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북한은 3월 3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8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과 27일부터 시작된 한미 양국의 ‘쌍용 훈련’을 맹비난하면서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는 “만일 북한이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엄중한 요구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이렇듯 유엔 안보리의 대북 대응과 한미 양국의 무절제한 군사훈련, 그리고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시계 제로’ 상태에 진입하고 있다.
북한, 미사일에 핵탄두 탑재?
북한이 외무성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우선 “다종화된 핵억제력을 각이한 중장거리 목표들에 대하여 각이한 타격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지난달부터 북한이 실시해온 다양한 로켓 발사 훈련이 핵무기 운반수단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힌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이나 대구경 장사정포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을 정도의 소형화 기술을 확보했는지는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북한은 성명을 통해서 그럴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북한의 핵 능력과 그 파장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중장거리 목표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스커드와 노동보다 사거리가 긴 대포등급 미사일 시험발사가 임박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대포동을 쏠 경우 유엔 안보리의 대응 수준도 이번에 나온 의장 구두 성명보다는 높은 수준이 될 것이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사전 경고하고 나선 것도 이를 의식한 것이다.
북한은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미국이 이것을 또다시 ‘도발’로 걸고드는 경우”라는 조건을 달았다. 여기서 ‘이것’은 북한의 추가적인 로켓 발사를 의미한다. 미국이 이것이 또다시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 대북 규탄이나 제재를 시도하면 북한은 4차 핵실험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술적으로도 한 달 정도의 추가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아직 북한의 핵실험을 막을 기회는 있다는 것이다.
‘로우 키’ 유지한다더니
그렇다면 왜 북한은 초강수를 두고 나온 것일까? 미국 주도의 안보리에 대한 불만은 기본에 해당된다. ‘혹시나’ 하면서 지켜봤던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도 ‘역시나’라는 실망감도 깔려 있을 것이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21년 만에 최대 규모로, 그것도 언론에 공개키로 한 ‘쌍용 훈련’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짙다. 북한이 성명 발표 하루 만에 서해에 항해금지구역을 선포하고 실사격 훈련을 하겠다고 남한에 통보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북한의 해상사격훈련은 한미연합군의 상륙 훈련에 맞선 ‘반접근/거부’ 훈련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실기동훈련인 독수리연습(FE)의 일환으로 3월 27일부터 4월 7일까지 실시되는 쌍용 훈련에는 미군 9500여 명과 한국군 3000여 명 등 총 1만 2500여 명의 병력과 수직 이착륙기인 오스프리 22대 등 최첨단 전력이 대거 투입된다. 팀 스피릿 이후 최대 규모이고 또 언론에 공개키로 하면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로우키’로 하겠다던 훈련 방침도 사실상 철회됐다.
북한은 지난달 남북 고위급 접촉 당시에 군사훈련을 최대한 ‘로우 키’로 하겠다는 남한 정부의 말을 듣고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동의한 바 있다. (로우 키(Low Key) : 언론 홍보 등을 하지 않고 최대한 조용히 진행한다는 뜻 <편집자>)
왜 ‘로우 키’를 깼나?
여기서 의문이 드는 대목은 ‘왜 한미 양국이 로우 키를 깨고 사상 최대 규모의 해병대 훈련을 실시하고 그걸 언론에 공개하고 있느냐’이다. 이는 북한을 상대로 대놓고 무력시위를 벌이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당연히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납득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한미 양국 정부의 의도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박근혜 정부 일각에서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의혹 및 간첩 증거 조작,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 군부가 군비 삭감을 저지하게 위해 안감힘을 쓰고 오바마 대통령이 미사일방어체제(MD)를 고리로 삼아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만큼, 이를 정당화해줄 뭔가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북한이 혹자의 기대(?)대로 그냥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는 점에 있다. 이로 인해 ‘북한의 중장거리 로켓 발사→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북한의 4차 핵실험→안보리 추가 대북 제재 결의→북한의 전시 상태 선언’으로 이어지는 익숙하지만 위험천만한 상황이 또다시 도래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이익을 챙기겠다는 사람들이 정책 결정을 주도하는 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번 상황에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듯이,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남한에도, 북한에도, 미국에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시해야 할 ‘통일 대박’의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쌍용 훈련의 규모 확대와 언론 공개가 박 대통령의 재가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움직임이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이뤄진 남북한의 신뢰구축과는 분명 역행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박 대통령은 신뢰 회복과 위기관리 차원에서 이 훈련을 전면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남북 고위급 회담 제의를 통해 북한에도 로켓 발사 훈련 및 4차 핵실험 계획 중지를 요구해야 한다. 동시에 6자회담 재개에도 본격 시동을 걸어야 한다. 이게 북한의 추가적인 핵실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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