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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발 '손학규 비토론' 왜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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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무현 발 '손학규 비토론' 왜 나왔을까?

[분석] 범여권의 '비빌 언덕' 다 깨는 노 대통령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 선언 하루 만에 터져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맹비난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6일 열린우리당 개헌특위 위원들과의 오찬에서 이미 "남의 양어장에 와서 낚싯대만 던져놓으면 되는가"라며 손학규 영입론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원칙을 파괴하는 사람은 진보든 보수든 정치인 자격이 없는 것이다"는 20일 국무회의 석상의 발언은 '손 전 지사가 범 여권 후보로 적절치 않다'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 심지어 노 대통령은 "유권자로서 판단할 때라도 그와 같은 판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대국민 손학규 비토론'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내놓았다.
  
  자기 원칙을 깬 노 대통령
  
  그러나 '원칙'에 대한 이날 발언은 우선 노 대통령 자신의 원칙 두 가지를 훼손한 것으로 지적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줄곧 '나를 대선에 이용하려는 부당한 공격에는 끝까지 대응하겠지만 먼저 공격하진 않겠다', '정치 중립은 어불성설이지만 선거중립은 확고하게 지키겠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이날 발언은 이 두 가지 원칙을 다 깬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이례적인 발언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오늘 발언은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대원칙에 관한 것 아니냐"며 "해석이야 분분하겠지만 눈 앞의 이익보다 큰 원칙을 중시하는 노 대통령의 뜻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손 전 지사의 행태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훼손한 것이고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그에 대한 정당한 지적이라는 것.
  
  하지만 대통령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훈육주임과 같은 자리가 아닌 다음에야 자신과 전혀 관계 없는 정당에서 한 정치인이 탈당한 문제를 갖고 미주알고주알 하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고 전례도 찾아보기 힘든 행동임이 분명하다. 그것이 바로 그의 이날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들은 지금까지도 큰 파장을 일으켜 왔고 이번에도 만만치 않은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의 '역린론'
  
  노 대통령의 '복심'인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도 손 전 지사에 대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한 언론사의 비보도 약속 파기로 뒤늦게 공개됐지만 지난달 8일 유 장관은 자신의 취임 1주년을 맞아 마련된 비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역린(逆鱗)론'을 펼친 바 있다.
  
  당시 유 장관은 "'역린'을 건드리는 정치인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이인제, 김민석,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이어 유 장관은 "손학규 씨도 한나라당을 나가는 순간 역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남의 양어장론'이 나온 지 불과 이틀만의 일이었다. 결국 노 대통령과 측근들은 당시 손 전 지사를 상대로 범여권 영입론이 떠오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함께 갈 정치인 또는 정치세력'의 리스트에서 제외해놓고 있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고 건 전 총리의 낙마 과정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뒷심이 약할 것'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지만 범여권의 선두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고 전 총리가 노 대통령의 공격으로 허망하게 주저앉은 이후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고건 전 총리는 우리와 정체성이 맞는 사람이 아니지 않냐? 다른 이유가 있겠냐"고 청와대의 '고건 공격'을 복기했다.
  
  노 대통령이 모를 리 없는 판세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신념의 표출이든, 역린론이든 손 전 지사에 대한 노 대통령의 맹공은 복잡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손 전 지사의 탈당 이후 구 여권이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낸 것이 사실 '손학규 대망론'에 의거한 것은 아니었다. 좀처럼 반전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는 여권에 활력을 가져올 것이라는 수준의 기대와 중도성향의 손 전 지사가 빠져나옴으로 한나라당의 수구보수 성향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함께 작용한 것.
  
  우리당 탈당파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장 왼쪽에 서 있는 민생정치모임의 한 의원도 19일 손 전 지사의 탈당 소식이 전해진 직후 "하여튼 간에 지지율 5% 넘는 손 전 지사가 이쪽으로 넘어오게 되는 것 아니냐"며 "여러 가지 모색들이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손 전 지사 역시 2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불쏘시개가 되라면 불쏘시개가 될 수 있고, 치어리더가 되라면 치어리더가 될 수도 있다"고 이같은 기대에 부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노 대통령이 이같은 기대와 계산을 읽지 못했을까?
  
  "노 대통령이 페이스메이커들 다 죽인다"
  
  노 대통령의 지난해 연말 고건 때리기, 이날 국무회의 석상의 손학규 때리기의 공통분모는 구여권의 '비빌 언덕' 파괴라는 점이다.
  
  고 전 총리의 낙마 직후 전략통으로 평가받는 우리당의 한 의원은 "어차피 우리도 고건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진 않았다"면서도 "고 전 총리가 몇 달을 끌어주면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줬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주저앉았다"고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의원은 "노 대통령도 결국 이인제를 딛고 섰기 때문에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지 혼자서 소리 치고 다녀서 성공했겠냐"며 "자꾸 받침대를 치워버리니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20% 수준이다. 이는 대통령의 그것이라고 보기엔 초라하지만 현재 범 여권의 주자들 가운데에는 이만한 지지도를 확보한 인사도 없다. 어차피 노 대통령이 출마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즉자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그가 범여권 인사들 가운데 최대의 지분을 확보한 인물이라는 점만은 분명한 셈이다.
  
  최근 여권에서는 "결국 '노심'을 얻지 못하면 힘든 것 아니냐"는 주장이 친노진영 안밖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전통적 서부 벨트+노무현 지지층+α'에서 한 가지 요소라도 빠지면 대선 경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필승전략'의 함정
  
  손 전 지사에 대한 노 대통령의 느닷없는 맹공이 고 전 총리의 낙마로 증명된, 이같은 '노 대통령의 위력'을 다시 한번 재확인시킬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노 대통령이 임기말 상황에서 비록 힘이 빠지긴 했지만 구 범여권 인사들 중의 최대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누구를 띄울 순 없지만 발목을 잡을 순 있다'는 항간의 관측이 과연 여전히 유효하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고 전 총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청와대는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일 뿐이니 별다른 해석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마음에 드는 선두주자가 나오기 전까지 이같은 '원칙론적 때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서부 벨트를 포함한 전통적 여권 지지층+노무현 지지층+α'의 확보만이 범여권의 필승전략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가운데 어느 지분은 가진 주주 하나만 빠져도 그림은 엉크러진다. 노 대통령의 자신감과 거침없는 행보는 이 같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세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주주들 가운데 '차기'에 대한 부담이 가장 덜한 사람은 당연히 노 대통령. 그렇기 때문에 그의 파괴력은 더할 수밖에 없다.
  
  결국 범 여권 주자들은 '노무현 중심성'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전통적 지지층+α'를 결집시켜 그것을 구심력으로 노무현 지지층을 강제할 것인지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둘 다 쉽지 않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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