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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협동조합, 불가능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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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협동조합, 불가능하다고요?

[살림 이야기] 한살림운송협동조합

경기 안성 한살림물류센터의 저녁 시간은 60여 대의 운송차들로 붐빈다. 진한 연두색의 한살림 로고를 도색한 3.5~5톤 탑차들의 행렬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 탑차들은 지난해 8월에 창립한 한살림운송협동조합(이사장 신동환) 소속 조합원들이 운행하는 운송차다. 한살림운송협동조합은 운송차를 소유한 운송차주들이 만든 운송사업 협동조합이다.

운송사업 관련 제도·정책이 협동조합 만드는 데 걸림돌

대개 운송차주들은 운송업체에 차량을 등록해 일감을 배정받는다. 이를 보통 '지입제'라고 한다. 한살림운송협동조합의 조합원인 차주들도 같은 방식으로 일하지만, 어느 개인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아니라 차주들 스스로 출자하여 만든 협동사업체에서 서로 의견을 모아 정한 원칙에 따라 일한다는 점이 다르다.

화물운송과 관련해 협동조합을 만든 사례는 흔하지 않다. 차주들은 개인차를 소유한 사업자이면서 화물자동차운송사업면허를 가진 운송업체에 소속되어 일을 배정받는 방식에 익숙한 터라 차주 여럿이 함께 사업체를 꾸리는 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그렇다 보니 한살림운송협동조합을 만드는 과정도 녹록하지 않았다. 신동환 이사장의 말을 빌리면 "결혼하기 전에 혼수 때문에 결혼 자체를 뒤엎을 만큼 옥신각신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운송사업과 관련한 제도와 정책이 협동사업체를 꾸리는 데 그리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운송업계에서 협동조합을 만들기란 '불가능한 일'로 여겨져 왔다. 그래도 몇몇 사람들이 한번 해봄 직한 일이라고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운송 업무는 오로지 혼자 해내는 일이다. 먼 지방까지 배송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장시간 고속도로 운전은 고행과 같다. 운송과 관련해 벌어지는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어쩌면 협동조합이라면 비용 부담을 공동으로 해결하고 일의 부담을 서로 나누며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갈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게다가 화물운송업계에서 벌어지는 다단계 알선업체들의 횡포, 무책임한 운송사업자의 편법 사기, 적절하지 못한 배송비 배정, 배송 사고에 대한 무리한 책임 떠넘기기 같은 비리는 차주들이 직접 사업체를 만들면 사라질 수 있는 일이다.

▲ 협동조합에 우호적이지 않은 제도와 정책 탓에 협동조합을 만들기 어렵다는 화물운송업계에서 협동의 실험을 시작한 한살림운송협동조합. 경기 안성 한살림물류센터의 저녁시간은 68명의 조합원들이 운행하는 대형 탑차들로 장관을 이룬다. ⓒ살림이야기(우미숙)

▲ 과거 홍남물류 소속이었던 운송차주들이 스스로 운송업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비용과 일의 부담을 함께 나누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살림이야기(우미숙)

독립사업체로서 틀을 갖춰 가는 과정

운송협동조합 사람들은 짧게는 3~4년, 길게는 17년 동안 용인(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문형리)에서 현재 안성까지 한살림물류센터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나이는 30대 후반부터 70대 초반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그동안 홍남물류 소속으로 한살림물류센터 운송업무를 맡아 왔다. 홍남물류는 2000년대 초부터 한살림과 물류운송사업을 함께해 왔으며, 한살림을 가장 잘 이해하고 건강한 사업체로 인정받아 왔다. 그렇기에 협동조합으로 독립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운송영업을 하는 데 필요한 '번호판'을 반납하고 새로 구입하는 과정이 간단치 않았다.

운송협동조합은 홍남물류가 소유한 운송영업권인 번호판을 반납하지 않은 상태다. 현재 조합원들은 홍남물류 영업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50명, 개인 영업권을 가진 경우가 18명이다. 운송영업면허가 허가제로 바뀌면서 새 번호판을 받는 일이 간단하지 않으며, 한꺼번에 번호판을 반납했을 때 홍남물류가 안아야 할 영업 손실도 고려해 급하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번호판이 시장 거래에서 천정부지로 값이 올라 있어 이에 대한 부담도 컸다. 현재 어려운 점은 홍남물류에 지입료(주선료 포함 월 30만 원)를 내면서 동시에 협동조합에 조합비(월 15만 원)를 내는,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단 이중 부담을 덜어주고자 협동조합에 내는 주선료는 잠시 유예하기로 했다. 개인 영업권을 가진 경우는 협동조합에 조합비와 주선료를 낸다.

정보 비공개 관행 깨자 오히려 논의할 게 많아져

협동조합이 창립된 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협동조합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 올해 1월 1일부터이니, 차주들의 협동조합이라는 실험은 아직 시작 단계이다. 현재 조합원은 68명. 이들 모두 200만 원의 출자금을 낸 협동조합의 주인이다.

이사가 8명, 감사 1명이다. 일하는 형태는 모두 같지만 배송지가 지방, 수도권 공급센터, 매장으로 나뉘어 있어 영역별 대표자로 이사회를 구성했다. 예전엔 배송팀장과 경험 많은 선배들이 중심이 되어 조율했지만, 이제는 영역별 조장을 두고 그중 총 조장을 뽑아 자주적이고 책임 있게 운영한다. 회의도 많아졌다. 이사회는 매주 한 번, 전체 회의는 2주에 한 번 한다. 처음에는 전체 회의를 매주 열다가 한살림 일요 배송이 시작되면서 바꿨다. 자칫 회의 때문에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 한살림운송협동조합은 배송지에 따라 지방, 수도권 공급센터, 매장을 나누어 권역별 대표자들로 이사 8명, 감사 1명의 이사회를 꾸리고 매주 1회 이사회를 연다. 사진의 조합원 전체 회의는 2주에 한 번 한다. ⓒ살림이야기(우미숙)

운송협동조합 조합원들은 협동조합을 통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이주영 이사는 "협동조합이 되면서 예전에는 말없이 조용하게 처리하던 일들에 대해 이제는 형평성을 맞추자고 주장하고 그에 예민해졌다"며 조합원의 권리 의식이 커졌다고 말한다. 이런 점이 자칫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배송비 책정이나 운영에 관한 회계 자료를 한 번도 공개하지 않던 관행을 깨고 협동조합은 투명 경영 원칙을 실천했다. 그동안 막연히 상상했던 내용을 이제 직접 확인하니 불합리한 부분이 눈에 띄고 개인에 따라 억울한 점도 보이게 되었다. 논의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다 보니 그런 논의가 열띤 논쟁이 되기도 한다.

조합원들의 바람은 더 많은 소득이 아니다. 누가 일방적으로 정해 통고하는 방식이 아니라 뭐든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기를 원한다. 일의 원칙을 형평성에 맞게 조합원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일하고 생활하고 싶다. 또 협동조합이 이 일을 마치고 나서도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경제적 안정과 든든한 사람 관계를 만드는 사회보험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지입제란?

화물운송차량을 소유한 사람이 자신의 자동차를 화물자동차운송사업면허를 가진 운송사업자 명의로 등록하여 일감을 배정받는 제도다. 실제로 각 차주들이 독립된 관리 및 계산으로 영업을 하면서 운송사업자에게 지입료를 지불한다. 이때 지입료는 운송영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의 상징인 노란색 번호판을 사용하는 비용이다. 차주는 대개 운송사업자에게 일감을 주선해 주는 비용인 주선료와, 운송영업권을 사용하는 비용인 지입료 두 가지를 낸다. 대신 부가세를 비롯한 세무 관련 비용은 운송사업자가 부담한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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