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에서 공공성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생협 조직에서 웬 공공성이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듯하다. 우리에게도 처음엔 낯선 이름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 조합원들에게 익숙한 이름, 아끼고 보듬어야 할 이름이 되었다.
2013년 2월 진주, 어찌나 떨렸던지….
진주의료원 폐업이 사회적으로 가시화됐을 때가 2013년 2월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적자 의료원에 대한 폐업을 예고했고 불과 석 달 만에 폐업 신고가 완료됐다.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지역 조합들에 매년 2월은 총회 준비로 한창 바쁠 때다. 진주아이쿱생협 역시 그랬다.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 운동이 한창일 때 새로 선출된 이영실 진주아이쿱생협 이사장은 부임하자마자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 집회에 참여하면서 밤샘 농성, 기자회견도 해야 했다. "어찌나 떨렸던지, 얼마나 쑥스럽던지"라면서 햇병아리 이사장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다. 그랬던 사람이 1년이 지난 지금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사회공공성운동본부 추진단에 참여하고 있고, 진주의료원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의료 공공성에 대해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년을 절박하게 싸우면서 체득한 활동 결과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진주의료원'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라고 한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예비 후보조차 진주의료원의 재개원에 대해 언급하고, 보건복지부도 홍준표 지사의 '경남도 서부청사로 용도 변경' 요청에 대해 불가하다고 밝히고 있다. 의료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진주의료원 재개원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2013년 10월 밀양, 국수 한번 말아볼까요?
'아이쿱이 밀양의 친구가 되어줍시다!'
부산과 울산, 대구·경북 지역조합의 제안이었다. 밀양은 수년 동안 어르신들이 고군분투하면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있는 곳이다. 이 제안은 어르신들을 지지하고 어르신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한 지역의 외침은 순식간에 전국 조합으로 확산되었다. 연대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단체 카카오톡을 통해 제안되었다.
필자 역시 '밀양에서 국수 한 번 말아볼까요?'라는 제안을 했다. 득달같이 댓글이 달렸다. 누가, 언제, 얼마나, 어떻게…. 결국 연합회가 지원하고 부산과 울산, 대구·경북 지역조합에서 108번째 촛불집회에 부침개와 비빔밥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날 참석한 집회 참가자 약 300명에게 콩나물비빔밥과 부침개로 따뜻한 연대의 정을 선물했다. 그날 유난히 부침개가 맛있었던 것은 우리의 손맛이 좋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후 밀양 할머니들과의 연대는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우리는 밀양 농활대, 밥차 지원, 희망버스 등을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대표자대회는 밀양 할머니들에게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한 것'에 감사하는 의미로 공로패를 전달했다. 태어나 상 받기가 처음이라는 할머니께서 연단에 올라 눈물을 흘리셨다. "내가 죽어서라도 이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밀양 할머니의 절규가 아직도 생생하다.
2013년 12월 대전역, '은하철도 999'를 부르다
2013년 겨울. 철도 노동자들이 기관차를 세웠다. 수서발 KTX 민영화 반대를 위해서였다. 철도 역사 100년. 철도는 단순히 사람을 태워 나르고 물자를 운반하는 교통수단이 아니다. 철도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사람으로 치면 핏줄과 같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KTX는 전국을 하루 생활권으로 바꾸어놓았다. 이제 KTX는 우리 생활에서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게 됐다.
KTX 민영화는 자칫 핏줄을 끊어 버릴 수도 있는 매우 위험천만한 시도이다. 그럼에도 보수 언론들은 연일 철도 파업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었다. 철도 파업 역사상 가장 긴 시간 동안 파업은 이어졌다. 다급해진 박근혜 정부는 급기야 민주노총 사무실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그야말로 세기말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국민은 분노했고 아이쿱생협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불편해도 괜찮은 아이쿱 활동가들이 각자 모임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대전역에서 반짝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시커먼 남자들도 아니고, 조끼를 입은 노조원들도 아닌 아줌마들이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피켓을 꺼내 들고 삼삼오오 대전역 파업 천막 앞에 모여들었다. 준비한 행사도 아니었고, 신고한 집회도 아니었다. 소심한 아줌마들은 '은하철도 999'를 불렀고, '기찻길 옆 오막살이' 노래에 맞춰 광장을 돌았다. 그렇게라도 장기간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눈치 보지 말라고, 당신들의 파업은 결단코 정당한 싸움'이라고. 그렇게 지지해주고 싶었다. 소박하지만 감동적인 퍼포먼스는 지역으로 퍼졌고, 전국 130개가 넘는 매장에는 철도 파업 지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마침내 사회공공성운동본부가 출범하다
2013년 하반기에는 철도 민영화, 의료 민영화, 가스 민영화 등 사회적으로 공공재의 민영화(영리화) 시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밀어닥쳤다. 거의 쓰나미 수준이었다. 아이쿱은 철도·의료 등 사회 기반시설에 대한 민영화를 반대하는 각종 기자회견, 서명 운동, 촛불집회, 캠페인 등 이른바 공공성 운동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공공성 운동이 조합원 개개인에게까지 널리 확산되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났다. 이에 아이쿱생협에서는 공공성 운동을 조합원에게 널리 확산하기 위한 운동본부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운동본부를 통해 아이쿱 내 공공성 운동 영역을 확립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2013년 8월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는 전국대표자대회를 통해 사회공공성운동본부를 공식 발족했다. 발족을 기념하는 토론회에서 주요하게 제기된 문제는 결국 '사회 공공성 강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진주의료원 문제로 제기된 의료 공공성, 상수도 민간 위탁으로 본 물 공공성,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으로 본 에너지 공공성, KTX 민영화로 본 철도 공공성 등등. 의제 자체가 광범위해서 어디서 어떻게 출발할지 막막하다는 의견 또한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쿱이 사회 공공성 의제를 바탕으로 사회적 과제를 실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하였다. 우선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안들을 조합원에게 알리고, 이에 대한 지속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통해 조합원의 문제의식을 높임으로써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을 사회공공성운동본부의 과제로 삼았다.
왜 아이쿱이 정치에 관여하느냐고요?
아이쿱생협 조합원은 약 18만 가구다. 매월 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조합원 수는 약 7000여 명이다. 아이쿱의 모임들은 민주주의의 훈련 현장이자, 지역사회의 현안에 대한 토론과 실천의 현장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인문·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학습의 현장이 되고 있다. 사회공공성운동본부 출범 이후 줄곧 해오고 있는 활동 가운데 하나가 이 이런 지역모임에 공공성 학습 자료를 제공하는 일이다. 별도로 집필 자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현안에 대한 담론이나 관련 자료들을 모아 읽고 쉽게 재구성하여 배포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드림 이야기'에도 공공성과 관련된 자료를 올려놓는다.
가끔 조합원들로부터 '왜 아이쿱이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느냐?'는 질문이나 민원을 받기도 한다. 민원의 수위가 높을 경우 지역조합의 사무국에서는 이에 대해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느라 애를 먹는다. 심지어 일부 조합원은 탈퇴하겠다고 엄포를 놓거나 실제 탈퇴했다는 얘기도 간혹 들린다.
협동조합이 시민단체는 아니다. 엄밀하게 말해 협동조합은 사업체와 활동체의 유기적 결합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사회운동 조직이어야 한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물론 협동조합의 모든 구성원이 사회운동가일 필요는 없다. 다만, 협동조합이 조합원의 시민 의식을 높이는 데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며, 적어도 평균적으로는 공공성 운동에 지지와 성원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래서 '공공성 운동은 협동조합의 기본적 가치인 민주·평등·형평·상부상조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인식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5월이면 지역별로 '생협한걸음교육'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는 각 지역조합에서 조합원 모임을 이끌고 있는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교육이다. 2013년에는 3800명 넘게 참여했다. 교육은 협동조합에 대한 기본 이해와 식품 교육, 물품 교육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는데, 올해는 공공성 분야를 추가하여 아이쿱에서 지향하는 공공성 운동에 대한 이해를 높일 계획이다. 운동본부는 이 교육 과정에서 외부 강사를 초빙하기보다는 28명의 추진단 전원이 강사로 활동하기로 했다. 비록 추진단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 비해 전문성은 부족하지만 열정만큼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고 자부하기에, 부딪히면서 배우고 채워가면서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통해 운동본부의 자체 역량도 높이고자 한다.
물론, 교육을 준비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공공성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부터 각 분야의 핵심 쟁점을 정리하는 것, 그리고 아이쿱생협의 실천 과제를 도출하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현재 강사단 양성 과정을 진행하면서 영상물 등 필요한 자료를 제작하고 있다. 내달이면 이들이 전국의 지역조합을 누비면서 공공성 강화를 전파할 것이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양성 과정에 참여한 초빙강사는 공공성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였다. '공공성은 사랑 같은 거'라나. 사랑이 흔한 요즘이다. 하지만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리운 것처럼, 흔한 만큼 더 절실한 것도 사랑인 요즘이다. '더불어, 함께, 모두, 차별받지 않고, 공평하게'를 달리 표현하면 '공공성=사랑'으로 간단하게 도식화할 수도 있겠다. 복지국가는 사랑하는 마음을 오롯이 담은 작은 운동에서 시작해볼 일이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답은 "공공성 강화"랍니다.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번 칼럼을 들으세요. (☞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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