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강제 해산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지면서 10만 명에 가까운 당원들이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놓였지만 통진당은 직접적인 저항 대신 차분한 대응 방침을 밝혔다. 당장의 조직 재건이나 유지를 위해 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방식의 반발이나 대응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통진당 당원들이 정당이 아닌 형태의 결사체를 구성해 활동하거나, 새로운 강령과 이름의 정당을 구성하는 것, 통진당을 기반에 두지 않은 4월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법상 불가능한 것은 아닌 만큼 '정치적 대응'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러한 사실 자체가 정부의 위헌 정당 심판 청구와 헌재의 해산 결정이 '정치 보복'에 불과하단 걸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진당 투쟁본부도 해산…기한 내 사무실과 회계 정리하겠다"
홍성규 전 통진당 대변인은 19일 오후 "헌재 결정에 앞서 구성됐던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저지 민주수호 투쟁본부'도 19일 헌재의 당 해산 결정과 함께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해산된 정당의 당원들이 종전의 당조직을 유지하며 해산된 정당의 명칭으로 계속 활동하는 행위 등을 금한 정당법 41조를 감안한 판단이다.
향후 대응 방침과 관련해서도 강제 해산에 반발하는 집회나 시위를 계획하거나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도 않았다. 이 역시 정당의 이름으로 행사 등을 주최하는 것은 집시법 위반 소지가 높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국회 사무처가 공지한 '7일 내 사무실 정리' 방침에도 그대로 따를 계획이다. 김재연 전 통진당 원내대변인은 "보좌관 업무를 수행했던 이들이 남아 짐과 회계를 기한 내에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원직을 박탈당한 이들은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오병윤 전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연 전(前) 의원단 기자회견에서 "다시 광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각자의 판단에 따라 지역에서 의원이나 정당인이 아닌 방식으로 활동을 계획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처럼 통진당은 헌재 결정에 따라 속전속결로 나오고 있는 후속조치를 일단 따르며, 지난해 11월 법무부 청구에 반발해 의원 전체가 삭발식을 했던 것과는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 전 대변인은 이날 새누리당 윤영석 원내대변인이 "통진당 관계자들이 폭력 저항을 예고했다"고 브리핑한 것을 언급하며 "새누리당은 '폭력 저항'을 직접 선동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미안하지만 진보당은 새누리당의 저질 거짓 선동에 놀아날 생각이 전혀,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고발·수사 등엔 개별 대응…"새누리당 거짓 선동에 놀아날 생각 전혀 없다"
'통합진보당해산국민운동본부'가 헌재 결정 직후 이정희 전 대표와 이석기 전 의원 등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데 대해서도 홍 전 대변인은 "개별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통진당의 당원이었던 이들을 통째로 고발한 국민운동본부의 위원장은 고영주 변호사로, 새누리당이 최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으로 추천한 인물이다.
이 같은 고발이 한 건으로 그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1957년 독일 공산당 해산 직후에 과거 정치 활동을 이유로 경찰 수사를 받았던 사람들은 15만 명을 넘어선다. 그러나 통진당으로선 잠재적 고발·수사·정치 공격에 공동으로 대응 및 방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대체 정당을 만드는 길이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새로운 형태와 이름으로 진보 정당을 등록할 여지가 있는 만큼, 통진당은 다각도의 법률적 검토를 통해 이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선관위 설명에 따르면, 해산된 정당의 강령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정당 등록 신청과 같은 이름의 정당 등록신청은 각하 또는 반려되지만, 유사한 명칭으로 해산된 정당의 당원들이 새롭게 정당 등록을 신청하는 것을 제한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 오 전 원내대표는 "각계각층 인사들과 함께 진보정치를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기틀을 만들려고 한다. 법적 검토를 면밀히 거쳐 진보 정당을 다시 만드는 것까지 포함해 다양한 각도의 방향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재창당의 가능성을 열어 뒀다.
의원직을 박탈당한 5명은 물론, 당원 자격을 박탈당한 통진당 전 당원 중 누군가가 내년 4월로 예정된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도 이상규 전 의원은 이날 오후 재출마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게 "각자가 나름의 판단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출마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이어 "정부에서 행한 결정이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지가 여기에서 드러난 것"이라며 "이번에 취한 조치는 정치 보복일 뿐 아니라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 계속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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