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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정말로 폭탄일까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세금은 복지 위한 공동 자산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인들이 가장 자주 접한 어구 가운데 하나는 '세금 폭탄'이다. '13월의 세금 폭탄 현실화, 직장인들 집단 멘붕', '연말 정산 세금 폭탄', '세(稅) 폭탄의 핵', '대국민 세금 폭탄 저지 서명 운동',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세금 폭탄', '정부는 이래도 서민 증세가 아니라고 우길 것인지' 등 표현도 다양하다. 정말 세금이 폭탄일까?

한국은 불화 심한 가정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지역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 등 다양한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우리의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나는 식구들 사이의 불화가 심한 가정을 떠올렸다. 이러한 상상은 지나친 비약일까?

국가를 가정이라고 보는 것은 세계 거의 모든 언어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다. 한국어에서도 '모국(母國)', '조국(祖國)', '국모(國母)', '국부(國父)', '우리는 모두 한 핏줄', '혁명의 아들딸' 등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이는 '국가'를 '가정'으로 이해하는 방식인 '국가는 가정' 은유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예시한다. 이것은 한국인들도 지도자들을 가장(家長)으로, 자신들을 식구로 여긴다는 말이다.

'가정으로서의 한국'은 현재 다양한 유형의 갈등을 겪고 있다. 이 갈등의 핵심에 이 가정을 계속 행복한 공동체로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즉, 세금)의 분담 방식이 있다. 한국에서 세금은 종종 폭탄에 은유된다. 올해 연말정산에서 보듯이, 언론은 전년도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 국민들의 불편한 감정을 보도하는 데 '세금 폭탄'이라는 어구를 사용했다.

'세금 구제'에서 따온 '세금 폭탄'

'세금 폭탄'은 미국의 보수가 1980년대 이래로 사용해 온 '세금 구제'라는 표현을 원용한 어구이다. 레이건 행정부 이래로 미국의 보수는 신자유주의 기조에 따라 기업에 법인세 인하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보수는 '세금 구제'라는 표현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들이 '세금 인하'(tax cut)라는 표현이 아니라, '세금 구제'(tax relief)를 선택한 것은 치밀한 의도적 전략에 따른 결정이었다. 미국의 보수는 이 어구를 전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진보와의 다양한 프레임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도 성공적인 프레임 전쟁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보수는 기업들과 초부유층을 위한 세율을 낮추려는 자신들의 숨은 의도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달성했다. 그들은 '세금 폭탄'이라는 표현을 주조하여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법인세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낮추었다.

▲ 박근혜 정부의 2013 세제 개편안에 반대한 김한길 민주당 전 대표가 2013년 8월 12일 서울 여의도 도심 거리에서 열린 '중산층·서민 세금 폭탄 저지 특별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금 폭탄' 은유는 무엇을 부각하는가?


'세금 폭탄'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우리는 바로 폭격 장면을 떠올린다. 이 '폭격' 장면에는 '폭탄'과 '폭격의 과녁', '폭탄을 투하하는 사람', '폭탄에 맞아 죽는 사람과 중상을 입는 사람', '파괴되는 시설물' 등의 역할이 있다. 폭탄 투하는 아무리 정확하게 과녁을 겨냥한다 하더라도, 과녁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과녁 주변의 사람들과 시설물을 파괴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폭탄 투하는 그 자체가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러낸다. 당연히 '폭탄 투하는 비인간적인 적의 파괴 행위'이며, 폭탄 투하를 저지하기 위해 싸우는 '전사는 영웅'이고, 폭탄 투하를 하는 '적은 악당'이 된다. 이처럼 낱말 '폭탄'은 ('전쟁' 프레임의 일부인) '폭격' 프레임을 불러내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세금' 뒤에 '폭탄'을 덧붙인 '세금 폭탄'은 '세금'에 대한 다양한 은유를 낳는다. 가령, '세금은 폭탄'이고, '세금을 부과하는 사람은 폭탄을 투하하는 적'이며, 정치가이든 학자이든 관료이든 '세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폭탄 투하를 막기 위해 싸우는 선한 영웅'이고, '세금 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폭탄을 투하하는 악당'이 된다.

한국에서 '세금 폭탄'이라는 어구가 맨 처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준비하던 2004년 말이었다. 당시 보수 언론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종합부동산세'를 '폭탄'에 비유했다. 그들은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될 경우 '세금 폭탄'을 맞는 계층', '(세제 개편과 주택 공급 확대, 부동산 대출 억제를 뼈대로 한) 8.31 부동산 종합대책…부동산 부자들에게 세금 폭탄', '종합부동산세를 만든 세금 폭탄 제조자들'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비난했다.

이 새로운 세금 제도의 도입을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물론 지지하는 여론이 훨씬 높았지만) 종합부동산 시행을 반대하는 여론도 30%를 약간 넘었다. 이것은 폭격 프레임의 과녁에 해당하는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인 부동산 초부유층 2%뿐만이 아니라 과녁이 아닌 일반 서민의 30%도 반대했음을 의미한다.

이 결과는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일반 서민들에게 '종합부동산세의 시행이 나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심어준 '세금 폭탄과 폭격' 프레임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세금은 폭탄' 은유가 '세금은 폭탄처럼 해로운 것'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했기 때문이다.

'세금 폭탄' 은유는 무엇을 은폐하는가?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맹렬히 반대하던 한나라랑(현 새누리당)은 선한 사람들이 되었으며, 특히 선두에서 이를 지휘하던 당시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영웅이 되었다. 반면에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추진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악당이 되었다.

'세금 폭탄' 은유와 '폭격' 프레임은 이명박 정부는 물론 현 정부에서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너무 높은 법인세율이 기업의 투자 의욕과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를 들어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종합부동산세는 사실상 폐지에 가까울 정도로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종합부동산세의 실질적인 무력화와 법인세 인하는 곧 바로 정부의 세수 부족을 야기했고, 실제로 2013년과 2014년 한국이라는 가정은 가계부 부도 상태를 맞았다. 이것은 당시 이 정책을 추진했던 관계자들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세금 폭탄' 은유로 인해, 이러한 문제점은 하나도 결코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보수적인 정부는 이러한 세수 부족을 메우려고 간판세, 애견세, 온천세 등을 신설하려 했으며, 2015년 1월 시행한 담뱃값 인상도 사실은 이러한 성격이 짙다.

한편으로는 세금을 폭탄이라 비난하면서 기업의 법인세와 초부유층의 세금은 인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수 부족을 이유로 서민에게 부담을 가중하는 방식이나 간접세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걷으려는 보수적인 정부의 조치는 모순으로 보인다. 이 모순은 초부유층에게서 걷든 서민에게서 걷든, 정부가 세금을 더 많이 걷으려 한다는 것은 세금이 폭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꼭 필요한 공동 자산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일 뿐이다. 한 마디로, 세금 폭탄 은유는 '세금이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공동 자산'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누진적 과세 강화해야

이 모순은 '국가는 가정' 은유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모순을 들여다보면, 해결책이 분명히 드러난다. 가정을 유지하는 데에는 최소한의 운용비가 들어가며, 이 비용은 가정의 구성원(식구들)이 공정하게 나누어 부담한다. 여기서 '공정함'은 그 가정에서 누리는 혜택에 따라 부담 금액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를 가정으로 볼 때, '국가를 운영하는 비용은 당연히 가정의 유지비용'이며, 이 비용은 가정의 구성원에 해당하는 국민들이 모두 '공정'하게 분담해야 한다. 여기서도 '공정함'은 국민이 각각 국가에서 누리는 혜택에 따라 적절한 비율로 나누어 이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보수든 진보든 모든 국민이 문자 그대로 동일한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느 정도의 누진세율이 공정한가를 두고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고 있다.

많은 국민의 눈에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부유층의 세금 분담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세금 제도를 개편한 것으로 비치고 있다. 현재 이 정부가 법인이나 초부유층의 세금 인상은커녕 이명박 정부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원상 회복마저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진세가 공정하려면, 부유층이 부담하는 세율이 현재보다는 훨씬 더 높아야 한다. '부유층에는 감세, 서민들에겐 증세'라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과 고소득자 세율 인상, 세율의 정밀한 세분화를 통해 모두가 공정하다고 인식할 수 있는 누진적인 과세안을 마련해서 엄정하게 시행해야 한다.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년유니온,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등 4개 복지 시민단체가 지난 1월 2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말정산 논란을 복지 증세로 발전시키자"고 촉구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세금 폭탄론 따라가는 진보


'세금 폭탄'은 이 어구를 도입한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도 역시 별다른 성찰 없이 그대로 사용한다. 중산층 봉급자의 세율 부담과 간접세 확대를 통해 세수 부족을 메우려는 정부의 꼼수적인 세제 개편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우리는 '세금 폭탄'을 공적 담화로부터 추방해야 한다.

초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려는 보수적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다고 할지라도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세금 폭탄'과 같은 어구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 낱말의 반복적인 사용은 세금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공포 이미지를 조장하는 보수의 '폭격' 프레임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세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대기업과 초부유층들의 세금을 내려주려 의도하는 보수적인 정부의 세제 개편에 기꺼이 동의하게 된다. 이것은 세수 부족을 초래하고, 세수 부족은 다시 '복지 축소' 논리나 '(정부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작은 정부' 주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바로 보수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보수는 풍요로운 삶이든 빈곤한 삶이든 개인의 삶은 전적으로 각 개인이 책임질 일이지 국가나 사회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세계관에서는 당연히 '사회 안전망'이나 보편 복지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이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허구였음을 반박하면서 '세금에 대한 다른 프레임'을 구성하는 데 전력해야 한다. 세금 부담이 높아지기 때문에 아예 복지를 하지 말자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맞서서, 탄탄한 사회 안전망을 갖춘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세금을 더 부담할 수 있다는 프레임을 짜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안전망과 복지는 원하지만 세금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당연히 버려야 한다. 실제로 국민의 불만은 세금 부담률 인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서 너무 많이 깎아주었던 대기업과 초고소득 계층의 세금 비율을 현 정부에서도 올리기는커녕 원상 회복도 마다하고 있다는 데 있다.

세금은 모두의 공동 자산

'프레임' 개념을 미국의 정치 담론 분석에 도입한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말마따나, '세금은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 줄 공동의 자산'이다. 사회안전망 구축과 복지 구현에는 반드시 일정한 재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세금이 우리 모두의 더 나은 미래와 행복을 위해 필수적인 자산이라는 '세금은 공동 자산' 은유와 프레임을 널리 전파하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하게 치솟는 의료비와 주거비, 교육비 부담의 공포에서 벗어나,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고 자유로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안전망을 갖춘 가정(으로서의 국가)에서 살고자 한다면 말이다. (비록 의료비와 주거비, 교육비 폭등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의료와 주거, 교육의 공공성을 최소화하고 이러한 영역의 거의 모든 것을 시장에 내맡기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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