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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박근혜 비판, 나라 망신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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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박근혜 비판, 나라 망신이 문제가 아니다

[정욱식 칼럼] 추락하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

추락하는 한국에겐 날개가 없는 것일까? 한국은 얼마 전까지 국제사회에서 후발 국가들 가운데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한 대표적인 국가로 칭송받아왔다. 더구나 이러한 성과는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국제단체와 지식인들이 많았었다. 이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의 소중한 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한국의 매력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세계 20~30위권이었던 언론 자유 지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40~60위 사이를 오가는 신세로 추락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지적하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이 자행되고 박근혜 정부는 이를 은폐·축소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나온 1월 13일 자 <뉴욕타임스> 사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신문은 '정치인과 교과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자국의 고교 역사 교과서에 자신들의 정치관을 반영해 재기술하도록 밀어붙이고 있다"고 싸잡아 비판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이 일본의 역사 왜곡과 우경화를 비판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까지 동급으로 취급한 것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지난 13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정치인과 교과서' 사설 ⓒ뉴욕타임스 갈무리

신문은 "박 대통령은 일본의 식민주의와 한국의 독재에 관한 역사 교과서 기술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이 지난해 여름 친일은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기술한 새 교과서를 승인하도록 교육부에 압력을 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한국의 전문가와 엘리트 관료의 상당수는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뼈아픈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아베 신조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 왜곡을 하려 하는 데에는 이들의 가족사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는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이고 박 대통령의 부친은 "일제 시대에 일본군 장교였고 1962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의 군사 독재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 두 나라가 역사를 개정하려는 위험한 시도는 역사의 교훈을 왜곡시킬 위험이 크다"고 일갈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도 발끈하고 나섰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브리핑에서 <뉴욕타임스> 사설 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도 해명자료를 통해 "박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사설에서 가해자인 일본과 피해자인 한국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외교부와 교육부가 대단히 이례적으로 <뉴욕타임스>의 사설을 비판·반박하고 나섰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그만큼 국제사회에 비춰지는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반박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국제사회가 한국을 어떻게 보느냐에 앞서, 상당수 한국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역사 왜곡 시도에 강한 우려를 표명해왔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나라 망신' 쯤으로 여기면서 지나칠 일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 시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역사 왜곡을 일삼는 나라'로 비춰지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발언권과 설득력은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뉴욕타임스>의 사설은 '상대방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력한 힘은 나 스스로가 떳떳해지는 데에 있다'는 평범한 상식을 새삼 일깨워준다. 박근혜 정부가 불쾌감을 표하기 전에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틈만 나면 '국격', '글로벌 코리아', '국제적 기준', '국제적 상식' 등을 강조한다.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한다며 엄청난 홍보비를 쓰기도 하고 '비용 대비 효과'가 의문스러운 국제대회를 유치하기도 바쁘다. 그러나 한국의 이미지와 소프트 파워는 이런 식으로 치장한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인권, 언론 자유, 진실과 정의에 부합하는 역사 기술이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국격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의 시각이 아니라 '독재자' 박정희에 항거하다가 희생된 수많은 국민들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가해자인 일본의 역사 왜곡에 표하는 분노의 절반만이라도 해방 후 한국 국민들에게 또 다른 가해자였던 독재자들을 직시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다면, 또다시 유력 외신에 의해 한국이 일본과 동급으로 취급당하는 망신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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