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청년 주거빈곤 문제는 1960년대 이래 지속되고 있는 오래된 고질병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서울로, 서울로 청년들이 몰려들었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공단 근처 가리봉동에 많았던 ‘벌집’, ‘닭장집’의 좁디 좁은 방 한 칸조차 혼자 살 수 있는 임금을 받지 못해, 청년 노동자들은 방 한 칸에서 두 세 명이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로공단 닭장집을 아십니까?
그 시절 청년 노동자의 주거문제는 국민 모두가 못살았던 시절의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국가와 서울시도 노동자 주거문제의 심각성을 모르지는 않았고, 1970년대에도, 1980년대에도 노동자들을 위한 기숙사와 임대주택 확충 계획은 신문지상에 계속 발표되었다.
하지만 계획만 무성했을 뿐 기숙사와 임대주택 공급 물량은 계획에 비해 계속 축소되었고, 공급 시기가 계속 연기되면서 실제로 공급된 물량은 거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진 정책 집행의 지연으로 인해 열악한 주거환경과 비싼 집세를 감수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주거문제는 구로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뀔 때까지 끝내 해결되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 임금수준이 높아지고, 아파트가 대량 공급되면서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주거수준은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판자촌이 철거되고 오래된 낡은 집들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열악한 주거환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보인다.
1인 청년가구의 심각한 주거 문제
하지만 현재 서울의 청년 주거문제는 ‘주거비의 부담가능성’과 ‘살만한 집에 살고 있는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다른 세대의 주거문제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가운데, 2000년 이후 열악한 주거에 거주하는 1인 청년가구가 다시 많아지는 미증유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단언컨대’ 서울 청년은 우리나라 어떤 지역, 어떤 인구 집단에 비해서도 심각한 주거문제를 겪고 있다. 청년 주거문제가 심화됨에 따라 민달팽이 유니온 등 청년 당사자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그들의 목소리는 작다.
통계 자료를 통해 숫자로 드러나는 청년들의 집으로 인한 고통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전세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집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가장 중요한 척도 중 하나는 월세 가구 비율이다. 주거문제가 심각해지는 시기마다 이 비율이 높아지는데, 폭등하는 전월세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사람들이 목숨을 끊던 1990년 전후에 비해서도 최근의 월세 가구 비율은 더 높다.
청년가구 30%가 주거 빈곤 상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의하면 서울 청년가구의 월세 비율은 1990년 29.0%에서 2010년 45.5%로 크게 증가하였다. 서울 청년가구의 30%가 지하·옥탑방, 고시원,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곳에 살고 있는 주거빈곤 상태이다. 축축한 지하와 햇살 한 줌 들어올 창문이 없는 고시원 생활이 청년이라고 고통스럽지 않을 리 없건만 주거빈곤 상태의 서울 1인 청년가구는 2000년 7만6074명에서 2010년 12만8015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소득과 지출에 대한 국가 공식 통계인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의하면 전국 저소득 청년가구의 소득대비 주거비 부담 비율은 50%에 이른다. 과도한 주거비 부담으로 인해 과거처럼 방 한 칸을 여러 명이 나누어 쓰는 청년이 다시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규 주택공급과 자가소유 촉진을 통해 집 값 상승에 의한 자산이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과거에는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인한 자산 증가가 중산층 이상 계층에게 복지를 대체하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이러한 상황을 기대하기 힘들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가구 구조 변화와 저성장 사회로의 진입으로 인해 이제는 주택 가격이 예전과 같이 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자산 기반 복지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거꾸로 가는 주거복지 정책
이런 주택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와 상관없이 현재 정부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9월 1일 발표된 부동산 대책의 명칭은 '주택시장 활력 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 방안'이다. 여기에서는 강남 재건축을 활성화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확산시켜 부동산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는 정부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 기조는 계속 강화되고 있다.
임대주택 의무 건설 비율 축소, 재건축 수익을 공공으로 환원시키는 ‘기부채납’ 축소와 같은 어마어마한 주거복지 후퇴 정책과 동일한 지면에서 제시된 서민 주거안정 방안에는 공급 예정공공임대주택의 입주 시기 1~2개월 단축, 쪽방·고시원 등 비주택 거주자의 공공임대주택 입주 시 보증금 감면 등이 포함되어 있다.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확대가 아닌 입주 시기 단축은 ‘조삼모사’일 뿐이다. 비주택 거주자의 공공임대주택 입주 프로그램의 가장 큰 문제점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의 수혜가구가 연평균 500가구 미만으로 극히 적었다는 점인데, 수혜가구의 확대 없는 보증금 감면은 또 다른 ‘조삼모사’이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전국적으로 연간 2억5000만 원 미만의 보증금이 감소될 것으로 추정된다.
청년 주거 문제, 알아서 해결하라고?
사회 전반적으로 주거복지보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상황 속에서 청년들의 주거문제는 개인들이 풀어야 할 문제로 치부되고, 사회적으로 외면받고 있다. 청년의 주거로 인한 고통이 커지고 있지만 근로능력이 있는 청년층은 주거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청년의 정책적 소외는 많은 이들을 가슴 아프게 한 ‘송파 세 모녀’ 사건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사건은 서민의 삶을 옥죄는 소득 대비 과도한 주거비 부담의 결과를 보여 주었뿐 아니라, 청년의 빈곤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50대의 어머니는 부양능력이 있을 것이라 가정된, 실제로는 근로능력이 없던 30대의 딸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사회적 안전망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것이다.
청년의 주거빈곤을 이대로 방치하면 안되는 이유는 우선 그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1990년 이후 20년 이상 청년들의 소득대비 주거비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고시원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비주택 거주 청년이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살만하지 않은 집에 너무 비싼 가격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 사회적 결과가 너무 파괴적이라는 점이다. 고도 성장기였던 산업화 시대에는 청년 주거문제가 ‘젊어서 고생’으로 끝날 수 있었다면 최근에는 청년층의 높은 실업률, 불안정한 고용과 맞물리면서 가난한 청년이 가난한 중년이 되고 가난한 중년이 다시 가난한 노인이 되는 빈곤의 악순환 구조로 작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거문제의 심화는 청년들이 결혼, 출산 등 생애주기에 따른 주요 과업을 포기하게 만듦으로써 인구 재생산 구조를 파괴하고 있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2010년 이래 지속적으로 전국 시도 중 가장 낮은데, 이는 35세 미만 청년층의 출산율이 낮기 때문이다.
방값 고통에 침몰하는 청년세대를 구하라
신혼부부, 대학생, 사회초년생으로 대상이 한정된 행복주택이 추진되고 있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공급 물량 축소와 연기를 거듭하면서 끝내 해결되지 못한 산업화 시대의 청년 주거문제가 다시 떠오른다. 다른 나라의 오랜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주거빈곤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국가 및 공공의 재정투입을 바탕으로 한 부담가능한 임대주택의 공급과 주거비보조의 확대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방법은 없다. 국가적인 재앙이 될 인구 재생산 구조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서울의 청년 주거문제를 이제는 해결해야 할 때이다. 방 값 고통으로 인해 침몰하고 있는 청년세대를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또 다시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 번 칼럼을 들으세요.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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