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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무공천, 전략적 사고가 부른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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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무공천, 전략적 사고가 부른 실패

[시민정치시평]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 새정치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가 일단락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실패로 끝난 듯하다. 통합명분이던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를 지방선거 쟁점으로 끌어내지 못했다. 대선 공약 파기의 책임을 물으며 지방선거를 주도하겠다는 전략도 수포로 돌아갔다. 통합으로 한껏 치솟던 야당의 인기는 하락 추세다. 여론도 야당의 리더십 위기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선거 필패론까지 고개를 든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입장이 되었다.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는 야당 주도의 정책 대결 구도가 아니었다. 새누리당과의 정적(政敵) 관계를 노린 전략적 사고의 산물이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안 대표의 첫 번째 정치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안 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에 대해 약속 불이행의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정치인으로서 독자적인 지위 확보를 위한 승부수였다. 이념의 결합이 아닌 선거 승리에 초점을 맞춘 한 수였다. 그런 점에서 그의 청와대 방문은 일종의 깜짝 이벤트였고, 대립각이 서지 않은 상황에서 리더십 회복을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정국 주도 국면을 지속해야 했던 상황에서 내린 퇴로 없는 선택이었다.

여론조사로 무공천 문제를 풀겠다는 야당의 결정은 어쩌면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여당이 고사하는 문제를 질질 끌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야당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54%의 철회 지지로 무공천 문제는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문제는 다음이다. 여론조사 결과 확인 후 안 대표의 6시간의 침묵은 현실 정치와 새정치의 간극을 보여주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새정치'를 부르짖으며 정치권에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어야 할 그의 입장에서는 정치 생명에 치명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여당과의 힘겨운 싸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연합뉴스

안 대표는 여론조사를 통한 무공천 문제 처리를 밝히면서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한 바 있다. 무엇보다 무공천 소신과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면서,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민과 당원의 총의에 따를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유연한 정치인의 태도처럼 보인다. 더욱이 정치인에게 유연한 사고와 태도는 중요한 장점이다. 특히 '불통'으로 일관하는 정치인의 아집과 고집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대중과 당원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사실 자체로도 충분히 신선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안과 결정은 뿌연 안갯속에 싸여있는 안 대표의 정치력에 대한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그의 야심은 야당 통합을 주도하고, 6·4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그의 선택은 세를 과시할 수 있는 변화의 주체 세력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현실인식에서 나온 결정이다.

이런 점에서 다시 한 번 지방선거 무공천 문제를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살펴봐야 한다. 무공천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그러나 여당의 입장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대중적인 인기 때문인지 아니면 현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인지 모르지만 여당은 전략적인 공천으로 지방선거의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뛰고 있다. 이 시점에서 야당의 전술적인 선택은 무공천 문제를 개인의 믿음 문제가 아닌 장기적인 선거 전략의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이었어야 한다. 즉, 정치는 상대의 태도에 따른 선택적 전략과 비전, 적절한 대응이 필수적이다.

이제까지 야당의 전략과 대응은 형편없었다. 늘 뒷북치는 느낌이었다. 야당 통합에 기대를 건 것도 새로운 출발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안 대표의 정치력을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던 대목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여론조사로 무공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 자체가 매우 역설적이다. 단식투쟁, 거리 투쟁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니 구태라고 비난받을 게 뻔할 것이고, 여론조사로 이 문제를 돌파해도 포퓰리즘적 발상이라고 여당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더욱이 사후 처리도 탈출구가 없다. 공천 문제가 가시화되면 공천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가중될 것이고, 자칫 야당의 괴멸로 이어질 수 있다. 모 아니면 도가 아닌 여러 상황을 고려한 대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결정은 정치력 부재를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절실한 것은 무공천 문제를 넘어설 새로운 쟁점이다. 현실을 꿰뚫은 숙고의 힘이 필요하다. 그 어떤 정치적 상상력도 발휘되지 못했던 우리 현실이 더 절망스러운 것이다.

지금 정치의 문제는 시민의 관심 밖으로 떠나버린 정당의 이해관계 충족 여부가 아니다. 시민에게 변화를 추구해야 할 이유 제시가 더 급선무다. 정당의 이해를 떠나 시민의 곁으로 가려면 선언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 요구된다. 다수주의에 빠지지 않고, 무책임에 빠지지 않으려면 시민의 관심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정책적 비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여론조사는 정치적 결정의 잣대가 될 수 없다. 정치적 결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민의 욕망을 담아낼 비전의 문제이다. 여론조사는 '자극에 대한 반응'일 뿐, 반응을 일으키는 요인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비극은 희망을 걸 정치인이 없다는 점이다. 선거 때만 악수를 청하는 정치인, 낮은 곳보다 높은 곳만 쳐다보는 정치인. 여기에는 감동이 있을 수 없다. 감동 없는 연극이 무미건조하듯이 신뢰할 수 없는 정치는 우리 곁을 떠나고 만다. 지방선거에 대한 시민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의 문제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당의 선전물이 아닌, 지역 주민의 고충이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우리의 처지가 나아져야 하는 것이다. 무공천을 둘러싼 정략적 접근에서 빠진 것은 고통받은 목소리,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새정치는 새로운 출발을 뜻해야 한다. 우리가 정치의 역설에 주목하는 이유다. 정치적 실패는 또 다른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아니 성공의 열쇠가 되어야 한다. 정치의 생명력은 좌절 안에서 희망을 먹고 자란다. 지금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암울한 동굴을 벗어나 밝은 햇볕을 마음껏 즐기는 것, 그런 해방감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인이 아닐까. 늘 영웅은 위기에서 나오는 법이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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