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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논쟁, 다가오는 권력의 운명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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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논쟁, 다가오는 권력의 운명 정한다"

[시민정치시평] 기만적인 복지 과잉론

정치인의 말은 늘 논란을 몰고 다닌다. 별거 아닌 말도 정치인의 입에 오르면 구설수, 막말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치인의 한 마디가 시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최근 새롭게 불거진 복지 논란은 개헌론과 함께 2015년 정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듯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포문을 열었다. 국회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치는 나 홀로 대통령을 두고 무책임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말을 두고 여당도 이제는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6일 전국 최고경영자연찬회에서 행한 그의 발언은 이런 기대를 무너뜨렸다. 복지 과잉을 비판하면서 복지 축소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게 한 건 다음 말이다.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것이다. 이에 질세라 대통령은 증세를 "국민 배신"으로 규정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을 재천명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개편안에 다시 손댄다고 하니, 바야흐로 '복지 언어'의 과잉이다.

복지에 대한 청와대, 여당의 발언은 자가당착적이다. 지난 대선 경제민주화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었고,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약은 거짓이었다. 경제민주화 공약을 파기한 박근혜 정부가 이제 와서 복지 운운하는 것 자체가 희극적이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허상만 좇는 정부는 계속 우리를 기만하고 있다. 언제고 복지 확대 의향이 있지만, 재정 적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못 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처럼 시늉일 뿐이다. 두 손으로 민낯을 가리고 있다. 청와대, 여당의 복지 정책은 한결같았다. 철저히 복지 축소 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김무성의 발언도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청와대, 여당이 선별적 복지를 선호하는 것은 맞지만, 어떤 방향으로 복지문제를 해결할지 오리무중이다.

선별적 복지는 선별된 대상자에게 복지 정책을 시행하자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 말이다.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 굳이 복지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 복지를 해야 하는가"라는 반문에는 필요 없는 사람에게 굳이 복지 혜택을 주어야 하느냐는 수사로 들린다. 선별의 문제를 앞세우면 자연스럽게 효율성과 결합된다. 하지만 문자 상의 의미로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면 문제의 핵심을 놓친다. 지금 청와대, 여당의 주된 관심사는 "세금을 올릴 것인지"다. 이 문제는 정책 이전의 정치다. 세금을 걷지 않고 복지 확대가 가능하다면 누구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에선 증세는 결코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다. 선별적 복지를 거론하는 것도 표심을 건드리지 않고 쉽게 문제 해결하자는 꼼수에서 출발한다.

여당의 시각에서 복지는 근본적으로 시혜의 일종이다. 부자에게 필요 없지만 가난한 약자에게 필요하다는 인식이 지배한다. 반대 입장과 확연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증세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사람들은 복지를 삶과 밀착시켜 생각한다. 복지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라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명 청와대, 여당의 입장은 전자에 가깝다. 복지 예산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에 민감하고 거부감까지 표명하는 데는 증세가 부자에게 더 많은 짐을 지운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기에는 보수 진영 특유의 철학이 있다.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가장 중요한 정치 원리로 받아들인다.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마땅히 그 결과를 승복해야 한다. 결국 복지는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다. 김무성의 발언은 이런 철학에서 해석하면 나름 아주 일관성이 있다. 부자들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는 만큼 복지가 필요 없고, 단지 가난한 사람에게 합당한 최소 정도의 선별적 복지 정책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복지 과잉이 나태를 불러온다는 것도 자기 책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선별적 복지의 목표는 숫자상으로 평균점을 달성하는 것이고, 그것이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 방안이다.

이런 생각은 반시대적이다. 국민의 정서와 현격한 차이가 난다. 한국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서민증세에는 반대하고 있지만 부자 증세에는 70% 이상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가속화되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반영하는 지표이다. 표면적으로 우리 사회 불평등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한 걸음 나아가면 자기 선택과 책임, 성공의 신화를 강조하면서도 서민에게 책임을 떠안기는 여당의 국가관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개인의 책임만큼 상호 배려, 공동체의 책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불의에 대한 공감에는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긍정적인 비전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아직 눈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닌데"라는 느낌이 잠자고 있는 것이다.

왜 복지가 과잉이라고 외치는가?

그러기에 더 주목해야 할 문제가 있다. 여당이 민심을 거스르면서까지 복지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년 선거 표심을 생각하면 불가능한데도 묘한 언사로 우리 심기를 건드리는 이유는? 이에 대한 대답은 정치인의 계산된 말에 있다.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거부, 그럼에도 복지 과잉의 경계라는 말에는 여당 진영의 논리와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 무릇 말의 진실은 부지부식 간에 드러난다. 2월 6일 새누리당 당청 관련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김무성 대표와 친박 서청원 의원이 의미심장한 한 목소리를 냈다. 김무성은 "우리 새누리당은 대통령과 정부의 튼튼한 지원군이 돼야 하고 그걸 최우선 행동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 한다"며 당청의 '공동운명체'를 거론했다. 이 말을 되받은 서청원은 "천번 만번 공감"가는 말이라며 "이제 어려운 문제는 완급조절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집권당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정부와 뜻도 함께하고 책임도 함께 나눠야 한다"고 응답했다.

다시 불거진 복지 논란은 국정 운영 주도권 싸움의 전초전이다. 선거 전에 난제를 털고 가자는 큰 그림이 깔려 있다. 복지 논란을 통해 정국의 재편과 이슈의 선점이라는 이중전략이 깔려 있다. 내년엔 유권자의 민감 사안을 건드릴 수 없다는 절박함도 작동하고 있다. 누구도 이런 속내를 모를 리 없다. 문제는 여당의 선별적 복지에 대적할 대안 논리가 부실하다는 데 있다. 시민의 판단을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복지 문제를 정치화해야 한다. 논란이 깊을수록 논제의 합리성을 키우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대안이 부재할 경우 정치적 계략이 앞선다. 이슈에 대한 대안을 보여 전략이 아닌 정치 비전의 차이를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계략에는 늘 기만이 상존한다. 현 상황의 진짜 문제는 구체적 행동보다 반복된 말잔치가 앞선다는 점이다. 9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새 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조속한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당권 이후 후유증으로 어떤 대안이 나올지 미지수다. 바로 여기에 깊은 함정이 있다. 합리적 대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보이지 않으면 또 정치판은 기만적인 말로 시민을 현혹할 것이다. 고도로 계산된 정치인의 말에 속아가는 우리 자신을 볼 뿐이다.

정치의 생명은 타이밍이다. 복지 정책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자꾸 깊어지는 불평등의 골을 메우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만다. 골든타임은 변혁을 요구한다. 시대의 사명을 읽지 못하면 변화의 시간은 오지 않는다. 증세 메시지의 핵심은? 증세 문제가 단순히 정책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 과정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이유는? 해가 지면 또 다른 해가 뜨는 법. 증세 논란과 함께 복지 논쟁은 다가오는 권력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분명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앞지르는 지지율에 고무되어 있는 듯하다. 시민의 입장에선 정치인의 기만에 당하지 않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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