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은 한국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곡식이다. 역사적으로도 아주 오래전부터 먹을거리로 이용해왔고, 대두는 만주 일대가 원산지로 알려진 만큼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가 있다. 대두뿐 아니라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라는 강낭콩이며, 녹두에 동부까지 '콩'이라 통칭하는 종류는 참으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나마 '팥'까지 '콩'이라 부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팥까지 콩이라 불렀다면, 그 종류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많아졌을 것이다.
먼저 우리가 흔히 콩이라 부르는 것들에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콩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콩과의 한해살이풀. 높이는 60~100센티미터이며, 잎은 어긋나고 세 쪽 겹잎인데 털이 있다. 7~8월에 잎겨드랑이의 짧은 가지에 흰색, 붉은색, 보라색의 작은 나비 모양 꽃이 총상 화서로 피고, 그 가운데 몇 개의 꽃이 결실하여 꼬투리가 된다. 꼬투리 속에는 하나에서 세 개의 긴 타원형 씨가 들어 있다. 씨는 식용하거나 기름을 짜서 슨다. 중국이 원산지로 한국, 만두,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한다.1)
이 설명만 보면 콩이 곧 대두(大豆)를 가리키는 것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 서는 콩을 좀 더 다양한 종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흔히 콩이라고 하면 완두콩은 물론 강낭콩·동부콩·녹두콩·작두콩 등만이 아니라, 심지어 땅콩도 콩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예외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팥이다. 조숙정 박사의 연구로는, 농민 대부분이 콩과 팥을 구분하는 기준은 첫째, 그 용도에 따라 구분한다. 콩은 메주를 쑤어 장을 담그는 데 쓰거나 밥에 놓아먹고 콩나물을 길러 먹는다. 팥은 떡을 할 때 쓰거나 죽을 쑤어 먹는 데 주로 쓴다. 둘째, 맛으로 구분한다. 콩은 맛이 고소하지만 푸근푸근한 기가 있다. 셋째, 형태로 구분한다. 콩은 대체로 동글동글한 반면, 팥은 잘쏙한 기가 있다.2)
이처럼 콩과 팥은 서로 꼭 구분하여 부르지만, 대개의 콩과 작물의 알곡은 그냥 '콩'이라 통칭한다. 그러면 '콩'이라 할 때 가장 일반적인 대두, 곧 메주콩 이외에 그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강낭콩이다. 강낭콩은 '강남콩'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이름이 붙은 데에는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인 이 콩이 유럽을 거쳐 중국의 강남 지방에서 한국으로 건너와서 그럴 것이다. 토종 씨앗 수집을 나갔을 때 할머니들을 통해 강낭콩을 '대국(大國)콩', '호(胡)콩', '당(唐)콩'이라 부르는 사례를 접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이름도 모두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음은 완두콩이다. 완두콩은 지중해 동부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긴 하다. 하지만 고농서를 살펴보면 1492년에 출간된 <금양잡록>에 완두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때 당시에 이미 재배하고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완두는 지중해 쪽이 고향이라 그런지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여 보통 3~4월에 심는데, 감자와 함께 가장 먼저 노지에 심는 작물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산성의 흙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여 화강암이 어머니인 한국의 흙에는 그다지 적합한 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도가 원산지로 추정되는 녹두도 콩이라 부르는 것의 하나다. 녹두는 물이 잘 빠지기만 한다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라, 농사짓기에 좋은 작물이긴 한다. 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단점이 있으니, 녹색이던 꼬투리가 검게 익으면 그때그때 따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꼬투리가 탁 터져서 알곡이 튀어 나간다. 그렇게 튀어 나간 녹두들은 이듬해에 밭에서 절로 자란다. 그런데 그러한 녹두는 시커먼 빛깔의 돌녹두가 되어버려서 먹기에는 어렵다. 녹두를 대규모로 재배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사정과 적은 수확량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한, 동부가 있다. 동부는 그냥 동부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동부콩이라고 하는 때도 있으니 그냥 콩의 하나로 보겠다.
동부는 대개 덩굴을 길게 뻗어 한가진 곳에다 심는 일이 많다. 그곳에서 알아서 뻗어 자라면 오며 가며 눈에 띄는 대로 따다가 비를 맞지 않는 곳에 휙 던져놓는 것이다. 거기서 알아서 잘 마르면 나중에 한번에 떨어서 밥에 넣어 먹거나 떡의 소로 쓴다.
메주콩, 밥밑콩, 나물콩
그럼 다시 콩을 그 쓰임새에 따라 나누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된장과 간장을 담그는 데 쓰는 메주콩이 있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대두가 주로 쓰인다. 콩은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불릴 정도인데, 보통 단백질 40퍼센트, 탄수화물 30퍼센트, 지질 20퍼센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동물단백질을 대신할 만큼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 예전에 고기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별 탈 없이 살아왔던 데에는 이러한 콩의 영양분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콩으로 된장을 담가 먹는 것만이 아니라 단백질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두부까지 만들어 먹었으니 말이다. 메주콩은 된장, 간장, 두부, 두유, 콩국수 등을 만들어 먹으므로 콩 중의 콩이라 할 수 있다. 쓰임이 많은 만큼 콩이라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밥밑콩이 있다. 밥밑콩은 이름 그대로 밥을 지을 때 밑에 깐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무쇠가마솥에 밥을 지었다. 그래서 쌀보다 콩이 잘 안 익는 경우가 많아 쌀을 넣기 전에 솥 밑에 먼저 콩을 깔고서 그 위에 쌀을 얹힌 뒤에 밥을 지어야 했다. 그런 생활문화로 탄생한 말이 바로 밥밑콩이다. 이러한 밥밑콩은 밥을 지을 때 잘 익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메주콩보다 탄수화물 성분이 높아서 그렇다. 예전에 콩밥보다 팥밥을 더 흔하게 먹었던 이유가 탄수화물 성분이 높은 팥이 콩보다 더 잘 익기 때문이기도 하다. 탄수화물은 생물 시간에 배웠듯이 침에 있는 아밀라아제와 섞이면서 당분으로 변하기에, 좋은 밥밑콩은 먹을 때 달달한(달곰한) 맛이 난다. 그래서 그 맛이 꼭 밤과 비슷하여 밤콩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꽤 많은 편이다. 이렇게 밥밑콩으로 쓰는 콩은 대개 크기가 큰 편이며 그 열매가 늦게 여무는 경향이 있다.3) 요즘 밥밑콩으로 가장 주목받는 서리태가 그러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서리태는 서리가 생길 때쯤 여문다고 하여 서리태라 하는데, 수확량도 적고 농사가 쉽지 않아 가격이 꽤 센 편이다.
셋째로, 나물콩은 콩 가운데 크기가 가장 작다. 우리가 흔히 약콩, 쥐눈이콩이라 부르는 것들이 이에 속한다. '블랙 푸드(black food)' 열풍이 불면서 검은 빛깔을 띠는 검은깨, 서리태, 흑미, 쥐눈이콩 등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약콩은 그러면서 새로 생긴 이름이 아닌가 한다. 토종 씨앗 수집을 나가서 보면 약콩보다 쥐눈이콩이나 속청, 속푸리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다. 쥐눈이콩은 콩의 생김이 쥐의 눈처럼 생겼다고, 속청과 속푸리는 겉은 검으나 속은 푸른빛이라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크기가 작은 콩이 큰 콩보다 싹이 더 빨리 트고 썩는 일이 적어서 주로 그러한 콩으로 콩나물을 길러 먹었다. 물론 일반 메주콩으로도 콩나물을 기를 수 있지만, 콩나물을 기르기에는 그다지 알맞지 않다. 이에 관해 전남 곡성군의 김귀님(75세) 할머니는 "잔 콩(알이 잘은 콩)은 아무 때나 (콩나물을) 길러 먹을 수 있어. 큰 콩도 5월 초까지는 길러 먹을 수 있긴 한데 머리가 무거워서 안 나버리고, 뜨거울 때는 썩어버려"라고 한다.
전통농업에서 콩을 활용하는 법
이제 본격적으로 전통농업에서 어떻게 콩을 활용하여 농사를 지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농사시험장에서 일했던 다카하시 노보루(高橋昇)는 조선의 농업에 관하여 고농서는 물론 현지조사를 꼼꼼히 한 농학자였다. 그의 학문적 스승으로, 초대 서선지장의장을 역임한 다케다 소우시치로(武田總七郞)는 "조선의 농법 가운데 세 가지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서선지방의 이년삼작 농법'과 '마른 논 곧뿌림 재배'와 '개성과 경성의 배추 씨받이'를 꼽는다.4) 그 가운데 이년삼작 농법의 핵심이 바로 콩이다.
이년삼작은 2년 동안 한 밭에서 농사를 세 번 짓는다는 뜻이다. 당시의 농사는 자급을 목적으로 하기에 역시 식량작물이 중심이 되었다.
채소류는 집에 딸린 텃밭 같은 곳에서나 몇십 평, 많아야 몇백 평 정도의 규모로만 농사짓고 온 힘을 곡식농사에 기울이던 시절이었다. 농민이 전체 인구의 80퍼센트 정도인 상황이었으니 지금과는 아주 다른 세상인 것이다. 이년삼작에서는 볏과 작물과 콩과 작물을 번갈아 가며 심어 먹었는데, 보통 조→밀·보리→콩→묵힘과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다. 그러니까 5~6월에 조를 심고 10월에 수확한 뒤 다시 밀이 나 보리 같은 맥류를 심는다. 이듬해 6월, 밀이나 보리를 수확하기 전 사이짓기의 형태로 혹은 수확하고 난 뒤에 그루갈이의 형태로 콩을 심는다. 그리고 10월에 콩을 수확한 후 묵히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농사지은 것은 바로 땅심(지력, 地力) 때문이다. 지금이야 화학비료가 나와서 질소 성분을 공급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 당시에는 거름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똥이 마려우면 자기 집 화장실로 달려가서 싸고, 손님이 똥을 싸주는 게 반가운 일이었으며, 개똥도 주워서 거름으로 썼겠는가. '질소 성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화학비료 위주의 지금의 농사방식이 더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화학비료를 생산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다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온실가스는 잘 알다시피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런가 하면 논밭에 화학 비료를 지나치게 주면 흙이 산성화돼 흙에 사는 미생물의 숫자가 줄어들고, 결국 토양비옥도가 떨어지게 된다. 또한, 과도한 질소 성분이 빗물 등에 쓸려 강과 호수로 흘러들어 가면 부영양화로 녹조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현재 주로 화학비료에 의존하여 농사짓는 세계의 공업형 농업 지대에서는 이와 같은 일로 발생하는 '죽음의 구역(Dead Zone)' 문제가 심각하다.
무엇이든지 적당한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 화학비료에만 의존하여 너무 지나친 양을 사용하는 건 문제다. 화학비료의 장점은 구하기 쉽고 효과가 즉각적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하여 직접 만들어 쓰는 거름은 만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노력이 많이 들며 효과가 천천히 지속해서 나타난다. 또한, 넓은 면적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그 양도 엄청나게 많아야 하고, 그만큼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지금은 직접 거름을 만들어 쓰기보다는 손쉽게 화학비료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는 것이다. 유기농업이라 하더라도 직접 거름을 만들어 쓰기보다는 유기농업의 기준에 맞는 유기질 퇴비를 사다가 쓰는 형편이다. 이는 농사가 자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돈을 버는 직업이 되면서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전통농업에서 콩을 활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땅심을 최대한 회복시키고 유지하도록 한다. 콩은 인간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면서, 흙이 땅심을 유지하도록 돋는 작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건 콩과식물의 뿌리에서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라는 균 때문이다. 이 균이 작용해 대기 중에 있는 질소 성분을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흙 속에 고정한다. 질소 성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식물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이는 동물에게 단백질이 없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메주콩은 뿌리혹박테리아로 300평에 10~45킬로그램의 질소를 고정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강낭콩은 최대 17킬로그램, 땅콩은 21킬로그램, 누에콩은 33킬로그램의 질소를 고정할 수 있다. 콩의 이러한 특성을 살려, 볏과 작물을 심어 땅심이 떨어진 곳은 이어서 콩 농사를 짓고 땅을 묵힘으로써 땅심이 다시 회복되도록 했다.
각주
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콩 항목.
2) <콩에서 발견한 전북의 음식문화>(조숙정지음, 국립민속박물관 펴냄) 중 97쪽.
3)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종자>(안완식 지음, 사계절 펴냄) 중 83~84쪽.
4) 이 내용은 다케다 소우시치로가 쓴 <도작신설(稻作新說)>에 나온다.
2016년은 UN이 정한 '콩의 해'입니. 전통콩의 역할과 효과, 다양한 농사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글은 <토종곡식>(백승우·김석기 지음, 들녘 2012)에 실린 <전통농업의 주인공, 토종콩>에서 발췌했습니다. '콩'을 주제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라 필자의 허락을 받아 두 번에 나눠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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