 없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농사를 짓겠다는 마음으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었다.

귀농 5년, 사과 농사 3년 차인 지금 아직도 '농부'라는 이름은 어색하기만 하다. 아니, 좀 부끄럽기도 하다. 올해 딴 고추는 한 개도 제대로 못 말렸고, 콩은 쭉정이만 남겼고, 배추는 늦게 심어서 알이 안 찼다. 거름 만들 요량으로 모은 오줌통은 펑 터져버렸다. 집 앞은 늘 풀밭이며, '해야지'하는 일은 산더미처럼 밀려 있다. 요즘은 아직 겨울 준비를 다 하지 못해 추워질까 노심초사다. 언제쯤이나 농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지 모르겠다.

사람마다 귀농하는 이유와 목표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농부의 마음은 다 비슷한 것 같다. 농촌에 와서 겪는 문제와 어려움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의 도움 덕택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을 찾고 싶다. 젊은 세대로서 지역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 중이다.

▲ 처음으로 맛본 수확의 기쁨. ⓒ김강진

군에 가면 제일 처음 가는 곳이 신병훈련소이다. 처음엔 언제 끝나고 이곳을 빨리 벗어나나 하지만, 막상 자로 배치받고 가서는 훈련소가 그리워진다. 거창귀농학교는 내게 신병 훈련소 같은 추억으로 남았다. 처음 흙을 만지고 풀을 뽑을 때는 힘들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는데 돌아보니 참으로 좋은 추억만 가득하다. 아침에 닭장에서 갓 낳은 따뜻한 달걀을 소쿠리에 주워 담고, 직접 만든 차를 마시고, 한여름 들마루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시간들. 왜 이리 달콤하고 따뜻하기만 한지. 아직 온전히 내 두발로 현실에 발을 딛고 서지 않았기 때문에 낭만적 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6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에 만난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아직도 이어지기에 늘 가슴 깊은 데서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귀농학교의 추억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나가는 구체적인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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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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