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무인기 파동'의 판을 키우기로 작심한 것일까? 정녕 외환(外患)을 키워 내우(內憂)를 덮고 싶은 것일까?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12일 쏟아낸 대북 발언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러한 의구심이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더라도, 국방부 대변인의 발언은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
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은 거짓말을 일삼는 나라로서,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나라도 아니지 않느냐. 오로지 한 사람을 유지하기 위해 있지 않느냐"며 고강도의 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그는 "계속 거짓말하는 역사퇴행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로 있을 수 없는 나라"라며 "그래서 빨리 없어져야 된다"고까지 했다.
이는 최근 국방부가 무인기 침투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한 것에 대해 북한이 강력히 부인하면서 공동조사를 거듭 제안한 것을 비판하면서 나온 발언들이다. 아울러 그는 기자들에게 "북한의 말을 유의미하게 안 써주셨으면 고맙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북한의 주장을 보도하면 남남갈등을 유발하려는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말려드는 꼴이라는 의미이다.
김민석 대변인은 4월에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임박설을 연일 제기하면서 첩보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가감 없이 공개해 '의도적으로 안보 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 아니냐', '대북 첩보 활동을 위태롭게 하는 언행이 아니냐'는 비판을 야기한 바 있다. 북한 고위층의 발언이 따옴표까지 포함돼 공개될 경우 감청이나 휴민트(인적 정보)에 큰 차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호비방 중지에서 최악의 말싸움으로
남북관계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에 비유될 정도로 진폭이 워낙 크다. 그러나 최근 그 진폭이 커도 너무 커지고 있다. 남북한은 불과 3개월 전만 하더라도 고위급 접촉을 통해 상호비방을 중단키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비방전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험악해지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북한의 로켓 발사,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과 북한제로 추정되는 무인기 파동, 4차 핵실험 임박설 등을 거치면서 말이다.
북한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겨냥해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의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최고 존엄"이 모욕당했다는 이유 때문이라지만, 상대방의 지도자들을 '창녀'나 '검은 원숭이'에 비유하는 것은 도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일말의 기대마저 접으면서 저주를 퍼붓겠다는 심사가 아니고선 가능하지 않은 발언들이다.
그런데 남한마저 북한과 싸우면서 닮아가고 있다. 정부 당국자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북한을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말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안 그래도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이 흡수통일을 겨냥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는 한쪽에서는 북한이 박 대통령의 진의를 오해한 것이라고 해명해왔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선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했다. 그것도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사전에 준비된 기자회견에서 말이다.
국방부의 이례적인 행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군 관계자는 "유엔군사령부가 지난 9일 오후 5시 30분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군사분계선(MDL) 앞에서 확성기를 통해 북한의 무인기 도발에 대한 한국군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북한도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유엔사는 북한과의 전화나 팩스가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확성기를 이용했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이는 납득하기 힘들다. 유엔사가 아니더라도 전화 통지문을 발송할 수 있는 통로는 여러 개가 있고 남한 군 당국은 실제로 다른 통로를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에 판문점 장성급 회담을 제안해 경고문 전달을 시도할 수도 있고,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북한이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해온 확성기 방식을 택했다.
정녕 북풍을 원하는가?
이처럼 군 당국이 북한을 '없어져야 할 나라'로 언급한 것이나 확성기를 통해 대북 경고를 전달한 것은 북한을 자극해보겠다는 심사가 아니고선 이해하게 힘든 행태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과 마찬가지로 저주스러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관리할 의지가 실종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왜 비정상적인 언행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총체적 부실과 무능을 북풍을 통해 덮어보고 싶은 것일까? 더 강력한 북풍이 불어오면 정부·여당과 보수 언론이 국민들의 추모 열기와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정치적 악용'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연계해 또다시 종북몰이를 시도하고 싶은 것일까? 기우이길 바라지만, 이렇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도대체 북한의 몰상식과 남한의 비정상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지긋지긋한 남북한 위정자들의 적대적 상호의존이 더 거칠게 전개될수록 한반도 주민들의 신음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짙은 한숨에 담아내기에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 위기는 너무나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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