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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정 연설 "믿어달라", 못 믿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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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정 연설 "믿어달라", 못 믿는 이유?

[시사통] 이슈독털 10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밝힌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입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사람 믿어주세요!'입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역사 왜곡이나 미화가 나오는 것은 자신부터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걸 보면 분명 그런 메시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용히 있으라!'입니다.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두고 왜곡과 혼란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 걸 보면 분명 그런 메시지입니다.

어떨까요? 실현가능한 주장이고 고개 끄덕일 호소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박 대통령이 근현대사 서술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박정희의 딸이어서만은 아닙니다. 박 대통령이 2008년에 출간된 뉴라이트의 근현대사 대안교과서에 대해 극찬을 한 사실 때문만도 아닙니다.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좌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칙상 그렇습니다.

박 대통령이 좌시하지 않으려면 미주알고주알 챙겨보고 참견해야 합니다. 교과서 집필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집필진의 서술내용을 밑줄 쳐 가며 미리 읽어야 합니다. 세상에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국정교과서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부 공산권 국가에서도 이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물론 박 대통령의 말을 이렇게 액면 그대로, 좁디좁게 해석하는 건 고의적인 오독입니다. 박 대통령의 말은 일종의 '연대보증'으로 읽어야 할 겁니다. 왜곡이나 미화가 발생할 여지를 남기지 않도록 잘 관리감독하겠다는 뜻이요 행여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검수단계에서 걸러내겠다는 뜻쯤으로 이해하는 게 맞을 겁니다.

헌데 이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박 대통령은 왜곡이나 미화가 발생할 여지를 이미 만들었습니다. 어제의 시정연설에서 말이죠.

왜곡도, 미화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말은 가치중립적으로 사실에 입각해 서술하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요. 이런 본인의 뜻이 역사 교과서 집필과정에 투영돼, 최종적으로 연대보증까지 이어지려면 본인 스스로 가치를 내세우면 안 됩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분명하게 내세웠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주는 게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규정해버렸습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자부심의 원천은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루어내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된, 자랑스러운 나라'입니다. 이런 플롯에선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가 미화되기 십상입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정통성의 기원은 1948년 8월15일이 될 것입니다. 그 날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가 수립된 날로 더더욱 강조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강조의 세기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면 건국절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복선을 깔아놨습니다. 자부심과 정통성을 '올바른 역사교과서' 여부를 가르는 핵심 줄기로 설정했고, 그것을 집필기준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특정한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기술단계에서의 상대적 강조 여지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자부심과 정통성을 사전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맥락적으로 정의할 국정 교과서 집필진에겐 그렇게 다가갈 것입니다.

결국 돌고돌아 원점입니다. 박 대통령은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고 말했지만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왜곡과 미화 가능성을 우려하는 그 문제를 '올바른 기술'로 단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민은 조용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파동의 핵심문제는 국정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왜곡과 미화의 결정체를 '올바르다'고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백 사람의 보편적 인식을 한 사람의 왜곡된 인식이 억누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글은 <시사통> '이슈독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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