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의 지상 발사 핵심 요격체제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의 한국 내 배치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2012년과 올해 초 두 차례에 걸쳐 부지 조사를 이미 끝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일 <연합뉴스>는 "미국이 사드의 한국 배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올해 초에 부지 및 군사적 영향 등에 대한 현장 조사"를 마쳤으며, "이르면 다음 달 한미안보협의회(SCM) 이전에 최종 결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 보도는 여기 한 걸음 더 나갔다. "현재 미국은 사드 우선 배치 고려지역 중 하나로 한국을 정하고 탐지거리가 1000㎞ 이상인 고성능 X-밴드 레이더를 비롯한 핵심 장비 등의 제작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들이 사실이라면, "미국으로부터 사드 배치와 관련해 요청받은 바도 없고 검토한 바도 없다"는 박근혜 정부의 해명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우리 영토에서 부지 조사를 벌이면서 한국 군 당국의 양해 및 협조 없이 진행했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군 당국이 국민과 국회에는 알리지 않으면서 미국과 밀실 협의를 진행해왔을 공산이 크다.
실제로 국방부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요청받은 바는 없지만,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된다며 '이중 플레이'를 전개해왔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월 18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주한미군이 (사드를) 전력화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고 했었다. 한민구 국방장관도 7월 20일 KBS와의 대담에서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서 사드를 한반도에 전개해서 배치한다면 그것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억제하는 데, 한반도의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주지하다시피 사드 배치는 국내에도 비판적인 여론이 상당히 높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한중관계, 한러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의 해명대로 미국이 사드 배치를 요청해오지 않았다면, '미국이 요청해오면 충분히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미국의 요청이 없었다면서 사드 배치를 사실상 수용하고 있다.
한미간의 논의 진행 정황도 심상치 않다. 미국 국방부 부장관으로 발탁된 로버트 워크(Robert O. Work)는 첫 해외 순방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그는 8월 20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는 한미동맹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와 미국 MD가 "최대한 상호운용이 가능한 시스템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미일 3국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러한 공개 발언을 놓고 볼 때, 그의 핵심적인 방한 목적이 사드 배치를 비롯한 MD와 이를 위한 한미일 3자 군사정보 양해각서 체결에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달에는 김관진 안보실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수전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에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또한 다음 달에는 SCM이 예정돼 있다. SCM 회의의 한국 측 최대 의제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이고 미국의 의제는 단연 MD에 맞춰지고 있다. 이에 따라 SCM에서 사드 배치와 전작권 환수 연기를 맞바꾸는 '잘못된 거래'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
사드 배치가 현실화되면 우려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사드 배치에 대해 "핵 억제력 강화로 맞서겠다"고 공언해온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나 4차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중국은 관영 매체를 통해 "한중관계의 희생"을 경고했고,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한중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중한 판단을 요구했다. 러시아 외교부도 공개적으로 반대 성명을 내놓았다. 이처럼 사드 배치는 우리 안보의 선물이 아니라 우리 국익을 위협할 '트로이의 목마'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기어코 하려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해야 할 일의 핵심은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면서 6자회담의 문을 여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사드를 비롯한 MD에 발을 더더욱 깊숙이 담그면서 이를 위한 한미일 군사정보보호 각서를 체결하는 것이다.
이러다간 정말 북핵 해결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의 '골든 타임'마저 놓치고 이미 상실하고 있는 복원력마저 영영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곧 워싱턴행 비행기를 탈 김관진 실장에게 거듭 호소하고 싶다. 사드 배치는 대화 테이블에서 내려놓고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재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미국을 강하게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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