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가 온 국민을 집단적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재난 대응의 총체적 부실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초기 상황에 대한 오판에 따른 신속한 구조 작업의 실패에서부터 탑승자, 구조자, 실종자 집계의 오락가락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분노어린 탄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따져봐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재난 대비와 인도적 구호를 앞세우면서 실시되어왔던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의 실체이다. 3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이 같이 군사훈련을 하는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거부감을 달래기 위해 훈련 목적이 ‘재난 구호’에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앞에서 한-미-일은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고 초기에 인근에서 훈련 중이던 미군은 구조 헬기를 보냈다가 한국군이 거부하자 돌아가고 말았다. 일본 해상 자위대도 소해정 파견을 타진했지만, 한국 정부가 난색을 표해 이뤄지지 못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 독자적으로 구조 활동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다.
물론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파견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거치면서 분명해진 것은 있다. 국민들에게는 제주 남방 해역에서 매년 한 차례 정도 진행되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의 주된 목적이 재난 대비에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의 발표대로 재난 대비 훈련이었다면,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상은 한미일 군사훈련이 재난 대비라는 탈을 쓰고 미사일 방어체제(MD)와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투입 등 북한과 중국을 겨냥한 군사훈련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9년 4월 13일 자 주일 미국대사관의 외교전문에는 이러한 해석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일본 외무성의 미일안보조약 담당 부국장인 아베 노리아키는 “한반도 유사시에 대한 한일 정부 간 대화의 부족은 일본 자위대를 이용해 한국 내 일본인 소개 작전을 펼치려는 노력에 큰 제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일본 자위대의 항공기와 함정의 한국 내 진입을 허용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다카미자와 노부시게 방위성 국방정책국 국장은 단계적 접근을 제안했다. “재난 구호 및 유엔평화유지 활동 등을 통해 한일 사이의 냉랭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견 문제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의 핵심 의제: MD와 합동군사훈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도 이러한 맥락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순방의 핵심적인 목적은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 구축에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바마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3자 정상회담을 주선하고는 세 나라가 군사적 결속을 다져야 한다며, MD와 합동군사훈련을 거론했다.
그리고 이들 세 나라의 핵심적인 국방 당국자들은 4월 중순 워싱턴에 모여 ‘3자 안보 토의’를 열었다. 한국 정부는 이 회담을 ‘3자 안보 토의’라는 아리송한 표현을 썼지만, 공식 명칭은 ‘국방 3자 회담(DTT: Defense Trilateral Talks)'이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회담은 한미일 3자 군사협력을 강화하는데 핵심적인 목적이 있다. 회담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핵심 의제는 오바마가 밝힌 두 가지, 즉 MD와 합동군사훈련,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한일, 혹은 한미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었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거부감과 한국이 미·중 패권경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할 때, 한일 및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돌파구는 북한의 위협이다. 한국 국방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 임박설’을 제기하고 나선 것도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나왔을 개연성이 있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 국민이 예의주시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군사정보보호협정이다. 당초 한국 방문 계획이 없었던 오바마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한 요청에 대한 선물 가운데 하나로 한일, 혹은 한미일 군사협정 체결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 이게 되어야 MD를 고리로 삼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2년에 경험한 것처럼 한국인의 거부감은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꼼수를 부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회 동의와 공개 절차를 피하기 위해 양해각서(MOU) 방식으로 체결할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또 하나는 세월호 참사를 틈타 한미일 군사훈련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주장하고 나설 가능성이다. 한국이 최악의 대참사를 겪고 있는 만큼, 이를 교훈 삼아 세 나라가 재난 대비 및 인도적 구호 훈련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4차 핵실험 막을 방법은 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외부의 위협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는데 소홀해진다면, 안보가 기본으로 삼아야 할 국민 안전이 등한시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한미일 삼각동맹 추진은 북-중-러의 반작용을 야기해 외부의 위협을 키우고 이에 따라 국민 안전에 쏟아야 할 인적·물적·정신적 자원의 제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재난 대비 군사훈련이 필요하다면, 인접국인 중국까지 포함해 훈련의 투명성을 높이면서 추진하면 될 터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정녕 걱정된다면, 6자회담의 문을 열면 막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현명한 처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