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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답은 단순해. 그냥 망치 들고 부수는 거야"

[민들레] 마이클 무어의 신작 <다음 침공은 어디?>

마이클 무어가 선사하는 '정책 종합선물세트'


좋은 다큐멘터리는 알아도 그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까지 알긴 어렵다.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감독이 스크린 전면에 드러나는 장르가 아니며, 극영화에 비해 전반적으로 인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큐를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한 명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이름 중에 마이클 무어가 있지 않을까.

유명 자동차 회사 GM(제너럴 모터스)의 공장 폐쇄로 자신의 고향인 미국 미시간 주 플린트 시가 황폐화된 문제를 다룬 데뷔작 <로저와 나>(1989)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빛나는 신인이 된 마이클 무어는 이후 <볼링 포 콜럼바인>(2002)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두 명의 고등학생이 일으킨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정작 총기 소지 허가의 문제는 방기하고 청소년과 폭력적인 대중문화에 책임을 묻는 언론과 사회를 통렬하게 지적했다. 작품은 곧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고, 2003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관객은 물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마이클 무어는 내놓는 신작마다 미국 사회의 병폐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9.11 테러와 이를 빌미로 부시 정부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 그리고 시민들의 자유를 극도로 통제하는 '애국법'의 뒷면을 파헤친 <화씨 9/11>(2004), 터무니없이 비싸고 불합리한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 문제를 다룬 <식코>(2007), 노동자와 시민들을 짓밟고 성장한 미국 자본주의 경제를 지적한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2009)까지, 모두 집요한 취재와 비판의 정신으로 탄생한 무어의 다큐멘터리들이다.

▲ 마이클 무어의 신작 <다음 침공은 어디?> 포스터. ⓒ판씨네마(주)
한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던 마이클 무어가 무려 8년 만에 신작 <다음 침공은 어디?>(2015)를 들고 관객 앞에 섰다. 한국에서는 전작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가 개봉하지 않았으니, <식코> 이후 무려 10년 만에 만나는 다큐멘터리다. <로저와 나>를 비롯해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에서 무어는 하나의 주제를 깊이 탐색하며 파고들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약 두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다양한 주제를 담아내려 애쓴다.

그럼에도 무어의 특징인 통렬한 풍자와 액션 영화처럼 빠른 속도감이 느껴지는 연출은 여전하다.

이 영화는 그간 베트남, 이라크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전쟁을 일으켰지만 확고하게 승리한 적 없었던 미국이 무어에게 다른 방식으로 '침공'하기를 부탁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무어는 총칼 없이 미국에 유익한 것을 얻어 오겠다며 먼 길을 떠난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책을 발견할 때마다 무어는 '침공'이라는 말과 함께 그곳에 성조기를 꽂는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뤄지는 이 침공 아닌 침공은 미국이 지난 몇십 년 동안 패권주의적인 자세와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 최강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했지만, 정작 국가적으로는 물론 미국 시민들에게도 큰 실익이 없었음을 지적하는 풍자이다. 또한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해외의 좋은 정책들을 겸허히 배우는 것이라는 강력한 주장이다.

그는 아홉 개 국가를 오가며 교육, 복지, 노동, 보건, 경제, 인권, 사법, 그리고 여성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무척이나 다양한 정책을 '침공'한다. 지나가듯이 언급한 세 개의 나라까지 포함시키면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려 열한 개 국가의 흥미롭고 의미 있는 정책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무어가 새로운 방식의 '침공'을 선언하고 맨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정책 분야는 바로 노동이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꿈꿀 수 없는, 총 8주에 달하는 이탈리아의 유급 휴가와 남녀 모두에게 동등하고 철저하게 보장되는 출산 휴가, 점심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관객들은 자연스레 영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 기업 이사회에 노동자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잔업을 금지하는 독일의 사례는 귀가 절로 솔깃해진다.

그다음으로 무어가 초점을 맞추는 분야는 교육이다. 지자체와 교육청 차원에서 특별하게 영양 관리가 이뤄지는 프랑스의 학교 급식부터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주목하고 있는 핀란드의 혁신적이고 자율적인 교육, 그리고 슬로베니아의 대학 무상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반값 등록금'에 대한 관심이 높게 일었던 한국에선 유학생에게도 대학 등록금이 무료인 슬로베니아가 더욱 부럽게 느껴진다.

▲ <다음 침공은 어디?> 중 한 장면. 질 높은 학교 급식을 제공받는 프랑스 아이들. 코카콜라 앞에서도 꿈쩍하지 않는다. ⓒ판씨네마(주)

다른 주제들 역시 한국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마약에 대해 강력한 처벌 대신 정부 차원의 관심과 치료를 선택한 포르투갈, 모범수는 물론 흉악 범죄를 저지른 재소자들에게도 최대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노르웨이, 민주화 혁명이 일어난 이후 낙태가 합법화된 것은 물론 헌법에 여성의 노동권과 참정권을 못 박은 튀니지, 1975년 여성들이 대대적인 총파업을 벌인 이후 여성 고위공직 참여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경제위기를 초래한 금융인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아이슬란드….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쉽게 꿈꾸기 어려운 모습들을 무어는 '침공'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들에게 보여준다.

미국인들을 위한 다큐가 한국에서도 유효한 이유


<다음 침공은 어디?>는 마이클 무어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그러나 한국 관객들에게도 영화의 많은 부분이 쏙쏙 와 닿는 이유는 무어가 지적하는 미국 사회의 문제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15일의 연차와 출산 휴가가 보장되어 있지만 공무원이나 공기업을 제외하고는 정당하게 그 권리를 행사하기 쉽지 않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입시 정책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학생 입장에서 교육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나마 '진보 교육감'이 들어온 곳은 사정이 낫지만, 입시 경쟁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입시 경쟁을 버텨 낸다 해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대학 시절에는 비싼 등록금에 시달리며, 대학을 나와 직장에 취업하면 노동권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 세계에 쓰라린 한숨이 절로 나오고 만다. 영화 속에서 지적하는 미국의 현실은 어떤 의미로는 한국의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무어가 해외의 상황을 너무 과장하고 미화해서 조명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비판을 무어도 미리 예상했는지 영화 초반에 "내 임무는 잡초가 아니라 꽃을 따가는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을 통해 모든 국가들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미국에 본보기가 될 만한 정책을 살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전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에도 군데군데 아쉬운 점들이 눈에 보인다. 가장 아쉬운 지점은 영화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정책들이 어떠한 맥락을 통해 시행되고 정착되었는지 깊게 살피지 않는다는 점이다. 높은 세율과 강력한 사회운동을 통해서 쟁취했다고 간략하게 언급은 하지만, 그 이상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그저 무어가 제시하는 아름다운 정책들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할 뿐이다. 분명 그 정책들은 흥미롭고 부럽기 그지없는 것들이지만, 어떻게 그 정책이 가능했는지를 생각하기엔 충분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서 다양한 주제를 한꺼번에 풀다 보니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 되고 만다.

▲ <다음 침공은 어디?> 중 한 장면. ⓒ판씨네마(주)

하지만 그런 아쉬움에도 <다음 침공은 어디?>는 관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다큐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부러워하지만 말고 직접 이러한 정책들을 쟁취하기 위해 움직일 것을 촉구하는 다큐이기도 하다. 숨 가쁘게 많은 나라들을 오가면서 온갖 정책들을 '침공'했던 마이클 무어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독일을 방문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은 바로 베를린 장벽이다. 무어는 자신의 절친한 독일 친구와 함께 잔해만 남은 장벽을 거닐면서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장벽을 망치로 두드렸던 기억을 반추한다. 단순한 퍼포먼스로 생각했던 '장벽 부수기'가 어느덧 현실이 된 것이다. 무어의 독일 친구는 이것이 바로 "뭐든 가능하다는 증거"라 일컫는다. 무어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에 모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비책이 숨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답은 단순해. 그냥 망치를 들고 부수는 거야."

마지막 장면에서 무어는 알고 보니 애초에 '침공'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한다. 세계 각국에 널리 퍼져 있는 좋은 정책들이 이미 미국이 지향했던 가치들을 기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움직이고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허나 '직접 움직여 쟁취하라'는 메시지의 실천이 혼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다음 침공은 어디?>는 함께 보고, 함께 생각해야 더욱 의미 있는 작품이 된다. 더 나은 정책, 더 나은 국가를 위해 고민하는 단초는 되겠지만 결국 그 문제들을 직접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은 바로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이기 때문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어 각종 정책을 깊게 살피고, 어떻게 우리의 권리를 현실로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 <다음 침공은 어디?>를 만든 마이클 무어의 진정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다음 침공은 어디?> 공동체 상영

개봉 극장이 없더라도 전국 어디서나 이 영화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함께 보고 싶은 이들을 모아 '팝업시네마'로 연락주세요. 팝업시네마(http://popupcinema.kr)는 다양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제작된 공동체 상영 신청 사이트입니다.

문의 :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admin@popupcinema.kr) / 02) 2632-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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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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