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기습 상정'은 '치밀한 작전'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이 1일 환노위에서 법안 일괄 상정을 '선언'한 것은 오후 3시30분 경. 앞서 여야 세 교섭단체 간사가 권선택 의원실에서 회의를 갖기로 합의한 시간도 3시30분이었다.
민주당 간사인 김재윤 의원은 "원래 3시로 잡았는데 조원진 의원의 요청으로 3시30분으로 미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권선택 의원실에서 조 의원을 기다리다 국회방송을 보고 회의실 상황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추미애 환노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결국 한나라당이 야당 간사들을 속이고 기망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진수희, 전여옥 등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비정규직법 해고 사태가 날 경우 최대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성명을 냈다. 이어 진 의원 등이 추 위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위원장실 앞에서 추 위원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시각은 조 의원이 의사봉을 잡고 있던 시간이었다.
추 위원장은 "보좌진이 위원장은 회의 준비를 관계로 면담이 어렵다고 전했으나 진 의원 등은 '추 위원장이 회의장으로 들어갈 때 잠깐 뵙겠다'며 위원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추미애 위원장을 사실상 감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추 위원장은 이와 같은 한나라당 단독 회의 개최에 대비해 30일부터 계속 위원장실을 비우지 않고 모니터를 통해 회의실을 계속 체크하고 있었고, 이날도 점심식사를 국회 안에서 해결하는 등 한나라당 단독 회의 개최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상황에서 생긴 일이라 더욱 황당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한나라당 지도부 차원에서 기획한 것"
이와 같은 일련의 행위들이 한나라당 지도부의 '작전'에 의한 것이라고 민주당의 의심하고 있다.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사태 발생 직후 한나라당 김정훈 부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으나 김 부대표는 "전혀 교감이 없었다. 조원진 의원 단독 행위다"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환노위원인 김상희 의원은 "오늘 사태는 철없는 한나라당 환노위원 9인의 작품이 아니라 지도부가 기획하고 조원진 의원이 총대를 맨 것"이라며 "당 차원에서 기획한 것이 아니면 당에서 이들을 징계해 혐의 없음을 입증하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마치 관련 법안이 상임위에 상정이 안 돼 비정규직법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여론몰이를 위한 수순"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조 의원 등에 대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것을 검토하는 한편, 이들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키로 했다.
또한 이날 사태로 인해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과 관련한 여야 협의는 올스톱 됐다. 김재윤 의원은 "조 의원이 추미애 위원장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오늘 행위를 진심으로 사과를 하지 않는 한 조 의원과의 협의는 일체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추미애 "한나라당 장난 대응할 가치도 없다"
추미애 환노위원장도 단단히 화가 났다. 그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비정규직법 '기습상정'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나라당이 장난을 친 것이어서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원천 무효를 주장했다.
추 위원장은 "내가 회의를 거부한 적이 없다"며 "따라서 한나라당 측 조원진 간사도 상임위원장을 대리할 법적 자격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 국회법에 정하지도 않은 상황에 대응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국회법 50조 5항에 따르면 위원장이 의사진행을 등을 거부·기피할 경우 위원장이 속하지 않은 당의 간사가 직무 대행을 맡을 수 있다. 한나라당은 이 조항을 근거로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추 위원장의 주장은 회의를 거부하거나 기피한 적이 없는 만큼 이 조항이 적용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추 위원장은 "나는 위원장실에서 계속 모니터로 회의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원진 의원이 '10분 내에 위원장이 안 나오면 기피로 간주하겠다'고 해서 회의 준비를 수석전문위원에게 명했고, 수석전문위원은 조 의원에게 이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추 위원장은 또 "한나라당이 이날 10시에 회의 소집을 요구하고도 오전에는 의원 두 명만이 나왔다가 그냥 갔다. 그리고 2시 30분경에나 나타나면서 '4시간이나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노위 민주당 간사인 김재윤 의원은 "회의가 소집되려면 일단 여야 간사가 의사일정을 합의해야 하는 등 절차가 있는데 모든 것이 무시됐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추 위원장은 간담회 직후 한나라당의 '기습상정'과 관련한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여야 간사 회의를 소집했지만 한나라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은 불참했다.
추 위원장은 "오늘 한나라당이 벌인 행위는 회의로 인정할 수 없고, 법적으로 언급할 가치도 없다"며 "다만 정치적으로는 의회 민주주의를 원천 부정하는 독재 정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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