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아동폭행 동영상으로 온 국민이 놀랐다. 정부는 이 공분을 수습하고자 정부는 즉각적으로 CCTV 설치 의무화, 보육교사 자격증 국가고시화 등 공급자 규제 방안을 내놓았다. 보육교사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낮은 임금이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되자 이번에는 전업주부 아동의 보육시설 이용 축소, 가정양육수당 인상이라는 수요 감축방안도 슬그머니 내놓았다.
모두에게 비판받는 보육정책
하지만 어느 방안도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흔쾌히 환영받지 못했다. 학부모는 낮은 보육서비스의 질을, 보육교사는 열악한 근로조건과 임금을, 어린이집 운영자는 낮은 보육료를, 정치인은 늘어가는 보육 재정을 각각 문제 삼고 있다.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은 현재 보육서비스, 보육정책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미봉책으로 무마하는 것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정책 방향의 선회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아동에 대한 폭행과 학대, 종사자 허위기재, 불량식자재 사용, 부당 청구 등 보육서비스를 공급하는 어린이집의 문제는 끊이지 않고 발생해왔다. 1991년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된 지 24년이 지난 2015년에도 문제가 고질적으로 지속되는 현실은 문제의 원인이 보육 공급구조 안에 내재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우리나라 보육서비스는 압도적으로 민간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교육, 의료, 장기요양 등 다른 사회서비스 영역과 마찬가지다.
보육정책 진전을 막는 장벽: 보육 공급구조
정부가 건물을 짓고 인건비도 별도로 지원하는 국공립어린이집은 전체 시설 중 5.3%에 불과하다(아동 수 기준 9.7%). 국공립어린이집은 높은 경쟁률과 긴 대기자 명단에서 알 수 있듯이 학부모들이 선호한다. 실제로 이중 직영은 7%에 불과하고 93%가 민간에 위탁 운영되고 있어 운영 주체의 성격만 본다면 민간어린이집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국공립어린이집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육의 질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보육의 차이를 만들어낼까?
가장 먼저 국공립어린이집은 민간어린이집과 비교하여 지원되는 재정 규모가 다르다. 정부가 시설을 설치하여 제공하니 시설비용이 들지 않고, 원장, 보육교사, 취사부에 대한 인건비가 가이드라인에 의해 따로 지원된다. 재정여건이 좋으니 보육인력이 안정되고, 따라서 보육의 질도 나아진다. 국공립어린이집은 지원을 받는 만큼 정부의 지침 등에 충실히 따라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의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위탁계약 해지를 포함하여 제재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 4만5000개 어린이집의 90%를 차지하는 민간·개인어린이집에는 시설도 인건비도 별도로 지원되지 않는다. 정부의 보육재정은 이용아동의 연령에 따라 차등 지원되는데 0세~2세 영아는 75만 5000원(보육료 39만4000원 + 기본보육료 36만1000원), 52만1000원(보육료 34만7000원+기본보육료 17만4000원), 40만1000원(보육료 28만6000원+기본보육료 11만5000원) 지원되고 3세~5세 유아는 동일하게 22만 원의 보육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보육이용자에 대한 재정지원방식이다.
민간어린이집, 아동 보육료 지원비로 모든 경비 해결
이용아동 수에 따라 받는 이 보육료 재정으로 민간·가정어린이집은 보육교사 월급, 급식, 임대료 등 모든 경비를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민간 소유주는 최대한 이익을 남기고자 보육교사의 급여를 낮추고, 저가의 급식자재를 쓰려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로부터 지급되는 보육료 수입 외에 자체적으로 책정하는 특별활동비도 어린이집 수입의 주요한 재정충당 수단이 된다. 하지만 지자체별로 적게는 월 5만 원, 많게는 월19만 원까지 상한선이 정해져 제한을 받는다. 민간·개인 어린이집은 자발적으로 신청하여 받는 평가인증 외에도 영유아보육법에 의해 지자체의 지도감독을 받도록 되어있지만 실효성은 낮다. 2012년 실태조사에 의하면 당해년도에 점검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어린이집이 5000개소가 넘고, 3년간 한 번도 점검을 받지 않은 어린이집도 600곳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보육서비스 공급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최소화하면서 보육의 양적 확대에 치중해왔다. 공공보육시설을 확충해온 대부분의 나라들과 달리 정부는 자신이 직접 나서 보육인프라를 구축하기보다는 민간에 일임해왔다. 어린이집을 짧은 기간에 늘리고자 시설설치 기준을 낮춰 자기자본이 영세한 개인사업자에게도 보육서비스 공급을 허용해왔다.
민간에 대한 재정지원을 늘린 결과 약 연 8조 원 규모의 보육재정으로 5세 미만 아동의 약 45%인 150만 명이 보육서비스를 이용하는 양적 팽창이 이루어졌다(부모가 집에서 직접 돌볼 때 제공되는 양육수당은 포함안한 재정 규모). 하지만 보육을 비롯해, 유자녀 가족에 대한 정부지원 수준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OECD 33개 국가 중에 최하위다. 2009년 기준으로 유자녀 가족에 대한 정부지원은 GDP 1.01%로 OECD 33개국 평균 2.6%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같은 해 기준 OECD 국가들의 보육에 대한 평균지출액은 아동 1인당 2549달러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000달러도 못 미쳤다.
취약계층에 한정하여 제공하는 보육이 아니라 5세 미만 아동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보육을 제도화했지만 적은 재정, 민간주도 공급인프라로는 보육의 질을 높이기 어렵다. 좋은 질의 보육서비스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정부 책임이 요구된다. 정부는 보육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공급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노력하여야 한다. 안전한 시설 환경, 적정 급여를 받고 적정 노동을 하는 보육교사에 의해 보장되는 좋은 보육을 위해 많은 재정이 투입되는 것을 피하면 안 된다.
보육서비스 공급 관리 절실
충분한 보육재정 다음의 문제는 재정이 쓰이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최근의 사건들은 정부가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만으로 민간에 의한 보육서비스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급 측면의 관리가 불가피한 것이다. 보육교사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어린이집 원장의 재량에 맡겨지는 한, 보육의 취약한 고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지자체 고용, 혹은 임금가이드라인 적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12시간 종일제라는 획일적인 재정지원은 전체의 약 40%에 달하는 7시간 정도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영유아를 선호하고 종일제 보육이 필요한 영유아를 배제하는 어린이집의 역선택을 지속시킬 것이다.
보육은 취업이나 건강 등의 이유로 아이를 직접 돌볼 수 없는 가구에 제공되는 사회적 지원이다. 보편적인 보육서비스의 기준은 소득이 아니라 필요다. 보호자의 취업, 학업, 건강, 열악한 보육환경 등의 이유로 필요한 만큼의 보육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에 따른 보육은 0~2세 영아와 3~5세 유아를 구별한다. 세계적으로 3~5세 유아에 대한 보편적 보육서비스는 아동발달에 유익한 조기 교육으로 간주되어 보호자의 취업 여부와 무관하게 장려되는 추세다. 그러나 0~2세 영아의 경우 일하는 부모라도 육아휴직을 통한 보육이 권장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영아 보육시설 이용률이 62%로 OECD 국가의 평균 영아 보육시설 이용률 30%의 두 배가 넘는다. 뿐만 아니라 2012년 기준으로 영아를 둔 여성의 취업률(33.2%)보다 영아보육시설 이용률(48.7%)이 높은 유일한 나라이기도 한다. 아동에게 양질의 보육과 일하는 부모에게 충분한 보육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한 섬세한 보육정책 대신 획일적인 12시간 종일제 시설이용을 기준으로 보육료만 지원해온 보육정책의 결과다.
정부가 보육의 질이 문제가 되자 부실한 교육으로 자격을 갖춘 보육교사에게, CCTV를 설치하지 않은 어린이집에, 보육시설을 이용한 미취업 부모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이는 옳지 않다. 보육은 그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아동을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일이다. 보육은 국민이 낸 조세로 운영되며 공적인 책무성을 가진 일이다. 일선에서 보육을 책임지는 보육교사들의 지위는 이러한 공적 서비스를 직접 책임지는 것에 걸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보육 공급자들의 위상도 공적 지침과 규제를 준수하는 성격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정부, 보육료 지원으로 책임 다한 거 아니다
보육교사와 어린이집 운영자들이 공급하는 보육서비스의 최종적인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에 있다. 보육료 지원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든 국민은 보육서비스의 직간접적 수혜자이기에 보육재정은 조세로 조성된다. 보육서비스 이용의 당사자 또한 보육의 질에 걸맞은 재정적 책임을 공동으로 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무상보육? 애초에 그런 건 없다. 사전에 조세로 부담하거나 이용시점에서 요금으로 부담하거나 둘 중 하나다. 부담을 늘리지 않고 보육의 질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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