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미래를 놓고서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다. 유례없을 정도로 각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빚을 지고 돈을 푸는 양적 완화 정책을 펴고 있지만, 대부분 선진국이 똑같은 병에 걸려 있다. 높은 실업률, 정부와 가계 부채의 급등, 치솟는 부동산 가격, 그리고 잠재 성장률 둔화.
한국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5일 국제결제은행(BIS)이 선진 12개국과 신흥 14개국을 대상으로 가계, 정부, 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가계 부채는 작년 말 현재 GDP 대비 84%로 신흥국 평균(30%)의 2.5배에 달했고, 선진국 평균(73%)보다 높았다.
그나마 선진국들은 2007년 말 이후 7%포인트의 가계 부채를 줄여나가고 있었으나, 같은 기간 한국은 12%포인트 올랐다. 신흥국들의 상승 폭(10%포인트)보다 크다.
빚은 많이 졌지만…
이는 한국 정부가 회복되지 않은 경기를 부양하고자 빚으로 소비를 늘리는 모르핀 식 처방에 절대적으로 의존했고, 그 부담을 가계에 주로 떠맡겼음을 뜻한다. 작년(2014년) 말 현재 기업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05%였고, 정부 부채 비율은 38%였다. 한국 정부의 부채 비율은 비록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나, 여전히 홍콩,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소수 국가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편이었다.
한국의 가계, 기업, 국가 부채를 모두 합한 총부채의 GDP 대비 비율은 228%로 신흥국 중 홍콩(287%), 싱가포르(242%), 중국(235%) 다음으로 높았다. 다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독일(191%) 다음으로 낮았다.
이런 식의 땜질 처방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모두가 안다. 사회 복지 시스템 마련을 회피한 탓에 가계는 생계유지를 위해 빚을 내는 악순환에 빠졌다. 10일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의뢰해 발표한 '경제 활동 인구 조사를 활용한 청년 실업률 분석 결과'를 보면, 올해 7월 기준 체감 청년 실업률은 22.5%였다. 구직 단념자 수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청년은 사회에 갓 진출해 경제에 활력을 일으키는 존재다. 경제 기반이 부족해 소비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낳는 계층이기도 하다. 이들이 취업을 포기하면 소비가 무너지고, 그로 인해 주택 시장도 악영향을 받는다. 특히, 출산율이 떨어지는 게 큰 문제다. 경제의 미래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그리는 잿빛 미래상은 어떨까. 올해 주목받은 두 권의 책은 우리의 불안한 상상을 구체적 통계치로 암울하게 그려낸다. 올해 초 번역돼 '인구 절벽'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2018 인구 절벽이 온다>(해리 덴트 지음, 권성희 옮김, 청림출판 펴냄)와 최근 나온 <지방 소멸>(마스다 히로야 지음, 김정환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이 바로 그것이다.
부동산, 이미 정점 쳤다
두 권의 책이 초점을 두는 건 인구다. 인구 변동이 짧은 기간 안에 국가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 두 책은 강조한다.
<2018 인구 절벽이 온다>는 인구 통계치를 기반으로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장기 하락, 베이비붐 세대의 소비에 따른 1990년대 미국 경제의 대호황을 예측했던 투자 분석가 해리 덴트의 저서다. 그는 이 책에서 '베이비붐 세대'(20세기 처음으로 주요 선진국이 대대적인 출산 증가세를 경험한 시기에 나온 다자녀 세대. 나라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보통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50~60년대 세대를 통칭한다. 한국은 1960~70년대 초가 해당한다)가 본격적으로 소비 주체에서 퇴장하는 이번 시기가 끝나면 세계 주요 선진국이 소비 주체의 부족으로 인한 인구 절벽을 경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소비 하락에 따른 경제 불황기를 맞이하리라고 전망한다.
이 책은 투자자를 위한 안내서다. 따라서 이 불황의 시기에 맞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담았다. 그러나 주제 의식을 떠나, 저자의 불황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인구 통계를 근거로 세계 경제의 큰 미래를 그린다. 인구 통계는 기술 통계와 더불어 경제학에서 장기 전망에 사용하는 통계치다. 그만큼 큰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데 적중률이 높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한국 경제의 미래상도 제시했다. 일본을 '식물 경제'라고 묘사한 저자는 한국이 정확히 일본 경제 모델을 22년 차이로 따라간다고 설명한다. 22년의 근거는 일본과 한국 경제가 가장 많은 출산 인구를 경험한 해가 1949년과 1971년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가장 왕성한 소비를 마치는 2018년(1971년생의 47살 시기) 이후 한국은 인구 절벽을 경험한다. 한국 베이비붐 세대는 불안정한 사회 보호망 등의 이유로 자녀를 많이 낳지도 못했다. 따라서 한국은 주요 선진국과 달리 '에코 붐 세대'(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각국의 첫 번째 출산 붐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태어난 세대를 통칭한다)의 소비 호황을 기대할 여지도 없다.
따라서 저자는 "한국은 2018년 이후 인구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마지막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수십 년간 소비 흐름의 하락세가 중단 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를 근거로 저자는 "한국은 2014년에서 2019년 사이 대대적인 디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예측이 맞는다면 이른 시간 안에 우리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2018년 출범하는 새 정부는 혼란에 빠진 경제를 일으키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저자의 예측이 맞는다면 이른 시간 안에 우리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2018년 출범하는 새 정부는 혼란에 빠진 경제를 일으키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으리라고 전망한다. 그는 인구 통계치를 근거로 "한국은 출생인구가 가장 많았던 해에서 42년 뒤인 2013년에 부동산 시장이 이미 정점을 쳤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지금은 주거용이든 투자용이든 사업용이든 필수적이지 않은 부동산을 괜찮은 가격으로 매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단언했다.
더구나 한국은 기형적일 만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특히 대중국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 중 30%를 넘는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한국 경제는 특히 큰 타격을 피할 수 없다.
<2018 인구 절벽이 온다>는 경제 지침서가 아닌 만큼, 문제 해결책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책 곳곳에서 답안을 제시했다. 빚을 일으키는 데 의존하는 정책을 당장 그만두고, 안정적인 불황을 준비해야 다시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늘리는 데 더해, 무엇보다 출산율을 높여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의 여러 장에 걸쳐 동아시아 경제가 선진국보다 빠른 고령화로 인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출산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본 인구, 100년 후에 4000만 명대로?
<지방 소멸>은 '사토리 세대'(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을 겪은 1990년대부터 약 20여 년 사이에 성장한 세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 취업과 출세에 관심이 없는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활력을 잃은 일본의 인구가 이대로 간다면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치를 내놓은 책이다. 예언대로라면 일본 경제는 사실상 파멸한다. 인구 증가가 없이는 경제가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 마스다 히로야는 일본 건설성과 이와테 현 지사, 총무장관을 지낸 관료다. 현재는 일본 창성회의(산업계 인사와 지식인들이 일본 사회 문제를 논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회의체)의 좌장이다. 정부 출신 인사답게, 그는 일본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 시나리오를 책에서 제시한다. 일본이 겪는 대도시 집중 현상, 농촌 고령화 현상과 그에 따른 지방 공동화 현상은 한국과 판박이다. 한국 사회에 닿는 무게감이 큰 이유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재 일본의 인구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산율(인구 치환 수준)은 2012년 현재 2.07이다. 한 가구가 2명 이상의 아이를 낳아야 현 수준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나 2013년 현재 일본의 출산율은 1.43에 불과하다. 인구의 절대 수가 감소하는 건 필연적이다.
저자의 조사 결과, 이미 인구 감소는 지방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전국의 794개 시구정촌(일본의 기초 자치단체. 시, 특별구, 정, 촌)에서는 고령자도 감소하고 있다. 자치단체의 절반이 급격한 인구 감소에 직면하게 된다. 책은 그중 896개를 '소멸 가능성 도시'로 지정했다.
일본 정부가 미래를 포기한 지금의 일본을 극복할 좋은 정책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에 따라 2030년에 출산율이 2.1까지 올랐다고 가정하자. 그런데도 책에 따르면, 일본 인구의 인구 감소가 멈춰 9900만 명이 되는 시기는 2090년이다. 이미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리다.
현 출산율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100년 후인 2110년 일본 인구는 현재 한국보다 적은 4280여만 명에 불과하게 줄어든다. 암울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파멸적인 미래상이다.
이는 한국의 미래이기도 하다. 한국의 2014년 출산율은 1.2명으로 일본보다 낮다. 서울의 출산율은 0.98명에 불과하다. 부부가 결혼하더라도 1명 미만의 아이를 낳는다는 뜻이다. 인구의 감소는 생산 가능 인구의 부족화를 낳고, 이는 소비를 떨어뜨려 경제 악순환의 기본 고리를 만든다. 부동산 수요가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고, 서비스업 활력이 급락할 것이다.
아이 낳을 수 있어야 경제 살아난다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관료 출신답게 뚜렷한 정책 목표를 제시한다. 인구를 다시 늘리기 위한 10년 기준의 국가 전략 계획을 마련하고, 그 1차로 2024년까지 출산율을 1.8로 늘리는 한편 도쿄 중심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2034년까지는 출산율을 2.1로 높이는 목표를 제시하고, 이들 목표 실현을 위해 정부가 구체적 대안을 지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장한 기운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위기감이 실감 나게 묻어난다.
저자는 출산율 회복과 지방 도시의 활성화를 인구 회복을 위한 두 가지 중요한 축으로 꼽는다.
출산율 회복을 위해 30대 후반 부부 합계 500만 엔 이상의 연 수입을 '안정적'(책은 이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으로 제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감소를 피할 수 없는 소규모 도시의 인구 감소는 포기하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대신 인구 감소를 막을 '최후의 보루'를 정부가 만들어, 이 마지노선을 사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방 도시 중 일부를 중핵 도시로 삼고, 이 도시를 중심으로 지방 경제가 인구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닫힌 사회인 일본이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도 책은 주장한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라는 말은 <2018 인구 절벽이 온다> 역시 같은 입장이다. 당장 인구가 줄어들면 국가의 엔진이 꺼지기 때문이다. 다만 <2018 인구 절벽이 온다>는 일본 사회의 폐쇄적 특성상, 쉽지 않은 일이리라고 전망한다.
두 책의 주제 의식은 다르지만, 관통하는 핵심은 같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에 미래가 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빚만 늘리는 대증 요법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넘기기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 일본 정부의 빚은 이미 감당하기 불가능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2018년 이후 부동산 시장의 하락이 시작될지는 미지수다. 중국 경제가 정말 경착륙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이는 예측의 세계이지, 당장 마주한 현실은 아니다. 그러나 정책 당국자, 다음 정권 창출을 꿈꾸는 이들은 이들 책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지금, 불황의 늪에 빠진 세계가 빚이라는 마약에 의존한 중독자가 되어버렸다는 소리, 특히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미래의 희망인 젊은이를 잃어가고 있다는 소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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